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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섬강 ,민물고기의 혼인 잔치

우리는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의 이름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잉어, 붕어, 메기, 피라미, 쉬리…. 민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다는 것이 탄로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무관심은 강을 다루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토목 공사로 강을 가로막고 민물고기의 쉼터인 모래톱을 파헤칩니다. 우리가 강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5월 섬강의 모습으로 확인해보려 합니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하는 한강의 지류입니다. 강원도 횡성읍, 원주시를 지나 경기도 여주시에서 한강 본류와 만나지요. 2000년 횡성댐이 지어지며 209km2 면적의 횡성호가 새로 생겼습니다. 


최근 한강에 사는 민물고기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2008~2012년 시행된 4대강 사업이었습니다. 특히 여주보가 지어진 곳에 살던 멸종위기종이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최근 섬강에서 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오색빛깔로 민물을 채우다


5월 초 개체 조사를 위해 섬강을 찾았습니다. 한바탕 혼인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민물고기인 피라미 수컷이 띠는 푸르면서도 노랗고, 뻘건 혼인색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혼인색은 수컷이 산란기에만 띠는 색입니다. 한반도 고유종인 참중고기와 중고기, 납자루, 줄납자루, 묵납자루각시붕어, 한강납줄개도 역시 오색빛깔 혼인색을 띠고 있었죠.  


민물고기의 혼인색은 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졌습니다. 조사를 위해 이들을 물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주저했습니다. 혼인 잔치를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했죠. 섬강 본류의 큰 여울에는 60cm가 넘는 누치가 사람이 가까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지막 산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섬강에는 민물고기가 터전을 이룰 수 있는 여울이 곳곳에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섬강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종을 조사했는데, 처음 조사했을 때 36종을 확인했고 추가 조사를 통해 최종 45종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섬강에서 기록한 민물고기 조사 결과 중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잉어, 큰납지리, 떡납줄갱이, 중고기, 가물치가 이번 조사로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여기에는 고유종이 21종이나 포함돼 있었습니다. 멸종위기종은 한강납줄개, 꾸구리, 돌상어 3종이 발견됐습니다. 생태계교란 생물인 배스와 블루길도 발견된 점은 못내 아쉬웠습니다만, 그래도 남한강 본류에 여주보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진 꾸구리와 돌상어가 새로운 터전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물론 아직 마음을 놓긴 이릅니다. 이들을 위협하는 요인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멸종위기종인 한강납줄개는 이곳 섬강에서 최초로 발견된 민물고기입니다. 점점 개체수가 줄어 섬강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는데,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것이 기적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이었습니다. 한강납줄개가 나타난 곳에서는 강바닥을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한강납줄개가 속한 납자루과의 민물고기는 암컷이 조개의 구멍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안에 정액을 부어 넣는 방식으로 산란을 합니다. 강바닥을 파헤치면 조개가 살 수 없게 되고 한강납줄개의 산란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지난해 가을 꾸구리와 돌상어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들의 생존은 매우 걱정됩니다. 얼마 전 섬강이 오프로드의 명소로 소문나면서 휴일마다 수십 대의 차가 섬강을 건너다녔습니다. 여울에 사는 꾸구리와 돌상어가 혹여나 밟혀 죽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물고기를 좋아하는 연구자들의 민원이 받아들여져 지방정부가 신속히 차량 출입을 막았습니다. 이번 5월 조사에서 가까운 여울에 수십 마리의 꾸구리가 산란을 위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돌상어도 여러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민물고기의 모래가 남아있는 자연 하천이 필요


한국에 사는 230여 종의 민물고기 중 고유종은 65종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30여 종 이상의 민물고기들이 여울과 소(땅바닥이 빠져 물이 깊어진 곳), 모래나 자갈 퇴적지에 서식합니다. 강에 세우는 댐이나 보, 강바닥을 정비하는 준설 공사 때문에 이 서식지는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한강수계에 사는 한강납줄개와 묵납자루, 가는돌고기, 금강수계에 사는 미호종개, 퉁사리, 감돌고기, 두 수계에 모두 사는 꾸구리, 돌상어 등 많은 민물고기들이 사람들에게 이름도 각인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낙동강 수계 역시 꼬치동자개, 얼룩새코미꾸리, 흰수마자 등이 멸종위기로 내몰렸지요.  이 가운데 흰수마자는 강 중류의 모래에만 사는 민물고기입니다. 낙동강과 금강 수계에 삽니다.

 


2016년 낙동강 수계인 내성천에 영주댐이 만들어지면서 모래가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금강에서는 얼마 전 세종보의 수문이 열리며 모래가 쌓여 흰수마자 몇 마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의 중상류에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수생생물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섬강의 아름다움과 5월에 물을 빛냈던 혼인색의 아름다움은 감히 제가 사진이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고양이 같은 실눈을 뜨는 앙증맞은 꾸구리의 모습도 어떤 방법으로도 재현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한반도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민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섬강에 여러 민물고기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봄날이었습니다. 

202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완옥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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