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7일, 미국 유타주 사막에 우주에서 온 입자 하나가 내리꽂혔다. 현재 인류가 입자를 가속해 만들 수 있는 최고 에너지의 약 4000만 배나 되는 에너지를 갖고 있던 이 입자에는 그에 걸맞게 ‘아마테라스’란 이름이 붙었다. 아마테라스는 일본 신화 속 태양신이다. 입자를 관측한 국제공동연구팀 텔레스코프 어레이(TA) 콜라보레이션은 2023년 11월 23일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아마테라스 입자 관측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살다 보면 우리가 서 있는 지구가 우주에 떠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곤 한다. 하지만 당신이 기사를 읽는 지금도 지구는, 그리고 당신의 몸은 우주와 상호작용하고 있다. 대표적 예시가 바로 우주선(우주방사선)이다. 우주선은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를 말한다. 지구에는 이런 입자가 빗방울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당신은 분명 우주선을 맞은 적이 있다. 평균적으로 우리가 한 해 동안 노출되는 우주선의 양은 0.35mSv(밀리시버트는 1000분의 1Sv)다. 실제로 우주선이 컴퓨터의 반도체에 부딪혀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례나, 승무원이 항공기에서 우주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을 통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구에 우주선이 떨어지는 건 머리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 이 빗방울이 1km²의 땅을 기준으로 한 세기에 한 개 떨어질까 말까 한 귀한 빗방울이라면 어떨까. 일본, 미국, 한국 등의 연구자 85명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 텔레스코프 어레이(TA) 콜라보레이션은 이런 귀한 우주선 ‘초고에너지 우주선’이 30년 만에 관측됐다는 소식을 2023년 11월 2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bo5095
700제곱킬로미터 ‘거미줄’ 펼쳐
귀한 손님 잡아라!
우주선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106eV(전자볼트는 전자 하나가 1V의 전위를 거슬러 올라갈 때 드는 에너지)부터 1020eV까지 다양하다. 그중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가진 초고에너지 우주선은 1018eV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다. 전자볼트란 단위가 조금 낯설 수 있다. 쉽게 비교하면 초고에너지 우주선의 에너지인 1018~1021eV는 시속 100km로 날아가는 야구공이 가진 운동에너지와 비슷하다.
과학자들은 관측을 통해 에너지가 높은 우주선일수록 지구에 떨어지는 빈도는 드물다는 비례관계를 밝혔다. 여기에 따르면 1011eV의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은 1km2 면적의 땅을 기준으로 1초에 하나씩 떨어진다. 한편 초고에너지 우주선의 경우 1km2 면적을 기준으로 한 세기에 한 개 떨어진다. 현재 과학자들의 관측 전략은 초고에너지 우주선이 떨어지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관측 면적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2km2의 땅에서는 초고에너지 우주선이 한 세기에 두 개, 10km2 의 땅에서는 한 세기에 10개 관측될 테니까.
TA 콜라보레이션은 미국 유타주의 사막 한가운데에 700km2 면적의 ‘거미줄’을 펼쳤다. 거미는 거미줄의 떨림을 감지해 사냥감이 거미줄에 걸렸는지 감지한다. 초고에너지 우주선을 관측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TA 콜라보레이션은 땅 위에 지상 검출기 507대를 1.2km 간격으로 배치했다. 지상 검출기가 기다리고 있는 사냥감은 우주선이 지구로 떨어질 때 대기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2차 우주선이다.
우주선의 정체는 자세히 뜯어보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양성자, 광자 등 입자다. 이런 입자는 지구로 떨어질 때 대기와 충돌하면서 수백~수천억 개의 2차 우주선으로 쪼개진다. 에너지가 높은 입자일수록 생성되는 2차 우주선의 수가 많다. 지상 검출기는 2차 우주선 중에서 전자나 뮤온처럼 전하를 띠는 입자를 검출한다. 이때 쪼개져 떨어지는 2차 입자의 개수와 에너지, 떨어지는 각도 등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2차 입자의 정보를 분석하면 원래 지구로 떨어지던 입자, 즉 우주선의 에너지와 진행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2021년 5월 27일
‘말도 안 되는 세기의’ 우주선이 관측되다
“2008년 5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지상 검출기로 관측한 결과를 분석하다가 비범할 정도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이 2021년 5월 27일 검출됐음을 확인했다. 이 우주선의 에너지는 2.44×1020eV에 달했다. 세계 최대의 가속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로 양성자를 가속해 만들 수 있는 에너지보다 4000만 배 강한 수준이다.”
TA 콜라보레이션이 2023년 11월 발표한 논문의 한 대목이다. 연구팀은 2021년 5월 27일 발견된 초고에너지 우주선에 ‘아마테라스’란 이름을 붙였다. 아마테라스는 일본 신화에서 태양신을 부르는 이름이다. 사막 한 가운데 아마테라스가 등장하면서 과학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구에 참여한 김항배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를 1월 30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아마테라스 입자는 현재까지 관측된 초고에너지 우주선 중 두 번째로 강한 에너지를 가졌다”고 했다. 가장 강한 에너지를 가진 건 아마테라스 입자보다 30년 먼저 관측된 ‘오마이갓(Oh-My-God) 입자’다. TA 콜라보레이션이 형성되기 전 유타대 연구팀이 유타주의 사막에서 관측했다. 당시 오마이갓 입자가 가진 에너지는 3.2×1020eV였다.
신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과학자들이 이들 입자에 신의 이름을 붙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두 입자가 지구에 도달한 과정에는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면서 “복잡한 이야기지만, 우선 우주를 관측한다는 건 우주의 천체에서 내보내는 무언가를 관측하는 거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자”며 말을 꺼냈다.
천체에서 출발한 입자는 우주 공간을 날아오며 물질과 상호작용한다. 특히나 우주선의 경우 전하를 띠고 있어 주변 천체의 자기장에 의해 경로가 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에너지가 낮은 우주선일수록 지구에 더 자주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지구에 가장 흔하게 떨어지는 우주선은 태양에서 온 양성자다. 그다음 흔한 건 우리은하 내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튀는 파편들이다. 이들 우주선은 비교적 출처가 명확하다.
문제는 초고에너지 우주선이다. 초고에너지 우주선의 경우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우주배경복사라는 장애물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왜 초고에너지 우주선만 영향을 받냐면, 초고에너지 우주선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체에 퍼진 전자기파다. 우주배경복사 속 광자는 웬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입자가 아니고서는 상호작용 하지 않는다. 우주배경복사와 상호작용하려면 약 4×1019eV 이상의 에너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에너지 한계를 ‘GZK 에너지’라 한다. 아마테라스 입자와 오마이갓 입자의 에너지가 딱 GZK 에너지 한계를 넘는다.
GZK 에너지 한계를 넘는 입자는 우주배경복사 속 광자와 부딪혀 파이온이라는 입자를 만든다. 그리고 에너지를 잃는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으니, 결국 GZK 에너지 한계를 넘는 입자는 우주배경복사와 지속해서 충돌하며 에너지를 잃는다. 그러다 가진 에너지가 GZK 에너지 한계 이하로 떨어지면 우주배경복사와 더 이상 상호작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지구에 도달한 우주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GZK 에너지보다 더 높다면, 이 입자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GZK 에너지보다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올 수 있는 거리를 ‘GZK 반지름’이라고 한다. GZK 반지름은 입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양성자의 경우 GZK 반지름은 약 3억 2616만 광년에 달한다.
설명이 길었다. 정리하자면 아마테라스 입자나 오마이갓 입자가 가진 에너지가 GZK 에너지보다 높으니, 이는 곧 지구를 기준으로 대략 3억 2616만 광년 반경 안에서 왔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과학자들이 혼란에 빠질 이유도 없었을 거다. 김 교수는 “그런데 GZK 반지름 안을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아마테라스 입자와 오마이갓 입자가 날아온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오 마이 갓.
거대한 블랙홀이거나,
우주가 깨진 자리거나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다시 논문을 살펴보자. 논문에는 다음처럼 쓰여있다. “아마테라스 입자가 온 방향에는 우주 거대구조 속 빈 공간이 있다. 이 현상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주 공간에 거대한 자기장을 가진 천체가 있어 입자의 경로가 많이 휘었거나, 우리은하 근처에 그간 관측되지 않았던 천체가 있거나, 혹은 우리가 입자물리학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이 완전하지 않았거나.”
TA 콜라보레이션의 일원으로 참여 중인 류동수 UNIST 물리학과 교수는 “현재 논의되는 아마테라스 입자와 오마이갓 입자의 출처 중에서 아직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동의를 얻은 곳은 없다”고 했다. “입자물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우주 공간에 얼음이 얼 때 금이 가듯 공간이 깨진 결함이 있고 이 결함에서 이들 입자가 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체물리의 차원에서는 중심에 전파 제트를 뿜는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는 전파은하, 또 별이 많이 탄생하고 있는 별 탄생 은하가 입자들의 출처로 꼽힙니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아직은.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저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애초에 초고에너지 입자는 100년에 한 개씩 떨어지는 입자를 모아 분석해야 하는 연구 분야니까요.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연구해야 하죠. 앞으로 TA 콜라보레이션은 관측 면적을 넓히는 한편,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뽑는 방법을 고안해 보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답했다.
출처도, 경로도 미스터리다. 지금 초고에너지 우주선이 몸을 꿰뚫고 지나가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초고에너지 우주선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기자의 우문에 류 교수가 내놓은 현답으로 기사를 마친다.
“수백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느끼진 못하겠지만, 사실 우주에 대한 연구는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테면 화성에 사람을 보낼 때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이 화성까지 가면서 어떤 우주선에 노출될지는 그들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인류가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주를 이해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