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이 위중하니 간을 내놓으라니요. 좋은 구경을 시켜준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 용궁에 도착한 토끼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요? 토끼의 머릿속에 묘책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아이고 용왕님, 아쉽게도 지금 제겐 간이 없습니다요!”
토끼의 간이 없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임종을 맞을 용왕과 간을 지켜야만 사는 토끼. 정말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인간 세상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이제 세포 하나로 장기를 만드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만든 유사장기는 ‘오가노이드’라고 부르는데요. 줄기세포를 3차원(3D)으로 배양해서 만듭니다. 뇌, 소장 등 다양한 장기의 오가노이드가 개발되고 있죠.
용왕과 토끼가 생명을 걸고 다퉜던 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해 2월에는 진송완 한국산업기술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스몰’에 3D 프린팅으로 인간 간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간의 기본 구조인 간소엽과 내부 혈관 구조를 구현해 기능을 확인했죠. doi: 10.1002./smll.201905505
간 오가노이드로 실험동물을 대체해 수많은 동물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공현준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생명공학과 교수와 김용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전성연구단장팀은 제브라피시 간 오가노이드를 배양해 실험동물을 대체할 방법을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과 기술’에 지난해 9월 발표했습니다. doi: 10.1021/acs.est.0c01988
제브라피시는 화학물질의 환경 독성평가를 진행할 때 널리 사용되는 어류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있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간 오가노이드입니다. 하지만 그간 제브라피시 간 오가노이드 개발이 어려웠는데요. 플라스틱이나 유리처럼 단단한 표면 위에서 세포를 배양할 때 조직이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간세포를 부드러운 뼈대 위에서 배양하는 방법으로 간 오가노이드의 기능을 오래 유지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콜라겐과 폴리에틸렌글리콜로 만든 오가노이드의 지지체 위에서 배양한 결과, 제브라피시 간세포들이 스스로 결합해 28일 동안 형상을 유지했죠. 연구팀은 이 방식을 활용해 화학물질의 영향을 6주 이상 평가할 수 있는 간 오가노이드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제브라피시 간 오가노이드 연구는 동물실험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제브라피시와 인간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이 동화의 결말과 달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