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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④ 새로운 바이러스 조립

Chapter 03 I 감염

유전체를 복제하는 동시에 바이러스는 각종 단백질을 합성해내야 한다. 유전체를 추가로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효소,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효소, 유전체를 감쌀 단백질 껍질 등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숙주세포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한다. 전령RNA(mRNA)가 소포체로 이동해 리보솜에서 아미노산이 합성되는 번역  과정과, 골지체에서 후생학적 변화를 통해 단백질이 성숙되는 과정 등 숙주 세포가 단백질을 만드는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며 바이러스는 자신의 단백질을 만든다. 

바이러스의 유전체 안에는 바이러스 자손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백질의 정보가 담겨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을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SARS-CoV-2)의 경우 30kbp(킬로 베이스페어·1kbp는 1000개의 염기쌍)  정도 되는 RNA 유전체에 RdRP (RNA를 기반으로 RNA를 합성하는 중합효소), 스파이크, 외피, 막, 캡시드 단백질에 대한 유전정보가 순서대로 담겨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와 같이 유전체 의 길이가 긴 바이러스는 유전체를 효율적으로 복제하기 위해 불연속 전사 (discontinuous transcription)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길이가 긴 원본 RNA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복사본을 먼저 많이 만들어낸 뒤 복사본에서 각각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이다.  복사본 RNA의 합성은 유전체의 뒷부분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방식을 이용하면 유전체 뒷부분에 있는 껍질 단백질 유전정보를 담은 복사본 RNA가 많이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껍질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유전체의 특정 부분을 번역해 필요한 단백질을 각각 만들어내는 일반 세포와 달리,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체를 한꺼번에 번역해 단백질을 덩어리째 합성한 뒤 단백질 가위로 잘라서 사용한다.  일본뇌염바이러스의 경우 11kb 크기의 RNA를 통째로 번역한 뒤 숙주세포의 단백질 가위를 이용해 10조각으로 잘라 사용한다.

재료가 되는 단백질을 합성한 뒤에는 유전체를 담을 단백질 껍질을 만든다. 단백질 껍질은 마치 레고를 완성하듯 작은 조각을 하나씩 조립해서 만든다. 이 과정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껍질을 이루는 구조단백질이 각각 따로 존재할 때보다 하나의 구조를 형성할 때 화학적으로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나선형 바이러스의 경우 캡소미어(막 단백질을 이루는 단위 단백질) 조각을 한 층씩 쌓아 올리고, 정이십면체 모양의 바이러스도 캡소미어 조각으로 마치 축구공을 만들 듯 조립한다.

이렇게 완전체를 조립한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숙주세포에 침투할 때 과정을 거꾸로 거쳐 미세소관을 타고 세포막으로 이동한 뒤 외포작용(exocytosis)을 통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간다.  외포작용은 세포 안의 물질을 담은 소낭이 세포막과 융합하면서 세포막과 세포 밖으로 방출되는 과정이다. 바이러스가 방출되는 모습이 식물에서 싹이 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출아(budd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이러스가 유전체를 복사하고 단백질을 합성하며 마지막에 숙주세포 바깥으로 탈출하는 과정의 성공 여부는 시간에 달렸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고농도로 발현 되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숙주세포가 인식하고 면역세포에게 출동 신호를 보내기 전에 복제를 끝내고 숙주세포를 탈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유전체에서 단백질을 곧바로 만들어낼 수 있는 RNA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의 핵까지 유전체를 침투시켜야 하는 DNA 바이러스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또 단백질을 합성한 뒤 잘라서 쓰는 시스템도 복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바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런 전략을 쓰고 있다.

복사한 유전체를 단백질 껍질로 감쌌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바로 병원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막 완성된 바이러스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방출된 뒤 성숙 과정을 거친다. 

이 또한 바이러스가 세포를 무사히 탈출하기 위한 전략이다. 만약 숙주세포 내에서 완전히 성숙한 상태가 된 뒤 세포를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껍질을 감싼 외피 단백질 표면의 당단백질 등이 숙주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할 수 있어 숙주세포를 빠져나가기는커녕 되려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영리한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서  빠져나올 때 단백질 가위를 이용해  숙주세포에 다시 붙는 것을 방지 하기도 한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경우 바이러스 표면에 부착된 ‘뉴라미데이스 (neuramidase)’라는 단백질 가위를  이용해 숙주세포의 막에 달린 시알산 (sialic acid) 잔기를 잘라내며 밖으로 유유히 탈출한다.

물론 숙주세포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숙주세포는 끝까지 바이러스를  붙잡으려고 한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백혈구는 테더린(tetherin) 단백질을 분비하는데, 이 단백질은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바이러스를 붙잡는다. 면역세포가 도착할 때까지 잡아두는 것이다. 일단 바이러스가 숙주세포 탈출에서 성공하면 다음 목표는 무사히 체외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개체의 숙주세포를 인질 삼아 증식을 이어갈 수 있다. 

이때 가장 큰 적은 인체의 면역시스템 이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면역세포를 공격하거나 면역반응 기작을 억제하는 등 저마다 전략을 구사하며 면역시스템을 무력화한다. 

뎅기열을 일으키는 뎅기바이러스의 경우, 면역세포의 일종인 대식세포를 숙주로 삼으며 대식세포에서 나오는 활성산소를 억제한다. 

활성산소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신호 물질인 인터페론을 유도하는데, 이를 막아 면역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등 급성 질환을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는 중화항체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자손을  훨씬 많이 만들어버리는 ‘인해전술’을  펼치기도 한다.

동시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인터페론 유도 반응도 억제한다.

자손을 더 많이 복제하기 위해 숙주 세포의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바이러스 도 있다. 인간 유두종바이러스(HPV)는 특정 단백질을 합성해 숙주세포의 증식을 비정상적으로 촉진한다. 이것이 자궁경부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리한 바이러스는 자신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숙주세포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숙주세포가 죽으면 자신도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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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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