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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② 숙주세포 침투

Chapter 03 I 감염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키기 위해 먼저 숙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한다. 


수용체는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흔히 자물쇠에 비유된다. 이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바이러스 외피 단백질)만이 세포의 문을 열 수 있다. 


바이러스는 보통 유전체와 이를 감싸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물론 모든 바이러스에 이런 공식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가장 단순한 바이러스로 알려진 비로이드(viroid)는 단백질 없이 오직 120bp(베이스페어·염기쌍)의 단일가닥 RNA로 이뤄져 있다). 


유전체는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오늘날 생명체 대부분이 안정적인 이중가닥의 DNA를 유전체로 활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단일가닥의 DNA나 RNA로 이뤄진 것도 있다. 


생명의 기원이 RNA에서 비롯됐다는 ‘RNA 세계(world)’ 가설에 따르면, 초기 생명체는 유전체로 DNA 대신 RNA를 이용했다. 


현대에는 바이러스만이 유일하게 RNA를 유전체로 가진 생명체로 남아있다.


유전체는 마치 보물처럼 여러 단백질에 둘러싸여 있다.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껍질을 이루는 구조단백질과 복제에 필요한 효소를 포함하는 비구조단백질 등 크게 둘로 나뉜다. 구조단백질에는 유전체를 감싸는 캡시드(capsid)와 막(membrane), 외피(envelope) 단백질 등이 있다.


비구조단백질은 RNA를 복제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효소를 말한다.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캡시드 단백질에 싸여 있는데, 이를 뉴클레오캡시드(nucleocapsid)라고 부른다. 


유전체 바깥으로는 지질 이중층으로 이뤄진 막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표면을 이루고 있다. 이 막 단백질의 모양에 따라 나선형, 정이십면체 등 바이러스의 형태가 결정된다.


광견병바이러스나 수포성구내염바이러스는 대표적인 나선형 바이러스다. 막 단백질을 이루는 단위 단백질인 캡소미어(capsomere)가 마치 벽돌처럼 나선형으로 쌓이며 원기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캡소미어는 소수성 분자 사이의 약한 결합인 소수성 상호작용에 의해 연결돼있기 때문에 계면활성제 등으로 쉽게 부술 수 있다.


또 구형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사실 정이십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캡소미어들이 여러 방식으로 연결돼 정이십면체를 만든다. 구제역바이러스의 경우 단백질 세 개가 모여 정삼각형 모양의 소단위체를 만들고, 이 소단위체 20개가 모여 정이십면체 구조를 만든다. 정이십면체는 5종류의 정다면체(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중 표면적 대비 부피가 가장 커 유전체를 많이 담을 수 있고 나선형 구조에 비해 단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바이러스의 껍질은 외피 단백질이 한 겹 더 싸고 있다. 외피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서 빠져나오면서 마치 겉옷을 걸치듯 숙주세포의 세포막 일부를 얻어낸 결과물이다. 외피 단백질 표면에는 당단백질 등 바이러스의 단백질이 박혀있다.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은 자물쇠를 여는 열쇠처럼 숙주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경우 외피 단백질 표면에 당단백질 3개가 스파이크 단백질과 비공유결합을 이루며 붙어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숙주세포의 수용체이자 막관통단백질인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2(ACE2)와 결합해 바이러스가 숙주세포 안으로 침투하도록 돕는다. 


바이러스의 감염력은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과 숙주세포의 수용체가 어떻게,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대부분 세포가 가진 시알산(sialic acid) 수용체를 인식해 결합하고,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대부분 세포에 있는 ACE2 수용체에 결합한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호흡기 바이러스로 분류되는데, 처음에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러붙고 점막세포를 먼저 감염시키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경우 숙주세포의 CD4 수용체에만 특이적으로 결합한다. 


CD4 수용체는 T림프구 표면에서만 발견되는 단백질이다. 결과적으로 HIV는 도움 T림프구, 대식세포 등 특정 면역세포에만 결합해 면역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일단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면 인체 침투를 위한 첫 관문은 통과한 셈이다. 


다음 단계는 숙주세포의 지질 이중층을 뚫어야 한다. 우리 몸의 세포막은 친수성인 머리와 소수성인 꼬리로 이뤄진 지질이 두 겹으로 싸고 있는 지질 이중층 구조다. 세포 바깥과 세포질 안쪽으로 각각 머리를 내밀고 안쪽으로 꼬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세포 입장에서는 세포막의 지질 이중층 구조가 친수성과 소수성을 골라 선택적으로 투과시킬 수 있어 생존에 효율적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이 이중 구조가 세포 침투의 큰 장애물이다. 


지질 이중층을 뚫기 위해 바이러스는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일반적으로는 내포작용(endocytosis)을 사용한다.


내포작용은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외부물질을 필요에 의해 받아들이거나 세포 내부로 끌어들여 파괴하기 위해 세포가 쓰는 방법인데, 바이러스가 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바이러스는 자신의 당단백질을 숙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시킨다. 그러면 수용체의 신호를 받은 세포는 세포막을 안쪽으로 함입시키고, 이 틈을 타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숙주세포의 세포막으로 이뤄진 엔도솜(endosome)이 만들어 지면서 바이러스가 이 안으로 숨는다. 


바이러스를 품은 엔도솜은 세포 내부에 도로망처럼 뻗어있는 미세소관(microtubule)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한다. 


엔도솜은 이 과정에서 리소좀과 결합하는데, 그 결과 점차 엔도솜 내부의 수소이온농도(pH)가 4.5까지 낮아진다. 


그러면 산성 환경에서 활성화되는 효소가 작동을 시작해 엔도솜이 열리고, 바이러스는 자연스럽게 세포 내부에 퍼진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이런 내포작용을 이용해 세포에 침투한다. 


HIV나 헤르페스바이러스는 조금 다른 전략을 취한다. 바이러스의 막과 숙주 세포의 막을 마치 녹이듯 융합하는데, 이런 막융합이 일어나면 바이러스의 막과 세포막이 하나가 되며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세포 안에 안착한다. 


주사기를 찔러 넣듯 유전체를 세포 안으로 주입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박테리오파지 등 주로 박테리아(세균)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들이 이런 전략을 쓴다. 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에 붙으면 바이러스의 꼬리 부분 섬유가 박테리아의 세포막에 파고들고, 이때 유전체를 세포 내부로 밀어 넣는다.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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