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힘찬 기상과 애절함을 담은 소리 피리

‘뿌우’, 뱃고동처럼 우렁찬 소리가 작은 대나무관으로 뿜어져 나온다. 피리는 국악기 가운데 크기가 작은 악기에 속하지만 어느 악기에도 음량이 뒤지지 않는다. 큰 소리 덕분에 합주에서 주선율을 연주하는 가락악기로 쓰이며 음악 전체를 이끄는 역할도 한다. 피리는 낮은음에서 힘찬 기상을 뿜어내지만 높은음에서는 애절함을 담아내는‘두 얼굴’도 가졌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는 민속악인 산조나 민요연주에서도 중요한 몫을 한다.

‘피리’라는 용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다란 관악기를 통칭하는 대명사처럼 쓰인다. 하지만 국악기에서 피리는 팔음(八音)분류법 중 ‘죽(竹)’부에 속하며, 대나무로 만든 관대에 마우스피스 역할을 하는 ‘서’를 꽂아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대금처럼 악기
를 가로로 불거나 서를 사용하지 않는 악기는 피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크기 따라 음색 다른 세 가지 피리

피리는 악기 크기와 음색, 쓰임새에 따라 향피리와 당피리, 세피리로 나뉜다. 향피리는 우리 전통악기(향악기)로 주로 수제천이나 취타, 여민락 같은 향악을 연주할 때 쓰인다. 보통 향피리의 관대는 ‘시누대’라고 불리는 ‘해장죽(海藏竹)’으로 만드는데, 이 대나무는 일반 대나무와 달리 두께가 2~3cm로 가늘다. 해장죽은 화본과에 속하는 다년생 대나무로 바닷가와 가까운 남부지방이나 동해안 등지에서 많이 나며, 가늘지만 잘 부러지지 않아 예부터 낚싯대나 활을 만들 때 많이 쓰였다.

관대 길이가 27cm 정도인 향피리는 음을 연주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막는 부분인 지공이 관대 뒤쪽에 1개, 앞쪽에 7개 모두 8개가 있다. 향피리는 가장 낮은 음인 배임종부터 가장 높은 음인 청태주까지 2옥타브 반에 걸친 음을 낸다. 향악뿐 아니라 당악을 연주할 때도 일부분 향피리가 쓰이는데, 이때 운지법이 조금 달라진다.

향악에서는 8개의 지공을 모두 사용하지만 당악을 연주할 때는 평소보다 하나씩 위쪽의 지공을 막아 조바꿈을 한다. 그래서 당악을 연주할 때는 제일 아래쪽 지공을 쓰지 않는다. 왕이 행차할 때나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연주된 종묘제례악, 낙양춘이나 보허자 같
은 당악에 쓰는 당피리는 중국에서 전래된 악기(당악기)로 분류된다.

당피리는 관대 길이가 20cm 정도로 향피리보다 짧고 굵기는 단소와 비슷할 정도로 굵다. 그래서 얼핏 보면 단소에 서를 꽂아 부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국립국악원 피리연주자 정운종씨는“당피리는 관대 두께가 향피리보다 2배 정도 두껍기 때문에 음량도 훨씬 크다”며“그만큼 더 많은 입김을 불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향피리보다 연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연주자들 대부분은 향피리 연주법을 익힌 뒤 당피리 연주법을 배운다.

당피리는 기준음인 황종이 진동수 262Hz의 도(C)와 같은 반면, 향피리는 C보다 한 옥타브 아래의 미 플랫(E♭)과 같다. 향피리와 음색을 비교하면 당피리가 좀 더 밝은 느낌을 준다. 두 악기는 지공의 위치도 조금 다르다. 향피리는 첫 번째 지공이 관대 아래쪽에 있지만 당피리는 두 번째 지공이 관대 아래쪽에 있다. 그런데 조선 초기 편찬된 역사서 ‘고려사’의 ‘악지(樂志)’편과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당피리의 지공이 모두 9개라고 기록돼 있다. 현재 연주에 쓰는 당피리는 모두 조선 성종 때 향피리와 같이 지공이 8개로 개량된 악기다.

세피리는 소규모 악기로 편성된 실내악을 연주할 때나 가곡, 가사, 시조 등의 반주에 쓰기 위해 음량을 줄인 악기다. 소규모 악기 편성에서 피리의 큰 소리가 다른 악기 소리
를 가리거나 가곡이나 가사의 전달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피리 관대 굵기를 절반
정도로 줄였다는 뜻에서 이름에 ‘가늘 세(細)’자를 붙였다. 운지법은 향피리와 같으며 음색은 밝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영산회상이나 천년만세와 같은 곡을 연주할 때 쓴다.

불규칙한 파동 거르는 서

피리는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황해남도 안악군 용순면에 있는 고구려 고분인 안악3호분(357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에는 피리가 전래된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벽화가 남아있다. 왕이 신하를 거느리고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대행렬도’에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로 추정해 볼 때 전문가들은 피리가 4세기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개량 과정을 거쳐 4세기 즈음에는 향피리가 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반면 당피리는 고려 예종 9년(1114년) 중국 송나라의 대성아악이 들어올 당시 아악을 연주할 때 필요한 악기들과 함께 전해졌다. 피리는 혼자 불더라도 3~4명이 대금을 불 때와 맞먹을 정도로 소리가 크다. 이처럼 피리가 큰 음량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피리는 서양악기 오보에처럼 마우스피스 역할을 하는 서가 바람을 모으기 때문에 바람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반면 대금이나 단소 같은 악기는 바람을 취구로 불어 넣을 때 바람의 절반 정도가 악기 밖으로 새 나간다. 같은 세기로 바람을 불 때 그만큼 악기를 통과하는 바람이 적어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다.

서는 얇게 깎은 대나무 두 겹을 겹친 뒤 구리줄로 묶어 만드는데,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악기가 잡음 없이 맑은 소리를 내려면 특정 진동수를 갖는 파동이 규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여러 진동수의 파동이 뒤섞이면 귀에는 소음이나 잡음처럼 들린다. 바람을 ‘후’ 하고 불면 그 속에는 여러 진동수를 갖는 파동이 뒤섞여 있는데, 서는 여기서 특정 진동수의 파동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악기가 가진 다양한 음색과 풍부한 표현력 덕분에 피리는 전통음악뿐 아니라 창작 국악곡에도 많이 쓰인다. 다른 국악기와 비교할 때 피리는 초기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창작악에 맞춰 피리를 개량하려는 시도도 일고 있다. 북한에서 쓰이는 대피리도 개량해 연주에 쓰고 있다.

대피리는 그 이름처럼 향피리보다 크기가 크며 관대를 박달나무나 자단나무로 만든다. 음을 조절하기 위해 플루트처럼 별도의 키 조절 장치를 달아 반음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에 이어 힘찬 기상과 애절한 음색을 전하는피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 진로 추천

  • 국어국문·한국학
  • 음악
  • 문화콘텐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