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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에게 DNA 백신 시험 중"…코로나19 백신 개발 현장에 가다

 ▲(왼쪽) 제넥신 유전자생산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대장균의 배양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이 대장균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기 위한 바이러스 항원 유전자가 삽입돼 있다. (오른쪽) 연구원이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를 이용해 바이러스 항원 유전자가 포함된 플라스미드를 정제하고 있다.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자 SF영화에 나올 것 같은 넓은 실험실이 펼쳐졌다. 제공받은 실험복을 입고 들어서니 실험복과 마스크로 꽁꽁 싸맨 연구원 10여 명이 각종 실험장비 앞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가득한 실험실은 이따금씩 들려오는 실험장비 소리와 작게 의논하는 소리 외에는 적막이 흘렀다. 연구원들은 기자가 연구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중에도 기자에게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4월 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생명공학기업 제넥신 유전자생산기술연구소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장균을 키우는 배양기입니다. 배양 중인 대장균에는 코로나19 백신에 사용되는 DNA가 들어있죠.”

 

기자를 실험실로 안내한 서유석 제넥신 유전자생산기술연구소 생산팀장은 연구실 한 편에 자리잡은 정체 모를 장치 앞에 멈춰 말했다. 장치에 들어있는 불투명한 액체 속에서는 보글보글 끊임없이 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장균에 공급되는 산소였다. 


서 팀장은 “DNA 백신 후보물질을 영장류인 원숭이에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할 수 있도록 6월 중에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DNA 백신 후보물질, 영장류에 실험 중

 

코로나19가 장기화될 조짐에 전 세계는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4월 20일 기준 전 세계 16만 명을 넘어서며 의심자 격리, 방역 등 보건 관리만으로는 코로나19 종식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 화이자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 각각 약 1조 원과 9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올해 안에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백신을 개발할 연구팀이 속속 꾸려졌다. 그중 제넥신은 국제백신연구소(IVI)와 KAIST, 포스텍(POSTECH), 바이넥스, 제넨바이오 등 5개 기관과 함께 코로나19를 예방할 DNA 백신 ‘GX-19’를 개발하고 있다. 


백신은 질병에 걸리기 전에 항원에 노출시켜 면역반응을 유도해 질병을 예방하는 의약품이다.  그중 DNA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항원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담은 DNA를 인체 내 세포에 넣어 체내에서 항원 부위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개발과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임상시험에 진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6주 이내로 짧아 RNA 백신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으로 가장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공동 연구팀은 공개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바탕으로 스파이크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의 DNA 서열을 선별했다. 스파이크단백질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결합해 유전체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항원으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이렇게 확인된 스파이크단백질 발현 유전자의 전체 또는 일부 RNA 염기서열을 사용해 10여 가지 항원 부위를 발현하는 DNA를 합성했다. DNA를 다양하게 합성한 이유는 그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후보물질을 추려내기 위해서다. DNA가 짧을수록 세포 안쪽으로 침투할 확률이 높아 항체를 만드는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합성한 DNA는 플라스미드 형태의 백신 벡터에 삽입한다. 그리고 플라스미드를 대장균에 넣어주면(이를 ‘형질전환’이라 부른다), 대장균이 증식하며 플라스미드가 복제돼 스파이크단백질을 발현시키는 DNA도 대량 생산된다(이 과정을 ‘클로닝(cloning)’이라고 부른다). 연구소에서 처음 맞닥뜨린 대장균 배양기가 바로 이런 대장균 증식을 유도하는 장치다.

 

▲대장균 배양기가 작동하는 모습. 대장균의 증식을 통해 백신 원료로 사용되는 플라스미드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량으로 증식한 대장균의 단백질과 RNA, DNA 등을 제거하면 합성한 스파이크단백질 발현 유전자가 포함된 플라스미드만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안정화제, 면역보조제 등을 넣어 적절한 형태를 만들면(이를 ‘제형화’라 한다) 동물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DNA 백신이 완성된다. 서 팀장은 “DNA는 다른 물질에 비해 화학적,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제형화 과정에서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넥신은 현재 이렇게 만든 DNA 백신 후보물질로 영장류 동물시험을 진행 중이다. 실험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제넨바이오 영장류실험실에서 이뤄진다. 면역반응은 다양한 세포가 상호작용하면서 이뤄져 세포실험만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동물실험이 필수다.  


일반적으로 백신 효능 동물실험은 쥐를 통해 이뤄진다. 먼저 후보물질을 쥐의 근육에 주사해 혈액을 통해서 전신에 퍼지게 하고 3~6주 동안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그 다음 면역세포의 수와 분비된 면역물질의 양, 항체의 양 등을 확인한다. 이때 여러 후보물질 중 면역반응을 가장 활발하게 일으킨 물질이 채택된다. 


서 팀장은 “DNA 백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과를 보이는 DNA 백신 후보물질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사전 쥐 실험을 통해 10여 가지 DNA 백신 후보물질을 시험했고, 그중 일부에서 면역반응이 유발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추려낸 DNA 백신 후보물질로 영장류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람과 쥐는 유전적인 차이가 커 쥐에서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 사람에게는 효과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NA 백신은 세포 속으로 침투해야 면역반응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전기천공 등 백신 성공률을 높일 다양한 약물전달방법도 함께 연구되고 있다. 서 팀장은 “영장류는 사람과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해 면역반응이나 독성반응 등을 예측하기 좋다”며 “영장류 실험을 통해 효과적인 백신 전달법을 알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DNA 백신 vs. 단백질 백신, 장단점은?


한편 국내 제약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는 단백질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백신은 종류가 다양하다. DNA 백신, RNA 백신(둘을 합쳐 핵산 백신이라 부른다)뿐만 아니라 병원성 세포 전체(병원체)를 주사하는 세포전체 백신(생백신과 사백신으로 나뉜다), 병원성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항원)을 분리·정제해 주사하는 단백질 백신 등이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백신의 대부분은 병원체를 직접 주사하는 생백신과 사백신이다. 백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병원체를 배양해 사용하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다. 하지만 사람에게 실제로 적용하려면 오랜 연구가 필요하다. 백신으로 사용한 병원체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킬 수 있어 안전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단백질 백신은 생백신과 사백신의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단백질 백신은 병원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항원 단백질만 분리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병원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백신과 달리 단백질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다. 


하지만 효능을 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선정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또 다른 백신에 비해 안정적으로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단백질은 보관 기간이 길어질수록 모양이 변하거나 스스로 분해되며 항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B형 간염백신이 바로 단백질 백신이다.


DNA 백신, RNA 백신 같은 핵산 백신은 가장 최근에 개발된 방식으로, 항원 단백질을 발현할수 있는 DNA를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어 개발 기간이 짧고 생산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다. 그러나 항원 정보를 담은 DNA에서 항원을 만든뒤 항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면역반응 유발 효과는 다른 백신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현재 미국 모더나와 이노비오, 중국 군사의학연구원 등 해외 연구기관은 대부분 핵산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2100억 원 투자


백신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개발 기간이 짧은 편에 속하는 핵산 백신도 기존 방식대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면 상용화까지 최소 3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외 연구기관에선 이미 속도를 내고 있다. 모더나와 이노비오, 중국군사의학연구원 등이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모더나는 3월 16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 백신 투여를 마쳤다. 


누바 아페얀 모더나 회장은 4월 2일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봄이나 초여름에 제2상 임상시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비오와 중국군사의학연구원도 올해 중반까지 제1상 임상시험을 마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한 사례가 없다. 제넥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 스마젠 등은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고, GC녹십자, 지플러스생명과학 등은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단계다. 


서 팀장은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먼저 시작했지만, 과정에 따라서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먼저 끝낼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임상시험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피험자 모집이 쉽고 우수한 CRO가 많아 효력과 안정성만 확실하다면 짧은 기간에 임상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9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산업계·학계·연구소·의료계 합동회의를 주재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2100억 원을 투자하고, 추경에 반영한 치료제 개발 연구개발(R&D) 투자와 신종 바이러스 연구소 설립을 시작으로 치료제와 백신 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임상시험 중인 미국이나 중국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늘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임상시험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과 교수는 “코로나19는 감염지역이 광범위하고 이례적으로 남·북반구에서 모두 유행하는 등 계절성 질병으로 유지될 확률이 높아 백신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만 백신은 유효성뿐만 아니라 부작용 여부가 중요한 만큼 임상시험 절차는 안전성이 담보되는 수준까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용어

RNA 백신 : 전령RNA(mRNA)를 인체 세포에 넣어 체내에서 항원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백신. 면역반응이 빠르게 일어나 효과가 금세 나타나지만 DNA 백신에 비해 발현되는 항원 단백질의 양이 적다.

플라스미드(plasmid) :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원형 DNA. 염색체 DNA와 독립적으로 복제할 수 있고 단백질도 발현할 수 있다.

전기천공(electroporation) :  세포막의 투과성을 높이기 위해 전기장으로 세포벽을 느슨하게 만드는 방법. 이 방법을 사용하면 DNA 등 일반적으로 세포에 들어가지 못하는 물질도 세포 내에 침투할 수 있다.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 신약개발 단계에서 제약기업의 의뢰를 받아 임상시험 진행 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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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병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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