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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학일기] 국가대표급 동아리에 뛰어든 용감한 한인 유학생

◇ 술술읽혀요 | 나의 일본 유학 일기

 

 

일본 대학의 동아리 활동은 크게 ‘서클’ 활동과 ‘부’ 활동으로 나뉜다. 서클은 관심사가 같은 학생들이 모여 가볍게 취미 활동을 하는 그룹이다. 반면 부는 애초에 ‘5년(4년+유급)을 함께할 부원을 찾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이악물고 취미 활동을 한다. 그래서 학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크다. 


도쿄대에는 신입생 교육(OT)이 있는 날, 대학 내의 모든 부와 서클이 교육장 출구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신입생들을 낚아채는(?) 전통이 있다. 일본인 평균 신장보다 약 10cm가 크고, 심지어 과체중인 내가 지나가자 럭비부, 미식축구부, 스모부, 라크로스부, 수영부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내 번호를 가져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뭐든 빨리 질리는 성격 탓에 여러 가지 취미를 시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력이 피아노 2년, 바이올린 2년, 미술 2년, 테니스 3년이다.


대학에 와서 이 중 무엇을 동아리 활동으로  다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경력이 긴 테니스를 하기로 결정했다. ‘5년을 함께할’ 자신은 없었지만,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테니스‘부’에 입부했다. 


테니스부의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이 친 공을 받아내기는 커녕 공이 눈앞에 보이지도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 동네 아저씨들과 시합한 게 전부였던 나는 부내 리그전에서 항상 꼴찌였다.


한번은 내 바로 윗순위인 친구에게 “단 한 경기도 못 이기겠다”라고 푸념하자, 그 친구는 본인도 중학생이 되고서야 테니스를 시작해 잘 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일본 친구들이 취미 생활에서도 얼마나 외길을 파는지 알 수 있다. 


테니스부원들 모두 심성은 착했으나, 운동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입이 거친 친구들이 꽤 많았다. 이때 나는 일본어를 막 배우고 있을 때였는데, 매일 수업 전 아침 연습과 저녁 연습을 하며 자주 어울리다보니 그 친구들의 거친 말투와 어휘를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렸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덕분에 일본어 구사 수준이 토착 일본인 남자 대학생에 맞춰졌다. 그래서 지금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일본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테니스부는 재밌었지만 반 년 만에 나왔다. 나의 순위가 항상 꼴찌라 공식전에 못 나가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때쯤 새로 보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영향이 매우 컸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이었는데, 이것을 보고 10년 넘게 식어있던 클래식에 대한 열정에 불이 붙어버렸다. 바이올린을 너무 켜고 싶어졌다. 그렇게 테니스부를 탈퇴하고, 도쿄대생과 도쿄대 주변 대학의 음대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서클에 제2바이올리니스트로 합류했다. 


오케스트라 서클도 학생들의 실력이 굉장했다. 콘서트마스터(바이올린 리더)는 고등학생 때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해 국제 오케스트라 팀과 협연한 적도 있는 사실상 프로였다. 반면 나는 10년 만에 바이올린을 잡아보는 초짜였다. 심지어 바이올린도 급하게 아마존에서 주문한, 본체에 조금 비싼 현만 끼워 넣은 급조품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음악은 즐거웠다. 비록 내 바이올린 실력은 서클 친구들 수준에 못 미쳤지만, 친절한 선배와 선생님이 꼼꼼하게 챙겨주신 덕분에 잘 적응했고, 단체연습에도 꼬박꼬박 나갔다. 


여름방학이 되자 서클에선 합숙 연습을 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온천여관을 통째로 빌렸는데, 이곳에서 4박5일 동안 레크리에이션 한 번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연습만 시켰다. 서클이라하기엔 ‘빡센’ 스케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도쿄대가 아니고 음대에 들어온 게 틀림없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달렸다. 그 합숙은 트라우마가 돼버려 결국 오케스트라 서클도 1년 만에 그만뒀다. 


오케스트라는 그만뒀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요즘 맛들인 취미는 혼자 가라오케(노래방)에 가서 바이올린으로 애니메이션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아직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만한 실력은 아니지만 이 취미는 도중에 질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이어나갈 예정이다. 나중에 늙고 은퇴해서 내 공학기술이 쓸모가 없어졌을 때, 음악으로라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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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안재솔 일본 도쿄대 전자정보공학부 3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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