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우리 몸이 아주 먼 거리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진화했고, 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 발에 맞는 운동화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달리자니 운동장까지 첫 한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내일까지 해야 할 일, 푹푹 찌는 날씨…. 달리기를 하지 않기 위한 핑곗거리만 떠오른다. 그래서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기대보기로 했다.
“함께 달리기 해볼 사람, 손!”
“제가 평소에 스포츠 과학에 관심이 많아요.”
“올바른 달리기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문자와 페이스북을 통해 달리기의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신청자가 잇따랐다. 그중 성별과 나이, 평소 운동량, 운동 목적을 고려해 두 명을 선발했다. ‘스포츠 속의 과학’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재우 군(경기 내정중 2학년)과 꾸준하게 운동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는 서시현 양(경기외고 3학년)을 만났다.
운동해야 공부도 더 잘할까
과학동아가 달리기를 제안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달리기가 스트레스 해소와 인지능력 향상,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실제로 확인해보고 싶어서다.
적절한 운동이 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달리기는 별다른 기구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에 해당한다. 실제로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유산소 운동이 인지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내 올해 1월 논문을 발표했다. doi: 10.1212/WNL.0000000000007003
연구팀은 성인 132명을 대상으로 유산소 운동 후 인지능력을 테스트하고 자기공명영상(MRI)장치로 대뇌피질의 두께를 측정했다. 그 결과 유산소 운동을 한 그룹이 스트레칭만 한 그룹보다 실행능력 등 인지능력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전두엽을 포함한 대뇌피질의 두께도 더 두꺼웠다. 전두엽은 기억력과 판단력을 담당하는 부위이고, 피질의 두께는 뇌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이 기억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연방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근육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인 이리신(irisin)이 늘면 *시냅스 가소성이 증가하면서 장기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네이처 메디신’ 1월 7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91-018-0275-4
둘째로 운동의 인지능력 개선 효과는 나이가 어릴수록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학동아 독자들과 이 부분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태어난 지 석 달 된 쥐에게 쳇바퀴에서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시킨 뒤 서로 다른 두 가지 자극을 구분하게 했는데, 달리기를 꾸준히 한 쥐가 쳇바퀴가 없는 시설에서 지낸 쥐보다 자극을 더 잘 구분했다. 이는 새로운 뇌세포가 더 많이 생성됐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런 효과가 나이가 어린 쥐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doi: 10.1073/pnas.0911725107
소아청소년의 두뇌 발달을 연구하는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달리기 등 신체 활동은 시냅스를 늘려 기억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청소년기는 시냅스를 재구성하는 시기이므로 운동을 하면 신경세포가 성인에 비해 더 많이 늘어나 운동 효과도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만의 달리기 솔루션을 찾다
독자와 함께하는 달리기, 그 첫 단계는 올바른 달리기 방법을 처방받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독자 두 명과 8월 8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 위치한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을 찾았다. 이온 스포츠과학연구실 연구위원이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이 연구위원은 두 명에게 근육과 체지방분포를 알 수 있는 인바디 측정, 달리기에 필요한 근력과 심폐지구력을 측정하는 코어근력테스트, 호흡가스분석을 순서대로 실시했다.
코어근력테스트는 기계에 하반신을 고정한 뒤, 기계가 동서남북 상하좌우 8가지 방향으로 기울 때 상체 힘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한다. 흔들리는 기계 위에서 고전한 김 군은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데도 생각보다 버티기 힘들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어근력테스트에서 김 군과 서 양은 모두 복부근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근육에서 산소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호흡가스분석이 진행됐다. 김 군과 서 양은 기체측정기과 연결된 마스크를 쓴 뒤 트레드밀 위를 뛰었다. 시속 5.4km로 달리기 시작해 2분마다 속도를 시속 1.2km씩 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김 군은 10분 42초간, 서 양은 9분간 달렸다.
이때 바로 옆에 연결된 모니터에는 두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양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두 기체의 비율을 분석하면 시간대별로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심폐지구력을 알아볼 수 있는 분당 산소 섭취량은 두 사람 모두 평균으로 나왔다.
측정이 끝나고 드디어 달리기 처방이 내려졌다. 이 연구위원은 “두 학생 모두 근육량이 부족한 편이지만 달리기에 무리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며 “매일 30분 이상 달리되, 달리다 힘들면 중간에 걷다가 다시 달리는 식으로 연습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운동 시간을 별도로 내기 어렵다면 체육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을 위한 맞춤 솔루션도 나왔다. 이 연구위원은 김 군에게 “트레드밀을 달릴 때 양발의 보폭이 다르게 나타났다”며 “달리면서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또 발목 인대가 쉽게 늘어난다는 김 군에게 “축구를 하면서 무리하게 달리기보다는 조깅처럼 가볍게 뛰라”고 진단했다.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서 양에게는 “운동하러 멀리 나가기보다는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뛰는 것도 좋다”고 추천했다.
김 군과 서 양은 처방받은 대로 꾸준히 달려보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들의 달리기가 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포’ 사진을 찍는 기분으로 기억력과 집중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 문항은 김 교수의 자문을 얻어 제작했다.
달리기가 가져온 의외의 효과
운동 처방을 받고 일주일이 지난 8월 15일, 김 군과 서 양에게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변화를 물었다. 수면시간과 공부시간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하고, 기억력과 집중력 테스트를 다시 실시해 일주일 전과 결과를 비교했다.
아쉽게도 기억력과 집중력에서 큰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김 군의 집중력 점수가 운동 처방 전 43점에서 운동 처방 후 51점으로 소폭 향상됐지만, 달리기 효과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서 양도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실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태릉선수촌에 입소하는 국가대표 선수들도 운동으로 신체 변화를 확인하려면 8주 이상 걸린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니 꾸준히 운동하면서 장기적으로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수면 습관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두 학생 모두 ‘꿀잠’을 자게 된 것이다. 새벽까지 과제를 하며 만성피로에 시달렸다는 서 양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지 않다”며 “일주일간 기숙사에서 주는 아침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먹었다”며 뿌듯한 목소리로 몸의 변화를 전했다. 김 군도 “잠을 잘 자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는 운동을 할 때 몸 안에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고,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전환되면서 숙면을 돕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렘수면 동안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조직화되고 체계화되는 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숙면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듯,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아야 한다”며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운동하며 감정을 공유하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군과 서 양은 “일주일의 미션을 통해 나의 생활습관을 돌아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입을 모았다. 과학적인 달리기를 계기로 수면시간, 식사시간, 하루 중 가장 피곤한 시간 등 생활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매일 달리기를 실천하며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두달 뒤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의 건강한 변화를 응원한다. To be continued.
*용어정리
시냅스 가소성
신경세포를 잇는 시냅스가 뇌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