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끝까지 걸어가면 반도체관이 나온다. 이날은 마침 스승의 날이어서 간단한 행사가 있었다. 오후 2시 30분 반도체관 정문 앞에 레드카펫이 깔렸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케이크 전달식이 짧게 진행됐다. 케이크를 한 조각씩 나눠 들고 바쁘게 이동하는 학생들을 따라 반도체관 안으로 들어갔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서 개설한 ‘아날로그 집적회로 설계’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1~2학년 때 반도체 재료와 소자,간단한 회로를,
3~4학년 때 복잡한 회로와 구조를 배운다"
최근 정부와 기업이 시스템반도체를 미래 사업으로 정하고 막대한 투자를 예고하면서 시스템반도체 분야 전문 인력 수급에 대한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세대와 고려대, 서울대, KAIST 등 유명 대학이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계약학과’ 신설을 추진하거나 논의 중인 상황이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2006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삼성전자와 계약을 맺고 개설됐다.
▲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4학년 학생 약 40여 명이 반도체내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는 ‘아날로그 집적회로 설계’ 수업을 듣고 있다.
재료부터 시스템까지 반도체 전 과정 배워
“지난 시간 이상적인 상황에서 저항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회로를 구성할 때 저항으로 인한 전압강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강조했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오늘은 더 복잡한 회로를 구성해보겠습니다.”
최재혁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프로젝터를 이용해 컴퓨터 화면을 칠판에 띄운뒤 회로도와 수식에 빨갛게 밑줄을 그어 가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 수업은 대체 몇 학년 수업일까. 이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기자는 옛 경험을 총동원해 3초간 고민해봤다. 그러나 금방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졸업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 정도 쉬운 회로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듣고 나서야 4학년 1학기 수업이라는 걸 겨우 알아차렸다.
사실 반도체 분야를 아는 사람이라면 수업 이름만 들어도 1~2학년이 들어야 할 기초전공 수업인지, 3~4학년이 들어야 할 심화전공 수업인지 감을 잡을 것이다. 재료부터 시스템 설계까지 반도체를 제작하는 전 과정을 순서대로 배우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필요한 재료를 발굴해 소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자를 이용해 회로를 설계한다. 회로 설계는 아날로그 설계와 디지털 설계로 나뉜다. 아날로그 설계란 저항과 전압 등을 고려해 반도체 회로가 이상 없이 작동하도록 각종 소자와 전선을 배치하는 작업이다. 디지털 설계는 이렇게 구성한 하드웨어가 특정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작업을 말한다.
전정훈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학과장은 “디지털 설계를 흔히 ‘하드웨어 기술 언어(HDL)를 이용해 합성한다’고 표현한다”며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아날로그 설계와 디지털 설계가 끝난 반도체로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같은 큰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1~2학년 때 반도체의 재료와 소자, 간단한 회로를 만드는 내용을 가르친다. 3~4학년에서는 복잡한 회로 설계와 구조를 구현하는 실무를 집중적으로 학습한다. 3~4학년이 이수해야 하는 수업 중 일부는 삼성전자에 소속된 현직 엔지니어가 진행한다.
전 학과장은 “반도체를 산업적인 관점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로 나누지만, 기본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 둘을 나눠서 가르치는 건 아니다”라며 “메모리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재료부터 시스템 구조를 만드는 순서로 지식을 확대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70명 중 90%가 삼성전자 입사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하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될까.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신용준씨(32)는 “실무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심화수업과 실무 교육에서 수행했던 과제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전 학과장은 “기존의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과의 교과과정을 토대로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교과과정을 구성했고, 수업의 질을 석사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한다”며 “학부 졸업생들이 학부와 석사과정을 통합해 이수한 것과 같은 실력을 쌓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응용해 작은 반도체 시스템 구조를 직접 설계한다”며 “학과 내 사물인터넷(IoT) 드론 동아리는 드론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해 새로운 기능을 실험하고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활동도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한 학년 정원은 70명이다. 이 중 90%가량이 삼성전자에 입사해 다양한 반도체 연구와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나머지 10%는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통해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다. 매년 3~4명 정도만 반도체와 관련 없는 진로를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 학과장은 “석사나 박사과정을 밟지 않은 학부생 중에는 학부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학부생의 90% 이상이 전공을 살려 진로를 선택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학과 설립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앞으로 반도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전체 운영체제나 컴파일러(컴퓨터 프로그래밍 소스를 기계어로 바꾸는 프로그램)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설계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힘쓸 계획이다. 전 학과장은 “매년 20명 정도의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이 배출되는데, 이를 30명까지 올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입학부터 삼성전자 입사까지 궁금증 4>;
Q. 입학하기 위한 요건과 절차는?
2020학년도 입시에서는 논술우수전형(12명)과 학생부종합전형(40명) 등으로 52명, 정시모집으로 18명 등 총 70명을 뽑을 예정이다. 논술우수전형 합격자는 논술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평가결과를 6대 4로 반영해 선정한다. 이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최저학력 기준인 수학(가)와 과학탐구 1개 과목의 등급 합계가 3등급 이내여야 한다. 또 영어 2등급, 한국사 4등급 이내를 충족해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 서류로만 평가한다. 정시 합격선은 의예과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Q. 입학자들에게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입학이 확정되면 사전에 프로그래밍 교육을 진행하고, 입학자 전원에게 1학년 여름방학 중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체나 유수의 대학을 탐방할 기회를 제공한다. 3학년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삼성전자 인턴십을 진행한다. 3~4학년을 대상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현장 교육을 진행하며 실무 감각을 최대한 키우고 있다.
Q. 전액 장학금 제도를 운영한다는데?
2학년까지는 기본적으로 전액장학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3학년부터는 대여장학금 형식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하면 갚을 필요가 없지만, 입사하지 않으면 반환해야 한다.
Q. 삼성전자 취업 절차는 어떻게 되나?
대학생들이 대부분 4학년 2학기가 돼서야 취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입사시험을 보지만,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학생들은 2학년 2학기부터 삼성전자의 상·하반기 채용 기회가 주어진다. 삼성그룹의 직무적성검사(GSAT), 임원 면접 등 일반적인 채용절차를 통과하면 입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