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대한 연구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빛의 이중성과 흑체복사 스펙트럼 연구에서 양자역학이 탄생했고, 관측자와 무관하게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은 상대성이론의 발견을 가져다줬다. 또 그로부터 흥미로운 시공간인 블랙홀의 존재도 알게 됐다. 빛은 세상을 밝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 닿지 않는 영역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인식 또한 밝아졌다.
뉴턴의 상대성 원리
우리는 삶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각자 속한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보편적인 삶의 관점들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을 하거나 듣는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
상대적인 관점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물리학은 입장(좌표계)에 따라 현상이 다르게 관측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원리를 알아내고자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물리학이라면 이렇게 제안할 수도 있다. “상대론을 공부해봐!”
물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이작 뉴턴은 우선 관성계(가속하지 않는 물리계로 정지해 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계)를 정의하고, 관성계에 적용되는 운동법칙을 밝혀냈다. 모든 관성계는 물리적으로 대등하므로 뉴턴 역학은 모든 관성계에서 똑같이 적용되며, 어느 것이 절대 정지계인지에 대한 물리적 정의가 불가능하고 상대적인 개념만이 물리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뉴턴의 상대성 원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세기 제임스 맥스웰이 전자기 이론을 정립하면서 뉴턴의 상대성 원리는 위기를 맞았다. 전자기 이론은 ‘어떤 관측자인지와 무관하게 빛의 속력은 진공에서 c=299 792 458m/s≃3×108m/s’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뉴턴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대상의 속력은 관측자에 의존한다. 빛의 속력 역시 관측자마다 다르게 관측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뉴턴의 상대성 원리를 포기해야 하는가?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뉴턴의 존재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뉴턴의 상대성 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이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과감한 선택을 한다. 우선 전자기 이론의 결과로부터 진공에서 빛의 속도는 항상 c임을 가정했다. 그리고 뉴턴의 상대성 원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수식이 등장한 뒤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수식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수식은 시간 변화량(dt)과 공간 변화량(dx, dy, dz)이 각각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변화량의 제곱과 공간 변화량의 제곱의 차이가 어떤 관측자에게든 같은 양(ds2)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동일한 변수로 취급해야한다는 뜻이다.
이 수식을 그래프로 그리면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원뿔을 이어붙인 형태가 된다(왼쪽 그림). 여기서 원뿔의 옆면은 빛이 진행하는 영역을 나타내며, 이를 ‘빛꼴 영역(lightlike)’이라고 한다. 빛꼴 영역을 기준으로 원뿔 안쪽은 ‘시간꼴 영역(timelike)’, 원뿔 바깥쪽은 ‘공간꼴 영역(spacelike)’으로 구분한다.
만약 어떤 물리적인 사건이 원점(현재)에서 일어났다면, 어떠한 시간에 따른 운동이 가능할까. 우선 원점에서 10m 밖으로 레이저를 쏜다고 가정하자. 레이저는 빛의 속력으로 움직이므로 시간에 따른 레이저의 움직임은 빛꼴 영역인 원뿔의 옆면 위에 표시된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는 빛보다 느리게 진행되므로 시간에 따른 운동은 원뿔 안쪽인 시간꼴 영역에 표현된다. 이들 두 경우는 원점의 사건(원인)이 나중의 사건(결과)으로 진행되고, 이때 두 사건은 인과 관계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간꼴 영역으로는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까?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공간꼴 영역으로 갈 수 있지만, 우리 세계에서 빛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원점과 공간꼴 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사건들은 인과 관계로 연결되지 않고, 개별 사건이 된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한 이후,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도 시공간의 개념을 사용해 수정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일반상대성이론과 함께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탄생했다. 이 방정식은 물질이나 중력에너지가 시공간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알려준다.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 블랙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보여주는 특별한 시공간 중 하나가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의 물리적인 형태는 중심의 한 점에 질량이 집중된 물체로, 질량의 크기에 따라 블랙홀의 반경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반경이 형성하는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블랙홀은 멀리 있는 관측자에게는 일반적인 별들과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가면 블랙홀의 거대한 질량에 의한 인력이 주변의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고 주변의 시공간 또한 휘게 만든다. 따라서 시공간의 휨의 정도를 측정하는 곡률은 블랙홀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커지다가, 블랙홀 중심의 한 점에서 무한대로 발산한다.
이 중심을 블랙홀의 ‘특이점’이라고 부르고, 사건의 지평선은 그 특이점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특이점에서는 곡률이 발산하므로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더 이상 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며, 그것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래서 블랙홀의 특이점은 시공간의 찢어짐 또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한계로 해석되기도 한다.
블랙홀은 흥미로운 시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은 빛꼴 영역에 해당하는 구면이며,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면 시간축과 공간축의 역할이 바뀐다. 즉, 시간축이 공간축으로 해석되고, 공간축이 시간축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 외부의 시간축이 사용될 수 있는 한계지점이며 이것은 ‘인과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블랙홀의 인력에 의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인과적으로 단절된 그리고 특이점을 가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블랙홀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 같은 역할을 한다.
빛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검은 구멍
블랙홀의 안팎이 단절돼 있다는 점은 간단한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블랙홀로부터 아주 먼 거리에 A와 B가 있고, 두 사람은 1초마다 레이저를 발산하는 동일한 시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때 B는 블랙홀로부터 먼 거리에 남아 있고, A는 블랙홀을 탐험하기 위해 블랙홀로 자유낙하하고 있다고 하자.
두 관측자는 모두 관성계에 있으므로, A가 관측하는 A의 시계의 시간 간격과 B가 관측하는 B의 시계의 시간 간격은 항상 동일할 것이다. 먼저 A의 상황을 살펴보면, A의 시계는 계속해서 1초마다 레이저를 발산하고, 자연스럽게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A가 블랙홀의 조석력을 견딜 수 있다면) 블랙홀의 특이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때 B가 관측하는 A의 시간 간격은 어떨까.
A가 특이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A의 시계는 계속 일정 간격으로 레이저를 쏘지만, 레이저는 강력한 중력장을 이기고 나오면서 파장이 길어져 관측자 B에게 도달한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므로, 파장이 길어지면 시간의 변화량도 커진다. 따라서 관측자 B에게는 A의 시간이 점점 느리게 가는 것으로 관측이 된다.
블랙홀 근처에서의 중력장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A가 블랙홀의 반경에 도달했을 때는 A의 빛이 B에게 도달하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즉, A가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는 순간 A는 B로부터 단절되게 된다.
이를 앞서 본 빛원뿔 관점으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왼쪽 그림). 관측자 A가 블랙홀로 가까이 갈수록 중력에 의해 시간꼴 영역의 방향이 점점 블랙홀 쪽으로 회전하며,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꼴 영역이 블랙홀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A가 계속 레이저를 쏘더라도 시간꼴 영역의 방향 자체가 블랙홀 안쪽에 머물러 있으므로 B에게는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블랙홀에서 멀리 떨어진 관측자 B가 본 A의 시간꼴 영역의 변화는 어떨까. B가 봤을 때 A가 블랙홀로 다가갈수록 중력이 커져서 공간 변화량에 대한 시간의 변화량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관측된다. 따라서 A의 시간꼴 영역은 계속 좁아지다가,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아예 닫혀버린다. 이로 인해 A가 쏜 레이저는 사건의 지평선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건의 지평선에 갇히게 된다.
이로 인해 빛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블랙홀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으로 묘사될 수 있고, 사건의 지평선을 건넌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두운 우주에서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불을 비춘다고 하더라도 빛조차 블랙홀 반경에 갇히기 때문에 블랙홀을 직접 관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예측함으로써 블랙홀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관측할 수는 있다(이 부분은 다음 파트에서 자세히 다룬다).
아직 풀지 못한 숙제, 양자중력
블랙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블랙홀이 에너지, 온도, 엔트로피 등으로 기술되는 기체의 열역학 시스템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스티븐 호킹은 온도가 있는 물체는 열복사(radiation)를 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블랙홀 역시 열복사를 한다(입자를 내뿜는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로부터 블랙홀의 온도를 정의했다. 이것이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불리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은 항상 물질을 흡수하는 물체였지만, 근사적 양자효과를 고려하면 열복사에 의해 입자를 방출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블랙홀의 미스터리도 있다. 그중 하나는, 열역학에서 엔트로피는 시스템의 부피에 비례하지만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블랙홀의 겉넓이에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네덜란드 물리학자인 헤라르트 엇호프트는 양자중력의 영역에서는 모든 정보가 시공간의 경계면에 저장된다는 ‘홀로그래피’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빛에 대한 연구는 고전물리학으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줬고,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을 가져왔다. 하지만 중력이론과 양자이론이 결합된 양자중력이론의 완성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다.
실험실에서 관측되는 양자 효과는 예측하지 못했던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중력이 있는 시공간에서 양자 효과를 고려하는 것은 시공간의 새로운 성질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중력의 성립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 빛과 같은 역할을 할 존재는 무엇일까?
박미옥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으로 있다. 중력과 관련된 여러 주제에 대해 연구 중이며, 최근에는 블랙홀 열역학과 홀로그래피 대응 원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miokpark@kia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