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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게 쓴 비디오플레이어가 고장났다. ‘이젠 수명을 다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 참에 잘됐구나’하고 DVD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새로 산 DVD 플레이어가 자꾸 고장나 애프터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쓰셨던 미싱은 적당히 기름칠만 해주면 지금도 별 고장 없이 여전히 작동된다. 요즘 나오는 미싱은 수십가지 기능을 갖는데, 그래서 새로 장만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미싱을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제품의 수명이 너무 짧으면 더 문제가 되겠지만, 너무 긴 것도 소비자에게 좋을 일만은 아니다.

물론 전자회사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사용자가 MP3 플레이어를 5년쯤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회사가 제품을 3년 동안 작동하도록 만들었다면, 사용자들은 이 회사 제품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면 결국 그 회사는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반대로 제품의 수명을 10년에 맞췄다면, 이 회사는 역시 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교체함으로써 회사는 제대로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품은 적당한 수명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회사는 각 제품의 적당한 수명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된 제품이 제 수명을 유지하는지 여부를 테스트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 수명을 테스트할까. 만약 제품의 수명을 10년에 맞췄다면, 소비자 앞에 등장하기 전 10년 동안 회사에서 먼저 제품을 사용해본다? 이 방법은 가당치 않다.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이다.

실제로 제품의 수명을 평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주 정도가 일반적이다. 어떻게 10년의 일을 2주 동안 파악할 수 있을까.

제품의 수명을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고도의 가속 시험’(HALT, Highly Accelerated Life Test)이다. HALT는 일반적인 사용 환경보다 매우 극심한 조건에서 제품을 늙게 만드는 방법이다. 즉 극도의 혹독한 환경으로 제품의 노후 속도를 가속시킨다.


군대용 컴퓨터 노후 속도는 일반용 40배

전자 제품의 노후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환경 요인은 열과 진동이다. HALT 시스템은 영하 1백-2백℃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온도조절 장치와 사방으로 1초에 수천번 진동시키는 장치가 포함된다. 이때 내부 온도를 1분에 60℃ 이상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가 제품의 노후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제품의 수명을 평가할 때 중요한 점은 사용 환경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제품이라도 사용 환경에 따라 노후 속도가 다르다.

한대의 컴퓨터가 있다고 하자. 이를 사무실에서 쓸지, 아니면 군대에서 사용할지에 따라 이 컴퓨터는 다른 환경에 접하게 된다. 따라서 수명도 달라진다. 실제로 사무실용 컴퓨터보다 군사용 비행기 안에 장착되는 컴퓨터의 노후속도는 40배 이상이다. 실제 사용 환경에 따라 제품 수명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측해야 한다.

사용 환경을 고려해서 다른 가혹 시험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핸드폰은 장시간 동안 고온을 맛보는 열 테스트를 거친다. 75℃의 고온에서 핸드폰이 얼마나 변형되는지, 그리고 이후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를 평가받는다. 이 테스트를 받는 까닭은 실제로 이런 조건에 휴대폰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75℃는 여름철 차안의 온도다. 핸드폰을 차에 놓고 내렸을 때를 염두에 둔 것이다.

노트북처럼 TFT-LCD 모니터를 장착한 제품은 고도 테스트를 받는다. 고도가 높으면 대기압이 낮아져 TFT-LCD에 방전이 일어날 수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 이들 제품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프스산맥과 같은 고지대에 수출할 때 더욱 심각하게 고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