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날카로운 자아발견의 시기, 사춘기







K학생은 조용히 상담실로 들어와 앉았다. 상담하는 내내 말이 별로 없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들어간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3학년이에요.”

“그렇지? 성적은 어떻게 나오니?”

“안 나오던데요. 수학, 과학이 1학년 때는 전교 몇 등 했는데, 이번엔 20등은 넘길 것 같아요.”

K학생은 2학년 1학기까지는 성적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2학기부터 성적이 꽤 낮아졌다. 게임을 시작했다가 빠져버린 탓이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부모님도 게임에 빠진 K학생을 걱정했다. 부모님이 게임을 그만하고 공부하라는 얘기를 했지만 오히려 K학생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런 그에게 상담 선생님은 꿈이 있냐고 물었다.

“음…. 과학자요.”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니?”

“생명공학이요.”

“그래. 좋은 분야네. 왜 생명공학을 하고 싶어?”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K학생은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 사춘기 시기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부모님은 쉽게 혼을 낸다. 하지만 혼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최대한 아이를 존중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고민하는 인생에 대해서 부모님이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며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몸도 컸는데 애 취급하면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최대한 학생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들었다.

“그래. 생명공학을 하려면 의대를 가도 되고 생명공학과를 가도 돼. 요즘은 화학생물공학과도 많아. 네가 원하는 연구를 하려면 연구중심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지? 서울대, KAIST, 포스텍, UNIST, GIST 이런 대학들이야.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그렇지만 이런 곳에 가서 좋은 교수님과 좋은 환경에서 하는 것이 좋아. 이런 대학에서는 수학과 과학에 특기가 있는 사람을 원해.”

연구중심대학에서는 대부분 입학 후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열정과 능력을 가진 학생을 원한다. 특히 입학사정관들은 이런 수학, 과학적 특기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입학 후에도 수학, 과학 특기가 있어야 연구를 하기에 편하다.

“그럼 이렇게 연구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뭘까? 우선 지식이 있어야해. 근데 고등학교, 중학교 교과 안에서 배우는 건 기본적인 거야. 책을 많이 읽어야해. 책 좋아하니?”

“네.”

“어떤 책을 보니?”

“…. 보긴 봐요. 아무 책이나….”

“아무 책이나 본다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렴. 이제 열여섯 살이잖아. 고등학교를 정하고 열아홉 살에는 대학, 전공을 결정해야해. 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야. 무엇을 하고 살아야 네가 행복할지 늘 생각해야 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은 아니란다. 행복한 것이 성공이야. 돈을 많이 벌어도 잘 써야 행복하지. 스스로 시간을 어떻게 쓰면 가장 행복했는지 생각해봐. 시간을 어떻게 썼을 때 재밌긴 해도 마음이 무거운지 네가 더 잘 알잖아.”

K학생은 게임을 하는 데 쏟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학업에도 소홀해졌고 부모님과도 갈등이 생겨 더욱 게임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너 자신이 답답해서 그래. 답답한데 길을 모르면 순간적으로 그냥 즐거운 것만 찾는 거야. 그 순간은 잊을 수 있으니까. 근데 잠자리 들기 전에 순간순간 뭔가 ‘내 꿈은 이게 아닌데,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망치고 싶겠니. 그런 사람은 없어. 이 시기를 이겨내야 한단다. 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 자신 밖에 없단다. 네가 네 꿈을 외면하는 순간 불행해진단다.”

꿈이 있다면 자신의 꿈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과학책은 많은 종류가 시중에 나와 있다. 책을 읽고 좀더 깊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과학지식이 필요하다. 필요한 과학지식을 스스로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면 자연스레 과학 실력도 좋아진다. 스스로 좋아서 공부하다 보면 입시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경쟁을 즐길 줄도 알아야해. 서로 키워주는 게 경쟁이지 죽이는 게 경쟁이 아니란다.

똑똑한 아이니까 잘 알거야. 지금은 자아발견의 시간이야. 누구누구의 오빠나 아들이 아닌 너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거야. 현명한 사람은 이럴 때 자신에게 좋은 게 뭔지 빨리 깨닫는 사람이고 현명하지 않은 사람은 그걸 모르고 자신을 망치는 사람이야. 누구에게나 온단다. 사춘기는. 네가 현명하게 이 시기를 견뎌내길 바래. 다행히 수학 성적이 좋으니 이걸 무기로 삼아. 더 갈고 닦아보렴.”






“꿈이 뭐야?”

“대학교수가 꿈이에요”

“학과는?”

“과학은 좋은데, 수학은 전문으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대학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거 아닌가요?”

Y학생은 아직 인생이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편이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는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진로를 당장 확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민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 다르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면 목표를 장기적으로 세울 수 없다. ‘이번 시험에서 100점 맞아야지’처럼 단기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공부의 목표를 장기적으로 세우면 당장 시험 한번에서 문제를 틀려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봐. 그게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자세야. 푸릇푸릇하고 멋지게 보내렴. 지금 이 시간은 너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 될 거야.”

교수는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지만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Y학생은 가르치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뭔가를 물어보면 가르쳐 주는 것이 재밌었다. 꼭 교수가 아니라도 초,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도 있다.

“책은 많이 읽니?”

“아뇨. 예전엔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많이 못 읽어서 속상해요.”

“공부량이 많은가 보구나.”

“공부는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숙제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특히 수학이요. 계산을 못하는 건 아닌데 응용하는 게 어려워서 시간이 오래 걸려요.”

“숙제는 혼자 문제를 풀고 공부하는 시간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나쁜 것은 아니야. 그렇게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니?”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짜증나요.”

문제에 따라서는 오랜 시간 깊은 사고가 필요한 문제도 있다. 상담 선생님은 흔히 천재라고 생각하는 수학자나 과학도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평생을 바친 경우가 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의 전환이 이뤄져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을 거야. 자연스러운 거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공부한 내용으로 조금만 시간을 가지면 풀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일거야. 조금만 시간을 가지라는 건 ‘일주일’ 정도를 말하는 거야.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일단 A4용지를 꺼내. 크게 써서 벽에 붙여. 그리고 집에서 오며가며 문제를 보는 거야. 그럼 항상 생각할 수 있단다. 결국 문제가 풀릴 거야.”

Y학생은 수학에 흥미가 없었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염두에 두는 부모님 때문에 선행학습을 하고 있지만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짜증만 나서 수학이 더 멀어졌다. 영재고를 가야하니까 빨리 올림피아드를 나가야 하고, 올림피아드를 위해서는 수학을 공부해야 하고 그런 이유로 하는 수학 공부가 즐거울 리 없다. 수학을 문제만 푸는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흥미가 생긴다.

“수학은 철학이란다. 예를 들어 인수분해하고 조립제법으로 2차 방정식을 풀 때를 생각해봐. 인수분해, 조립제법만 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냐. 2차 방정식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 본적 있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이제 해봐. x²-2x-3=0을 인수분해하면 (x-3)(x+1)=0이 돼. 계산만 하지 말고 ‘왜 이런 형태로 바꿔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렴. 그래야 네가 하고 싶은 교수를 하는 데도 도움이돼.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하잖아. 네가 수학 때문에 괴로웠다면 학생들은 수학 때문에 괴롭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잖아.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어떻게 쉽고 재밌게 가르칠까’ 생각하면서 수학을 공부해봐. 그리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옆에 메모해보렴. 사람은 잘 잊어버리거든.”




과학은 좋지만 수학이 싫은 Y학생에게 상담 선생님은 수학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이야기 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내용 지식 이상의 깊은 내용을 알고 있어야 쉽고 풍부하게 가르칠 수 있다. 과학을 더 깊이 공부하려면 수학을 잘 알아야 한다. 뉴턴의 법칙이나 물리나 화학에도 수학이 쓰인다. 수학을 즐길 때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공부라면 즐기자는 거야. 상을 받기 위해 공부하면 잘 되지 않아. 네가 ‘수학을 어떻게 잘 이용해서 상을 타볼까’ 하면 안돼. 들켜 수학한테. 정말 수학을 좋아하고 최선을 다하고 즐길 때, 열심히 할 때, 그 때 너에게 지혜가 오는 거야. 뭐든지 극단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았으면 해. 그래야 인생이 행복하단다. 상을 꼭 받지 못하더라도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인생을 보는 눈이 생겨. 선생님이 생각할 때 너에게 가장 좋은 건 지금 수학으로 상을 받는 것보다는 ‘뭔가 너무 궁금해서 꼭 해결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입학사정관으로도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어. 책도 많이 읽고 공부하는 그런 열정이 있어야 한단다. 열심히 하면 주변에서 어떻게든 도와줘. 즐겁게 공부하렴.”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구분 없이 ‘과학’으로 배운다. 따라서 자신이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중에서 어떤 과목에 재능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좋다. 네 과목 모두 각각 공부를 조금씩 하면서 관련 분야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부담도 덜하고 효과도 좋다.

“살수 있는 날이 하루 밖에 없다면 뭘 하고 싶어?”

“별로 생각한 게 없어요.”

“한번 생각해보렴.”

“음…. 최대한 많이 놀고 싶죠.”

“아직 네 인생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모르는구나. 누구나 사춘기라는 걸 겪어.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도 365일 씩 열아홉 살까지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공부한 학생은 없어. 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법이야. ‘나는 왜 사나, 왜 태어났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 그런 형들 중에 똑똑한 형과 그렇지 않은 형들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빨리 깨닫는 ‘현명함이 있느냐 없느냐’란다. 현명한 형들은 어떤 일의 가치를 판단할 줄 알아.”

가치를 판단할 때 기준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행복을 주는지’ 를 판단할 수 있다.

“아마 네가 중 3 때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거야.”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상담 진행 신혜인·정리 이정훈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