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2. 세계 최초의 로켓과 세계 최강 군함

추석특선 시네마 - 2관

하늘을 뒤덮은 화살에 여진족과 명나라 연합군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도망치려 하지만 이번에는 커다란 화살이 불과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에서 떨어져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이 모습을 본 연합군 대장은 망연자실하고 만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신기전’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전투 장면이다. 신기전(神機箭)은 조선 세종 시대에 개발된 독창적인 화약무기로 상세한 제작 자료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이다.

 

 

최무선의 ‘주화’ 세종 시대 개량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5월, 필자가 재직하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영화 ‘신기전’ 제작진이 찾아왔다. 그리곤 대뜸 100억 원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했다.


정말 신기전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미국과 러시아가 달에 먼저 착륙하기 위해 경쟁하던 1960년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로켓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1학년 때 로켓을 만들어 시험하다 폭발하는 바람에 고막 하나를 잃어 사기가 떨어져 있던 시절,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고려시대 최무선 장군이 화약을 국산화하고 화약무기를 만들어서 왜구를 격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우리 선조들도 로켓을 만들었을까’라는 상상을 했다.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연구해 최무선 장군이 ‘주화(走火)’라는 이름의 로켓 무기를 만들었고, 세종 시대에 주화를 대대적으로 개량한 신기전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1975년 최초로 밝혔다. 

 


세종 시대에 제작한 우리 옛 로켓의 설계도를 찾았으니 이를 복원해서 날려보고 싶었지만 제작비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조직위원회에 신기전 복원을 제안했고, 복원 발사에 성공하면서 일반인에게 신기전의 존재를 처음 알릴 수 있었다.


그런 신기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니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면서 사실상 영화 제작을 포기한 줄 알았는데, 2007년 1월경 시나리오를 볼 수 있었다.


그해 4월 30일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119회에 걸쳐 촬영을 했고, 압록강 전투에서 대(大)신기전을 발사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경북 안동 근처의 낙동강변에서 12월 4일 촬영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쌀쌀한 날씨여서 정말 압록강 같았다.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8년 9월 4일 개봉해 전국에서 약 373만 명이 관람했고, 해외에서도 상영됐다. 2009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음향기술상, 편집상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최무선의 손녀가 많은 어려움 끝에 제작법이 끊어졌던 대신기전 개발에 성공해 조선을 위협하는 여진족과 명나라 연합군을 무찌르는 이야기다.

 

 

산화신기전,현재의 2단로켓시스템

 

신기전에 관한 기록은 1474년 편찬된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병기도설(兵器圖說)’에 남아 있다. 기록된 신기전의 종류는 소, 중, 대, 산화 등 네 종류다. 모두 종이를 겹겹이 두껍게 말아서 만든 원통형의 약통에 화약을 채우고, 안정막대 역할을 하는 긴 대나무에 약통을 묶은 공통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다. 


특히 약통에 화약을 채울 때 원뿔 모양의 빈 공간을 만들었는데, 화염이 타들어가는 면적을 크게 할 뿐 아니라 현대 로켓에서 연소 기체의 분사 압력을 높여 주는 노즐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대신기전은 길이가 5.5m인 대나무를 안정막대로 썼고, 추진제를 넣는 약통의 크기는 길이가 70cm, 지름은 10cm였다. 여기에 최대 3kg 정도의 흑색화약을 채웠다. 약통 앞부분에는 길이 23cm, 지름 7.5cm의 원통형 폭탄인 ‘대신기전발화통’을 장착했다. 이 폭탄은 대신기전이 최대 450m 정도 날아간 뒤 큰 폭음을 내면서 폭발해 목표물을 불태우고 철가루를 사방에 뿌렸다. 대신기전은 영화가 개봉된 직후인 2008년 9월 19일 복원에 성공했다.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 약통 윗부분에 발화통 대신 소형 로켓인 지화통과 소형 폭탄인 소발화통을 3개씩 묶어 넣은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이다. 산화신기전이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지화에 불이 붙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소발화가 폭발하는 것이다. 대신기전이 1단 로켓 역할을 하고 지화가 2단 로켓 역할을 해서 2단 추진시스템을 갖춘,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인 셈이다.


중신기전은 길이 145cm의 화살에 길이 20cm, 지름 2.8cm의 약통이 달려있고 앞부분에 소발화통 한 개가 달려있으며 사정거리는 200m 정도다. 소신기전은 길이 115cm의 화살에 길이 14.7cm, 지름 2.2cm의 약통이 달려있고 폭탄은 달려있지 않다. 사정거리는 150m 정도다.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은 문종 때 화차가 개발되면서 한 번에 100발씩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됐다.


소신기전을 제외한 중신기전, 대신기전, 산화신기전은 당시로서는 폭탄인 발화통을 멀리 날려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화약무기였다. 중신기전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근처 전투에서 사용됐고, 거북선에서는 신호용으로도 사용됐다. 신기전은 성능이 뛰어난 신무기여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적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곳에 발사하면 적이 겁을 먹고 스스로 항복했다’고 한다.


세종 29년(1447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모두 3만3000발이 제작돼 압록강과 두만강변의 4군6진에서 여진족을 견제하는 데 쓰였다. 조선의 북쪽 경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히는 데 큰 공을 세운 무기인 것이다. 

 

 

 

 

3층 구조 거북선, 배 전면에 대형 함포 5개 배치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


누적 관객수 1761만 명으로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해전을 각색한 이야기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부터 6년 반 동안 왜군과의 해전에서 23승을 올리며 왜군의 배 766척을 격침시키고 129척을 나포했다. 적의 사상자만 7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순신 장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많은 해전 중에서 최대의 승리로 꼽히며, 각국의 해군 교재에도 실려 있다.


이순신 장군이 수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이처럼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을 각오로 앞장서서 싸운 뛰어난 리더십과 바다와 지형을 잘 활용한 전술, 그리고 대형포를 장착한 거북선을 비롯해 우리 전함의 장점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영이나 여수 등 남해안에 가보면 거북선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데 모두 형태나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필자는 이를 보며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사용한 거북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역사 자료를 토대로 3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최근 ‘한국과학사학회지’ 5월호에 발표했다. 


필자가 함포 배치를 중심으로 추정한 거북선의 구조는 지금까지 알려진 거북선 모형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배의 전면에 용머리를 비롯해 5개의 함포가 설치돼 있고, 좌우에는 6개씩 12개, 그리고 꼬리 부분에 두 개 등 총 19개의 함포가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거북선의 층수에 대해 2층과 3층 등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필자는 함포 운용을 고려했을 때 3층으로 이뤄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층은 천차총통 2대를 설치하고 노를 젓는 공간으로, 3층은 17대의 함포를 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지붕도 전체가 덮여 있지 않고 십(十)자 모양으로 열려 있었으나 나중에 일자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영화 명량에 등장하는 거북선. 명량해전에 거북선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건조 중이던 배가 불타는 것으로 나온다. 

 


전후좌우 19개 함포로 무장한 거북선


이 결과는 이순신 장군이 1592년 6월 14일 선조에게 올린 장계와 그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행록 등에 등장하는 거북선의 형태를 분석한 결과다. 특히 거북선의 구조를 복원할 때 네 종류의 함포를 어디에 몇 개씩 장착했는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직까지 자세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필자는 이를 밝히기 위해 거북선에 장착된 각 함포의 규격과 성능을 분석했다.


기록에 따르면 거북선에 장착된 총통의 종류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 등 네 종류다. 천자와 지자는 대장군전(箭)과 장군전이라는 철촉을 매단 대형 나무화살을 발사했고, 용머리의 현자포는 철환을 발사했다.


또 꼬리 아래에도 총구멍이 설치돼 있으며 좌우에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설치돼 있다고 기록돼 있다. 노는 한쪽에 8개씩 양쪽에 설치돼 있으며, 배의 윗부분은 거북 등처럼 판자로 덮었고, 그 위에 칼과 송곳이 꽂혀 있으며 십자형으로 길이 나 있다.


대형 함포에 해당하는 천자총통은 길이가 297cm인 대장군전을, 지자총통은 길이가 192cm인 장군전을 발사하기 때문에 장전할 때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한 번 발사할 때 사용하는 화약량이 30냥과 20냥으로 발사 충격량이 현자총통과 황자총통보다 크기 때문에 발사 충격을 견딜 수 있고 넓은 발사 준비구역을 확보할 수 있는 거북선의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발사 충격을 흡수하고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2, 3층 전면 좌우에 2대씩 배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자총통은 적선에 5~6m까지 가까이 접근한 뒤 대장군전을 발사해 적선의 몸통에 큰 구멍을 만들며 파괴했으며, 지자총통은 장군전을 발사해 적선의 선체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현자총통은 이순신 장군의 설명처럼 3층 중앙의 용두에 1대, 3층 후면 좌우에 2대씩 배치해 적선에 접근할 때 철환을 한 번에 30개씩 발사해 적군을 살상했다. 또 3층 좌우에는 발사 충격량이 가장 적은 황자총통 12대를 배치했다. 황자총통은 작은 철환을 20개씩 장전해 적군이 접근할 때 적군을 살상했다.


또 필자는 3층 덮개지붕의 경우 배의 복원력과 기동성 문제를 감안해 황자총통을 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면적을 최소화해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보물인 거북선의 실제 모습은 용두에서 철포를 쏘며 전면과 측면, 후면의 함포로 적진을 누비는 돌격선이었다. 또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에는 신기전을 발사해 도움을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현재는 만나볼 수 없지만 하루빨리 진짜 거북선이 복원돼 위용을 뽐내며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 최영준 기자의 순전히 과학적인 영화평 - 신기전&명량

 

‘신기전’ ‘명량’ 모두 별 네 개를 드리겠습니다. 이유는 각각 다른데요, ‘신기전’은 엄격한 과학적인 고증을 거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스토리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면 한국 영화사상 역대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명량’은 과학적인 고증에 대한 아쉬움과 거북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제 마음대로(?) 별을 하나 뺐습니다.


채연석 UST교수는 거북선을 연구하면서 영화에서 과학적인 옥에 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 등 대형 포들은 발포 시 충격이 워낙 크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좌우의 총구멍에서 발사했다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대형 포들은 배의 앞부분에 배치돼야 한다는 것이 채 교수의 주장입니다.


오늘날 무기 기술은 신기전과 거북선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수천 km를 날아 다른 대륙에 있는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부터 1000km 밖에서 움직이는 적군의 전투기와 미사일까지 감시하는 군함 등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무기들이 실전에 배치돼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항공·우주공학
  • 문화콘텐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