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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이 하는일 왼손도 한다

왼손잡이ABC…

오른손을 우세손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인류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경향이다.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인류를 통해 왼손잡이는 대략 10%에 이른다는 것이 정설. 이들은 단지 왼손을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불길하다’에서부터 ‘재수없다’에 이르는 각종 ‘모함’에 시달려왔다.

간혹 우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양에서는 왼손잡이에 매우 관대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조금 나은 배려가 있을 뿐, 이들 나라에서도 소수인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에는 동서 구분이 없다.

단적으로 영어에서 왼쪽과 오른쪽은 언어적 위상에서도 심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영어에서 왼쪽을 뜻하는 형용사 ‘sinister’는 ‘사악한’ ‘불길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오른쪽을 뜻하는 ‘dexterous’는 ‘손재주가 있는’ ‘솜씨좋은’ ‘민첩한’의 의미다. 프랑스어로 왼쪽을 나타내는 ‘gauche’는 ‘비뚤어졌다’ ‘어색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말에서도 오른쪽은 ‘옳은’쪽이지만, 왼쪽을 가리키는 단어가 들어가면 대개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와의 모습을 담은 그림.


오른 길은 바른 길

이에 따라 중동을 비롯한 많은 문화권에서 왼손은 화장실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것이어서, 지금도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악수를 하는 것은 금기다. 또 왼손은 정당치 못한 행위를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물건을 왼손으로 건네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왼손 사용을 구박하는 이같은 문화적 편견은 왜 생긴 것일까. 지금까지 이를 알아내려는 다양한 연구가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서구의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같은 왼손사용자들에 대한 편견이 오랜 인사 방법인 악수와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원래 악수는 로마제국 시절 무기를 주로 들던 오른손이 비어 있음을 나타내는 우호적 행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잡이 끼리라면 서로 오른손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불시의 공격이 날아올 일은 없기 때문. 이때 왼손을 내미는 것은 오른손에 무기를 감추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또다른 학자들은 서양 문명의 근저에 깔려 있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성서를 보면 왼손잡이를 칭찬하는 구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악마는 항상 왼쪽에 자리잡고 있고, 예수는 성모 오른쪽에 앉아 있으며, 축복은 오른손을 들어 내리는 식이다.

하지만 얼핏 설득력을 가진 듯 보이는 이같은 설명은 오른손 사용을 지지하는 사고방식을 강화시켰을 뿐, 본질과는 다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악수가 보편화되지 않던 동양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궁색한 답일 뿐인 것이다.


태어날 때 뇌 다치면 왼손잡이?


왼손잡이는 왜 왼손을 우세손으로 사용하게 됐을까. 1차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유전 요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왼손잡이가 유전된다는 것은 왼손잡이와 관련된 연구 중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왼손잡이의 80%가 오른손 사용자인 양친 사이에서 나타났다. 유전적으로 볼 때 동일인으로 간주되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둘다 오른손잡이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80%에 이르렀다. 그러나 둘다 왼손잡이인 경우가 4%, 나머지는 각기 다른 우세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는 부모의 우세손과 아이의 우세손 사이에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으며, 어떤 경우라도 오른손잡이 대 왼손잡이의 전체 평균(9:1)에 근접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왼손잡이가 유전의 결과가 아니라면, 전 인류를 통해 오른손잡이가 절대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학자들이 우세손의 결정 과정을 알기 위해 손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뇌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왼손잡이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왼손잡이는 날 때부터 뭔가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얘기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를 보면 학자들은 대체로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문제 행동을 잘 일으키며, 정신과 환자나 알코올 중독자군에서 왼손잡이가 일반 인구에 비해 많다고 보고하고 있다. 자기면역 질환과 천식, 알레르기 등의 아토피성 질환도 왼손잡이가 일반 인구보다 2.5배 정도 높다는 보고가 있다.

이와 관련돼 가장 널리 알려진 연구자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의 심리학자로 ‘왼손잡이 신드롬’의 저자인 스텐리 코렌박사. 그는 지난 90년 재학생 2천2백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세 이상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학생들의 22%가 왼손잡이임을 밝혀냈다. 이는 비교군의 10%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에 대해 코렌박사는 고령의 산모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불안 정도가 높고, 출산시 아이가 가벼운 뇌 손상을 입기 때문라고 밝혔다.

왼손잡이들이 들으면 아연실색할 뇌손상론은, 하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른바 ‘대뇌의 비대칭성’ 개념을 들어 뇌손상론을 설명한다. 한림대 의대 김도훈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대뇌의 비대칭성이란 대뇌의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오른손잡이에 비해 왼손잡이에서 대뇌의 비대칭성이 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출산 중 왼쪽 뇌에 손상을 입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체 오른쪽을 관장하는 왼쪽 뇌에 손상이 일어나면 기능에 장애가 생겨 왼손잡이가 되고, 또 문제 행동과 언어장애 등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존 네이스빗은 21세기 유망산업의 하나로 왼손잡이 시계를 비롯한 왼손잡이 용품을 꼽고 있다.


국어점수가 낮은 이유


대뇌의 비대칭성은 왼손잡이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오른쪽을 관장하는 왼쪽 뇌는 기억력과 논리력, 언어 표현같은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반면, 왼쪽을 관장하는 오른쪽 뇌는 주로 직관력이나 예술적 감각 같은 감성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오른손잡이는 왼쪽 뇌가 더 발달돼 있으며, 왼손잡이는 오른쪽 뇌가 더 발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10명중 9명의 사람은 왼쪽 뇌를 우성뇌로 가지고 있으며, 이 숫자는 오른손잡이 대 왼손잡이의 비율과 일치한다.
 

학자들은 대뇌 비대칭성과 관련된 연구의 원조로 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의사 브로카를 꼽는다. 1861년 그는 왼쪽뇌의 전두엽 뒤쪽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서 발음능력이 상실되는 실어증 증상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언어구사와 직접 관련 있는 전두엽 밑부분은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린다. 한편 독일의 의학자 베르니케는 말을 듣고도 그 뜻을 해독하지 못하는 실어증이 브로카 영역 뒤쪽에 붙어 있는 측두엽에 장애가 생긴 것임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이 부위는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불린다.

브로카의 연구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언어중추를 포함한 대뇌 조직의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언어능력과 우세손 결정 양자의 관계는 브로카 영역이 왼쪽 뇌에 있다는 것에서 만난 것이다.

그는 왼손잡이의 언어습득은 오른쪽 뇌가 관장하고, 오른손잡이의 언어습득은 왼쪽 뇌가 주로 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전체의 92%는 왼쪽 뇌에서 언어 뇌이지만, 왼손잡이의 경우는 70%가 왼쪽 뇌가 언어기능을 담당하며, 나머지 30%는 오른쪽 뇌에 언어기능이 있거나, 뇌 양쪽에 언어기능이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연구 중에도 브로카의 견해를 지지하는 결과가 있다. 연세대 정신과학교실 민성길 교수팀이 작년에 발표한 논문 ‘소아의 손잡이와 문제 행동’ 중 손잡이에 따른 학업 성취도 비교를 보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사이에서 산수나 사회 , 자연 등의 학업 성적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언어능력을 반영하는 국어에서는 왼손잡이들이 저조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왼손잡이들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세손과 관련된 연구는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중추에 관한 한 뇌와 손잡이는 별 상관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눈을 통해 외부 세계가 뇌에 전달되는 비밀을 밝힘으로써 지난 81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저 스페리박사는 “왼쪽 뇌와 오른쪽 뇌의 기능이 서로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양쪽 뇌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반론에 부딪친 단명설


부모 모두가 왼손잡이일 때 10명중 4명꼴로 왼손잡이가 태어난다는 유전론을 펼치기도 했던 코렌박사는 왼손잡이 단명설을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캘리포니아 남부지방에서 사망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른손잡이들은 평균수명이 75세인데 반해 왼손잡이들은 66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그의 연구가 발표될 무렵 미국 보건국은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문서를 내놓아 부모들은 왼손을 우세손으로 사용하는 자녀들을 심하게 다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코렌의 주장은 이후 많은 연구자들의 반박에 직면해야 했다. 반론자들은 설사 왼손잡이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는 생물학적 이유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구석구석의 요소들이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상태에서 특별한 배려가 없는 한 왼손잡이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 왼손잡이 운전사는 오른손잡이에 비해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5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실증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여타의 산업재해에 있어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영국 사우스 햄프턴대학의 인류학자인 제임스 스틸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오른손 사용을 강요하는 문화적 압력이 심해진 것은 근대 산업사회의 등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해내는 공장 체제에서 작업의 방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타당성을 갖춘 얘기다. 작업라인의 중간에 다른 방향의 우세손을 가진 작업자가 끼어 있다면 생산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감성지수 높이려면 양손 다 써야

사기 꺾는 얘기들이 대부분인 왼손잡이론 가운데, 한가지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왼손잡이는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편견을 넘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왼손잡이들이 적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 대왕, 레오나르도 다 빈치, 나폴레옹, 카스트로, 간디, 처칠, 슈바이처, 모차르트, 빌 게이츠 등이 그들이다. 더구나 레이건, 부시, 클린턴에 이르는 최근의 역대 미국대통령은 하나같이 왼손잡이다. 불세출의 기타연주자 지미 핸드릭스도 왼손잡이다(왼손잡이 유명인사 명단은 http://www.indiana.edu/~primate/left.html 이나 http://stekt.oulu.fi/~mjh/lefties.html 의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명단에 없는 유명인은 오른손잡이라고 볼 때 왼손잡이는 역시 소수다).

그러나 왼손잡이가 똑똑하다는 것은 별 근거가 없는, 또 딱히 증명해낼 수 있는 말도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른뇌가 발달한 가운데, 사회적 압력에 의해 부분적으로 오른손 사용을 익힌 ‘양손잡이’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최근 EQ(감성지수)와 CQ(창의력지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사회 현상도 왼손잡이들이 움추린 어깨를 펴게 한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체력을 유지하듯이 양쪽 뇌가 균형 있게 발달해야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더 우수한 머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EQ론자들의 주장. 이를 위해 왼손과 왼발을 자주 사용해 오른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왼손 사용을 강요하는 부모들을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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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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