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 ‘철도, 도로 현대화’에 대한 내용이 담기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다음 순서는 철도, 도로, 자원이송망 등 사회간접자본(SOC)이다. 향후 협력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평창에 다녀온 분들 말이 평창 고속열차가 좋다고 하는데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철도의 낙후성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북한의 철도는 5226여km로 우리나라(3918km)에 비해 길지만 노후화가 심각하다. 전체 레일의 30~40%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건설됐다. 여객열차 속도도 시속 40~50km에 불과하다. 정부는 북한과의 철도 연결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5월 16일 개최 예정이었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동해선 철도 복원 사업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철로 보강하고 통신 시스템 합쳐야
“지금 당장은 KTX 고속열차를 북한에 보내도 달릴 수가 없습니다.”
박정준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 미래혁신전략실장은 북한과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노후화된 선로를 전반적으로 보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열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객실 차량뿐 아니라 레일, 레일을 받치는 침목, 침목을 지지하는 땅(노반), 플랫폼, 전력 공급선 등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2007년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 측 전문가들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의 인프라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단단하게 가공한 목재 대신 통나무를 침목으로 쓰는가 하면, 열차가 지나가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자갈도 미비한 곳이 다수였다. 안전성을 담보하기가 힘든 셈이다. 따라서 첫 과제는 기본적인 철로 보강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철로 보강이 완료되면 가장 먼저 북한 땅을 달릴 열차는 디젤 열차다. 남과 북은 열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직류 3000V를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교류 2만5000V를 쓴다. 이는 북한의 전력 수급 상황이 좋아지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박 실장은 “전력 계통을 바꿔줄 수 있는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철도통신시스템을 통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통신시스템은 철도 운영에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한 예로 한 구간에 열차를 1대만 운행할 수 있게 하는 ‘폐색 구간’을 운영하려면 먼저 남북의 통신시스템이 호환돼야 한다.
50량 장대화물열차로 러시아 갈까
남북 철도가 가장 먼저 연결될 곳은 동해선과 경의선이다.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518km 복선철도이고, 동해선은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을 관통하고, 러시아와 유럽까지 달리는 노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강릉과 제진 사이 104km 구간이 단절돼 있다.
박 실장은 “남북 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 등 대륙 철도와 연계하면 동북아시아를 순환하는 공동화차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를 위해 궤간가변 대차, 연결기, 제동장치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중국과 유럽의 철도는 러시아의 철도와 궤도의 폭이 약 85mm 가량 차이가 난다. 한국은 폭 1435mm의 표준궤를 쓰지만 러시아는 1520mm 광궤를 사용한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철도가 북한을 지나 러시아까지 가려면 러시아 국경에서 환승 또는 환적하거나(열차가 무조건 2대 대기해야 한다), 열차를 들어 올린 뒤 바퀴를 갈아 끼워야 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연구팀은 볼펜 꼭지처럼 잠금장치가 있어서 궤간 폭을 조절할 수 있는 궤간가변 대차(바퀴에 의해 레일 위를 주행하는 부분) 기술을 2014년 개발했다. 화물용 궤간가변 대차를 개발한 건 폴란드, 스페인에 이어 세계 3번째다. 현재 러시아 철도기술연구원과 함께 성능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또 열차 50량을 장대 편성할 수 있도록 차량연결기와 제동장치의 내구성, 내한성을 높이는 연구를 3년째 진행 중이다. 박 실장은 “동북아 공동화차는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인 두만강 쪽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며 “짧은 구간 내에서 여러 번 환승, 환적하느라 소모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후 특성 재현해 도로 기준 만든다
한편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남북간 도로를 연결하는 사업도 거론됐다. 북한의 도 로 길이는 총 2 만 6176km로 남한(10만8780km)의 4 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대부분 비포장(간이 포장) 도로다. 운행 속도가 시속 40km 이하로 매우 낮다.
이석기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도로연구소 연구위원은 “복구나 재건은 결국 비용과 시간의 문제”라며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시공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통일북방연구센터를 운영하며 관련 기술이나 제도를 연구하고, 북한에 적용 가능할지 경기 연천군에 69만m2가 넘는 면적의 SOC실증연구센터를 지어 직접 시험할 계획이다. 가장 먼저 오는 9월에는 SOC실증연구센터 내 악천후 기상재현 연구실험시설이 문을 연다. 이 곳을 5월 14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방문했다. 38선과의 직선거리가 약 13km, 최접경 지역에 위치한 탓인지 한랭한 기후가 북한 지역의 기후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악천후 기상재현 연구실험시설은 길이 650m, 4차선 도로로 설계됐다. 그중 300m 구간에서는 눈, 비, 안개 등 악천후를 재현할 수 있다. 특히 터널로 이뤄진 200m 구간은 비가 시간 당 100mL까지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연구위원은 “평양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의 기후적 특성은 남한과 분명 다를 것”이라며 “이에 따라 도로 하부구조의 설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도로의 동결, 융해가 자주 반복된 다면 변형을 막기 위해 ‘동상방지층’을 더 두껍게 설계할 수 있다. 또 제설 작업을 해도 몇 시간 뒤 2차 결빙이 되는 도로가 있다면 제설 작업 프로세스를 바꿔야 한다. 실제로 실험을 해 봐야 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북한의 도로는 전력 수급 문제로 가로등이 제대로 켜지지 않고 길 안내 표지판도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연구위원은 태양전지 패널이 장착된 가로등을 개발하고 있다. 또 악천후 상황에서도 멀리까지 빛을 방출하는 조명을 SOC실증연구센터에서 실험할 계획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이나 외국의 운전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도로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며 “실증실험을 통해 시공절차나 도로기준을 결정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북한 경유하는 수천 m 자원이송관 건설
SOC실증연구센터에는 북한 고위도 지역, 러시아와 같은 극한지에 자원이송망을 건설할 때 필요한 핵심 기술을 평가하는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특히 러시아와 우리나라를 이어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PNG(Pipeline Natural Gas)’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천연가스를 액화시킨 뒤(LNG) 배로 실어와 다시 기화시켜 사용하는 방식보다 경제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한국간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최상의 루트는 육상으로 북한을 경유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의 라진, 원산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동해안 루트를 검토하고 있다. 백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복합재난연구단장은 “수심이 깊은 동해나 중국과 겹쳐 있는 서해를 통해 연결하는 것보다 육상에 건설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고 말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팀은 ‘극한지 자원이송망-기반구조물 설계 및 평가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SOC실증연구센터에 실험실을 짓고 있다. 지름이 30인치(76.2cm)인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지하 1m에 묻고 극한지 동토 조건을 재현하는 시설이다. 이를 위해 온도를 영하 40도로 낮출 수 있는 304m모의 지상 차폐 시설과, 땅을 영하 5도로 얼릴 수 있는 지중 동결 챔버를 설계했다.
공진영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인프라안전연구본부 수석연구원은 “파이프라인 등 구조물 건설로 동토에 열이 전달되면 동토가 점차 녹으면서 지반 침하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구조물의 안전성과 기능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흙의 동결과 융해에 따라 동토의 지반 강도가 어떻게 변하고, 이것이 파이프라인에 어떤 변형이나 응력을 야기하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 단장은 “국내에서는 그동안 지름이 30인치가 넘는 대형 배관을 실제 현장실험을 통해 연구한 사례가 없었다”며 실증실험의 의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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