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 전구기 황달기 회복기 순으로 진행되는 간염. 그냥 두면 급성간염 만성간염 간경변 간암으로 나아간다.
우리 몸안에서 가장 크고, 해독작용을 비롯해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 장기가 바로 간이다. 그런데 이 간이 지금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많은 사람들의 간이 간염으로 손상받고 있는 것이다.
간염은 술을 많이 마신다든지 간에 해가 되는 약물을 잘 못 먹을 경우 발병한다. 그러나 가장 흔한 원인은 간염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다.
간염은 간에 침입한 간염바이러스와 이에 대항하는 사람의 면역세포 사이에 벌어지는 일종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상적인 간의 구조가 광범위하게 파괴되고 간의 기능이 손상되는 것이다.
이 전쟁이 빨리 끝나면 급성간염이라고 하고 6개월 이상 진행하면 만성 간염이라고 부른다.
간염바이러스 A형과 B형이 대표적이다. A형은 바이러스가 간염환자의 대변으로 배설된다. 따라서 환자와 접촉하거나 간염바이러스로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옮을 수 있다. 이질이나 장티푸스 같이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결한 위생환경이 감염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국내에서 A형간염은 대개 국민학교 입학 전후의 어린이에게 잘 발생한다. 반면 성인들은 거의 면역되어 있는 상태이다.
A형간염은 다음과 같은 어린이들이 잘 걸린다. 더러운 물이나 흙장난을 한 뒤 손을 씻지 않은 채 빠는 어린이, 과자나 껌을 손으로 만지고 바꿔먹는 어린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더러운 화장실이나 부엌기구, 파리나 바퀴벌레, 만원 풀장 등을 통해 전파된다.
A형은 급성 간염만 일으킬 뿐 만성적인 감염은 없다. 또 A형은 알게 모르게 앓고 뒤끝없이 잘 낫지만 B형은 다르다.
B형간염은 급성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바이러스 보균자를 낼 수 있다. 또 만성 간염, 간경변증 그리고 간암 같은 만성 간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국내 성인층의 간염은 대부분 B형에 속한다. 우리 국민의 10% 즉 10명에 1명꼴로 B형간염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도 간이 정상인 경우가 많지만 본인도 모르게 만성 간염을 앓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 즉 보균자는 남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다.
어머니로부터 아기에게 전파 돼
B형간염바이러스는 주로 혈액내에 존재한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혈액을 수혈하거나 바이러스로 오염된 주사기를 사용하면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최근에는 헌혈한 혈액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양성으로 밝혀진 혈액은 쓰지않으므로 수혈 후의 B형간염은 드문 편이다. 주시기도 1회용을 많이 쓰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여러 사람의 혈액이 뭍을 수 있는 기구들이 더 위험한 감염경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예방주사를 한 바늘로 여러 사람에게 놓는 일, 혈액형 검사를 위해 여러 사람의 귓불을 한 바늘로 찌르는 일, 한방의 침, 문신(文身)용 바늘같은 것 등은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 심어주는 경로가 된다.
또한 면도기를 돌려 쓰거나 남의 칫솔을 사용하는 것도 위험하다. 미장원이나 이발소에서 쓰는 손톱깎기, 손톱의 군살을 다듬는 가위, 귀걸이를 달기 위해 귓불을 뚫는 기구 등도 주의를 요한다.
B형간염바이러스는 침이나 정액같은 체액에서도 발견된다. 즉 보균자와 키스나 성행위 등을 한 경우,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B형간염은 수직감염이 가능하다. 즉 임산부가 임신 말기에 급성B형간염에 걸리거나 또는 보균자일 때 갓난 아기에게 B형간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임산부가 혈액내에 간염바이러스를 가진 경우, 아기에게 수직감염될 가능성은 8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더구나 신생아 때 감염되면 90% 이상이 평생동안 바이러스 보균상태로 남게 된다. 국내에서 간염의 보균자가 유독 많은 이유도 수직감염이 많이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간염의 증상은 A형과 B형이 비슷하며 경과에 따라 잠복기 전구기 황달기 그리고 회복기로 나눈다.
바이러스가 몸안에 들어오더라도 간염을 금방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 즉 바이러스가 간에 지하당을 조직하고 증식하는 시기가 바로 잠복기이다. A형은 보통 한달, B형은 석달정도이고 이 시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다.
전구기는 첫번째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이 때에는 감기나 몸살같은 증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다수 간염환자들은 자신이 간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지낸다. 그저 몸이 몹시 피곤해지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동시에 전신에 힘이 빠지고 평소에 쉽사리 하던 규칙적인 일도 힘들어 한다. 또한 식욕이 없어지고 심하면 구역질이나 구토도 생긴다. 담배나 커피 맛도 없어진다.
또 간이 염증으로 인해 부어 오른쪽 갈비뼈 밑이 뻐근하게 아픈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열이 나고 관절통이 생기며 소변색도 진해진다.
또 흔히 감기나 체한 것으로 오인된다. 그래서 감기약을 먹다가 황달이 생겨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다.
황달기가 되면 눈 흰 자위가 노랗게 변하고 피부색도 따라서 변한다. 황달은 수일에서 4~6주 정도까지 지속할 수 있는데 황달이 심하고 오래 갈수록 치료가 어려워진다.
간염하면 일반적으로 황달을 떠 올리지만 실제로는 황달없이 자신도 모르게 앓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장년층의 75% 정도는 B형에 면역되어 있는데 대부분 황달 앓은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非)황달성 간염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회복기에는 모든 증상이 호전되고 정상생활로 복귀되는 시기다. 급성 간염은 대개 3~4개월이면 회복되지만 6개월 이상 가면 만성으로 추정해야 한다. 성인층의 급성 B형간염은 대부분 잘 낫지만 5~10%는 만성으로 넘어갈 수 있다.
급성 간염에 걸리면 안정을 하여 간을 쉬게 하고 단백질과 칼로리가 많은 식사로 간에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생일 반찬처럼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구역질이 심하면 포도당주사를 맞아 칼로리를 공급해주는 것이 좋다. 쓸데없이 약을 많이 쓰면 병든 간에 더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또 성분미상의 한약이나 민간약, 녹즙 또는 간장에 부담이 되는 양약들은 금해야 한다. 술은 간염이 다 나은 후 1년 이상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간염백신 신생아에게 먼저
간염은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한데 환경위생의 개선이 그 첩경이다. 이를 위해 우선 손을 잘 씻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특히 용변 후, 식사전 또는 음식을 만들 때 항상 손을 잘 씻어야 간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또 간염바이러스는 1백℃에 10분만 끓이면 죽으므로 물은 반드시 끓여 먹는 것이 안전하다. 약수나 산골짜기 물을 즐겨 마시는 것도 간염예방의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식기나 수저도 끓여 소독하며 바퀴벌레나 파리에 의한 오염을 막도록 주방이나 화장실의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한 그릇의 국물을 여럿이 떠 먹거나 침을 바르며 돈을 세는 버릇도 지양하는 것이 좋다. 여러 사람이 돌려 쓰는 기구는 충분히 소독해 사용하거나 사용을 피한다.
최근에는 다행히 B형간염 백신이 개발되어 적극적인 예방이 가능해졌다. 국내에는 자신도 모르게 앓고 면역이 되었거나 보균자로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단 약간의 피를 뽑아 B형간염바이러스 항원 항체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항원이 양성이면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있다는 뜻이다. 또 항체가 있다면 이미 몸 안에 면역이 형성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B형간염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간염 백신은 B형간염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는 사람, 즉 항원 항체가 모두 음성인 사람이 맞아야 한다.
간염백신이 가장 필요한 대상은 신생아들이다. 일찍 백신을 맞아 몸 안에 항체를 길러 놓아야 자라는 동안 B형간염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DTP나 소아마비백신처럼 신생아들 모두가 '의무적으로' 간염 백신을 맞는다면 앞으로 우리 주위에서 간염의 공포가 사라질 것이다. 종두나 소아마비가 백신접종으로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B형간염 백신을 맞는 첫째 이유는 간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간염의 합병증인 만성 간염 간경변증 그리고 궁극적으로 간암을 예방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