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세토는 1987년 초등학교 2학년인 9살의 나이에 주식투자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1992년 1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에게서 700달러를 빌려 사이버텍이라는 기업의 주식을 샀다. 3개월 뒤 이 회사의 주가는 114%나 상승했다. 1993년에는 가족의 돈을 모아 투자를 했고 그 해에 38%의 수익을 올렸다. 다음해에는 33%, 그 다음해에는 34%의 수익을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소년의 인터뷰 기사를 1면에 실었고 투자가들은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관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1929년 미국의 경제공황 당시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던 예일대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대공황 직전 시장이 최고조의 흥분상태에 있을 때에 “이제 쉽사리 변화가 생기지 않을 고원대에 진입했다”라고 말해 대학자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시험대에 올랐다.
어린 소년은 성공하고 대학자는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자와 어린 소년의 투자 결과를 보면서 투자에는 과학이 없다, 오로지 운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 속에 숨은 과학의 원리를 찾아내 성공한 일반인의 예는 무수히 많다.
분산투자의 마술
주식의 가격은 결국 그 주식을 발행한 기업의 가치로 결정된다. 사람들은 주식을 발행한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 요인들과 주식가격의 관계를 모형으로 만든다. 이러한 모형을 구축하는 과정에 재무이론 외에 수학, 통계학, 심리학, 사회학, 전산학 등 많은 학문 분야의 지식이 동원된다.
맷 세토는 자신이 찾아 낸 요인들을 토대로 종목을 선정한 뒤 자신의 투자자금을 한 종목에 모두 투자하는 대신 ‘마코위츠의 분산투자 이론’에 근거해 투자를 했다고 한다. 마코위츠는 투자에 위험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공을 인정 받아 199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흔히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이라고도 하는 이 이론은 과연 무엇일까.
예를 들어 보자. A, B, C라는 자산이 있다. 각 자산의 수익률은 각각 10%, 20%, 30%이고 분산으로 측정된 위험(리스크)은 10%이다. 100만원이 있다고 할 때 어느 상품에 투자해야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손실을 줄일 수 있을까. 일단 드는 생각은 C에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위험은 똑같고 수익률은 C가 가장 높다면 C에 투자하는 것이 제일 좋아 보인다. 그러나 분산투자 이론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A, B, C에 적당히 돈을 나눠서 투자하면 수익률을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위험을 10%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마코위츠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가 수익률의 분산(표준편차)을 투자 위험으로 정의하였다. A, B, C 세 개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였을 경우 그 위험(분산)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Var(A+B+C) = Var(A) + Var(B) + Var(C) + 2 Cov(AB) + 2 Cov(AC) + 2 Cov(BC)
(Var는 분산(위험), Cov는 공분산)
즉, 포트폴리오의 위험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개별 자산 각각의 분산 3개와 자산 상호간의 공분산 6개의 합으로 표현된다. 이 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자산의 수를 3개에서 점차 늘리면 개별 자산의 분산 부분은 그 비중이 점차 작아져 0으로 수렴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각 자산 상호간의 공분산 부분만 위험으로 남게 된다. 즉 분산투자를 통해 투자가들은 자신이 부담할 총위험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총위험은 분산투자에 의해 회피할 수 있는 위험과 회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15개 이상의 주식에 분산투자하면 회피할 수 있는 위험의 90% 정도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는 증권시장의 속담은 바로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이라는 말이다. 맷 세토는 철저하게 분산투자의 원칙을 지켜 투자 위험을 줄였고, 전문가가 무색해 할 수익을 올렸다. 반면에 대학자는 오르는 주가를 보며 군중심리에 빠져서 사태의 본질을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써먹을데 많은 미적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고도의 투자기법은 이밖에도 많다. 최근 많은 금융기관들이 VAR(Value at Risk) 기법을 이용해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VAR는 정상적인 시장 여건에서 일정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대 투자 손실을 측정하는 것이다. 확실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사용자가 시장 위험의 크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간단한 숫자로 축약해 위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시장 변화에 따라 발생하게 될 리스크에 대해 대상 포지션(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자산)의 가치를 먼저 평가한 후 미분을 통해 포지션의 가치변화를 추정하는 델타 평가법, 수익률 분포를 정규분포로 가정한 뒤 표준편차와 정해진 신뢰수준을 이용해 VAR를 구하는 모수적 방법 등이 있다. 위험관리를 위해서 다양한 수학적 지식이 동원되는 것이다.
블랙과 숄즈가 파생상품 중 주식의 옵션 가격을 결정하는 모형을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수학적 어려움 때문에 이 모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파트 1, 2 참조). 그러나 인도철학을 공부하다가 월가로 뛰어든 앤디 크리거라는 젊은이는 이 모형을 잘 이해했고 투자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는 강력한 상상력과 자신의 컴퓨터, 수학적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의 통화를 대상으로 한 옵션거래를 했고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뱅커스 트러스트에 1987년 한 해에만 무려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를 벌어주었다. 그는 영웅이 되었고 그가 회사에서 보너스로 받기로 했던 몫은 1500만 달러(약 180억원)였다. 그가 성공한 가장 큰 조건은 어려운 수학을 남들보다 잘 이해했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투자는 성공하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미래에 이뤄질 거래 가격을 현재 시점에 고정시켜 거래하는 파생상품이 등장하면서 수학은 어느 무엇보다 더 중요한 투자의 도구가 됐다. 고등학교때 배운 미적분은 사회 나가서 ‘정말’ 써먹을 데가 많다(사실 미적분을 모르고서는 이제 금융 시장에 뛰어들기조차 어렵다).
돈을 건져 올리는 황금 그물
프로그램매매도 좋은 예다. 프로그램 매매는 투자전략을 컴퓨터에 미리 입력하면 시장상황에 따라 매매 시점을 포착해 사전에 결정된 매매프로그램으로 일괄 수행하는 거래다. 선물과 현물 주식을 동시에 사고 파는 과정에서 투자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현물과 선물의 거래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분방정식과 같은 고도의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를 프로그램으로 만들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도 능숙해야 한다.
금융공학자들은 사람들의 차별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재무이론과 수학, 통계학, 전산, 물리학의 이론을 활용한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과학과 수학으로 무장된 인재들을 동원해 다양한 창조물(금융상품)을 만든다. 그러나 이들이 창조한 복잡한 상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프록터 앤 갬블사,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 독일의 메탈게젤샤프트 등은 엄청난 손실을 봤다. 닉 리슨이라는 젊은이는 지나친 만용으로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을 단 1파운드에 ING그룹에 팔아 넘기게 되는 상황도 만들었다.
투자 대상을 철저히 분석하고, 합리적인 모형을 구축하며, 상대방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를 충족하는 상품의 개발과 거래로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은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하는 철저한 과학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 상상력을 끌어내서 금융상품으로 개발해 낼 수 있는 남다른 창의력의 소유자들이기도 하다.
21세기형 인재들의 과학정신과 창의력이 바로 증권이라는 ‘머니’를 건져 올리는 황금그물이요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로 전 세계의 경제를 휘두르는 여의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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