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방송, 이젠 오감을 만족시켜라

광주과학기술원 실감방송연구센터

“쏴. 당신이 졌어, 미실.”

왕위를 빼앗기 위해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성을 잃고 덕만 공주에게 활을 겨누는 미실. 그런 미실을 의연한 얼굴로 바라보는 덕만. 과연 미실이 쏜 화살은 어디로? 절체절명의 순간 화면은 정지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엔딩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쉽지만 시청자들은 또 한 주를 기다리며 다음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런데 만약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미실의 등 뒤에서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2차원 평면의 화면이 아닌, 360˚전 방향에서 대상을 볼 수 있는 3차원 실감영상이었다면 시청자들은 미실의 화살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광주과학기술원(GIST) 실감방송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에서는 이와 같이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새롭고 신기한 방송기술을 실현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한 3차원 영상에서부터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촉감과 입체 음향까지 제공하는 실감방송은 말 그대로 ‘실감 나는 방송’. 뉴미디어 기술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 연구센터를 찾았다.

깊이 정보로 풍부해지는 입체감

연구센터에 들어서자 세 벽면을 둘러싼 블루 스크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카메라와 조명들로 꾸며진 세트가 여느 방송국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의 카메라들은 5개씩, 또는 10개씩 일렬로 묶여 있다.

“화면 속의 대상을 다양한 시점에서 보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대상을 촬영합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3차원 화면으로 변환해 3차원 입체 모니터에 재현하는 방식이죠.” 연구센터장인 광주과학기술원 정보통신학과 호요성 교수의 설명이다.
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의 3차원 영상은 물체의 정면 시점이 한가운데에 있는 카메라가 찍은 영상으로, 정면에서 5˚이동한 시점은 가운데 카메라에서 한두 대 떨어진 카메라가 찍은 영상으로 나간다. 카메라의 수가 많을수록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호 교수는“현재 연구센터에 마련된 10대의 카메라로는 좌우 30˚정도의 시점을 다루고 있지만 좀 더 많은 카메라를 배치하면 360˚전 시점을 담는 영상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보는 시점만 다양하게 구성한다고 해서 3차원 영상이 되는 건 아니다. 2차원 평면에서 찍더라도 물체의 굴곡과 원근감을 표현하려면 카메라로부터 물체가 떨어져 있는 실제 거리가 필요하다. 카메라에서 얻은 영상에 깊이 정보를 더하는 셈이다.



깊이 정보는 깊이 카메라(Depth Camera)라는 특수한 장159비로부터 얻는다. 카메라에서 내보낸 적외선이 물체에 닿았다가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물체까지의 거리를 산출한다. 깊이 카메라에서 얻은 영상은 가로, 세로, 거리와 같은 좌표 값으로 표현돼 3차원 공간상에서의 기하학 정보로 사용된다. 영상은 고해상일 뿐 아니라 화소별로 깊이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쉽다.

하지만 여기엔 단점도 있다. 불필요한 적외선이 수없이 존재하는 야외에서는 정확한 거리 정보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촬영은 조명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이뤄진다. 또 적외선은 흰색에는 잘 반사하지만 검은색에는 흡수되는 성질이 강해 사람 얼굴을 촬영할 때 머리 부분이 없는 것처럼 나오기도 한다. 호 교수는 “깊이 정보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별도의 정보 처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실감방송연구센터

다(多)시점 카메라와 깊이 카메라로부터 얻은 영상 정보는 물체와 배경을 합성하기 위한 모델링 과정을 거쳐 3차원 영상으로 탄생한다. 호 교수의 연구센터에서는 주로 3차원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부분과 이를 압축하고 전송하는 영상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영상에 더해질 입체 음향과 촉감 정보는 GIST를 비롯한 광운대, 연세대, 고려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11개 기관에서 함께 연구하고 있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연구센터를 기점으로 공동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국내 최대 실감방송 연구센터임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 실감방송 기술이 전 세계의 방송 산업을 이끄는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호 교수는 “무엇보다 기초과학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 가지 감각의 인지과정에 대한 이해라든지, 영상정보에 반응하는 인체심리, 데이터를 전달하고 처리하기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 등 각종 기초과학이 탄탄해야 이들의 융합 기술인 방송 또한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전문가들이 만든 생생하고 실감나는 방송이 곧 우리의 거실에서도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김윤미 기자 · 사진 김인규

🎓️ 진로 추천

  • 정보·통신공학
  • 컴퓨터공학
  • 언론·방송·매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