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와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법의 규율을 받는다. 가솔린 자동차의 탄생 이후 자동차는 현대인의 일부가 됐다. 자가용을 이용한 출근길,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리는 등 자동차와 함께하는 삶 역시 법의 규율 아래 놓여 있다. 자동차는 이제 전기, 수소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연료로 삼는 발전 단계를 넘어 자율주행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놓였다. 자율주행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법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
獨 인명 최우선 , 美 핸들 없는 자율차 OK
현대인의 모든 생활이 법적 규율을 받는 것처럼 인간이 활용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역시 법의 규율에서 예외일 수 없다. 더욱이 공상과학(SF) 영화처럼 그려지던 청사진과 달리 구글과 테슬라의 사고, 최근 우버 사고 등은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는 시대에 대한 의문점을 남겼다.
‘인간이 운전하는 것만큼 안전한가’ ‘운전석에 앉을 필요도 없고 술을 마셔도 탑승이 가능한가’ ‘인간의 운전을 금지하게 될까’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등 자율주행자동차를 둘러싼 많은 의문이 아직 법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런 의문들을 토대로 자율주행자동차를 둘러싼 제도적·법적 환경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로교통국제협약은 2016년 자율주행 시스템 도입을 위한 국제법적인 전제를 마련했다.
유엔(UN) 도로교통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8조 제5문에는 ‘운전자는 항상 차량을 제어해야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으나,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서 ‘차량의 운전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 차량 시스템이 국제적 기준에 적합한 때는 제5항에 합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제5문의 2에 신설했다.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경우 자율주행 시스템을 인간운전자와 동등하게 인정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방식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인 독일은 2017년 6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자동차가 실생활에서 운행될 수 있게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이 법에서는 레벨3과 레벨4 자율주행자동차의 책임은 운전자에게, 레벨5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책임 결정이 유보됐다. 사고피해자는 자율주행자동차 소유주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으며,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는 제조사가 피해를 보상한다. 이와 함께 ‘자동·연결주행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자동차의 윤리적 행동 기준을 마련했다. 원칙은 ‘인명 최우선’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어떠한 경우에도 기물이나 동물에 앞서 사람의 부상이나 사망을 예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은 이런 법적·윤리적 대비와 함께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와 공동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사회적 수용성 향상 연구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 선도국인 미국은 주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자율주행자동차 관련법 제정을 마쳤다. 미시간 주가 가장 먼저 나서 자율주행자동차의 시험, 개발, 판매 등을 포괄하는 법률안을 제정했다. 미시간 주에서는 페달이나 핸들이 없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주행이 허용된다. 한편 연방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자동차 안전 기준을 완화한 ‘안전 비전 2.0(Vision for safety 2.0)’을 도입하면서 자율주행 기술의 선도적 입지 유지를 위한 터를 마련했다.
운전자의 개념-안전 문제-사고 책임이 ‘3대 이슈’
자동차 산업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유럽은 자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확보, 국민의 생명 보호, 교통 관여자의 안전 담보를 목표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2월 자율주행자동차 임시운행 허가 제도를 도입한 뒤 현재까지 시험 연구 목적으로 18개 기관 44대의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을 허가했다.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기대와 논란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자율주행 시대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운전자의 개념, 안전 문제, 사고의 책임 소재로 정리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이슈를 대비하기 위해 올해 2월 도로교통법, 자동차관리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안 등 4개 법률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우선, 도로교통법 등 자동차의 도로상 운행과 관련된 현행 법령들은 사람을 운전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향후 상용화될 레벨4와 레벨5 자율주행자동차는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기 때문에 기존처럼 사람을 운전자로 볼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경찰청은 이를 위해 2016년 도로교통법령 개정을 위한 용역 연구를 추진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올해 자율주행자동차 운전면허 등 법령의 대대적인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대비도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제2차 자동차정책 기본계획(2017~2021)’을 마련했다. 이 계획에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로드맵이 제시됐는데, 이 로드맵에 따르면 2020년 레벨3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2022년 완전자율주행 기반 마련이 목표다. 동시에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필요한 안전기준 및 보험제도 안이 올해 내에 마련돼 내년 말까지 제도화될 예정이다.
안전을 위한 보험제도 개편은 불가피하며, 사고 책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까지 포함해 자동차손해배상법, 제조물책임법 등 관련법의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정부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종류에 따른 제조 안전 기준, 주행 안전 기준을 올해 안에 확정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의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첨단기술이 융합된 것으로 제조단계별 책임을 확정하기 어렵다. 또 대부분의 자동차 사고는 민·형사의 문제가 모두 발생하기 때문에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자율차 법적 핵심은 ‘안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교통법과 자동차 사고에 대한 특별형법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의 관련 조항을 손보거나, 이런 내용을 포괄하는 별도 법률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즉 자율주행 레벨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운전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규정하고, 그에 따77라 자동차의 제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도로교통법령에 규정해야 한다. 자율주행모드 주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한 경우 형사처벌과 그에 대한 교통사고처리 특례와 같은 책임이 면제되는 근거를 규정해야 한다.
아울러 자율주행자동차의 제조사, 시스템 개발사, 도로교통 정보 제공자, 보유자 등에게 차량 등록 전에 보험에 가입하도록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을 손질해 사고발생 시 손해배상의 민사 문제와 형사처벌 특례의 근거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자율주행 시스템의 경우 제조물책임법상의 ‘제조물’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으므로 제조업자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제조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율주행 시스템의 해킹 등 보안사고가 발생할 경우 행위자의 처벌과 그 배상 문제, 보험 미가입 시 처벌, 제조사 등의 의무 위반 시 처벌 등에 대한 벌칙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올해 3월 국내에서도 독일처럼 민관협력체인 ‘자율협력주행 산업발전 협의회’가 발족됐다. 이 협의체를 통해 국토부가 제시한 기술적·사회적·법적 로드맵이 더욱 구체적으로 실행될 전망이다.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 부작용을 어떻게 대비하는가에 따라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될 수 있다. 법을 비롯한 사회적 통제 기제도 마찬가지로 가치중립적이다. 이 점에서 디스토피아로의 전락을 막기 위한 법적·사회적 차원의 대비가 절실하다.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은 안전이며 그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2022년을 완전자율주행의 도래기로 보고 대응하고 있다. 여기서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공감대 확보와, 자율주행 기술 선도국과의 격차 해소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려된다. 결국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과 책임에 관한 법률의 제정 등 새로운 법률의 입법, 기존 법령의 개정을 위한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
정부는 기존 법률 체계에 최소한의 변경을 가해 점진적으로 자율주행자동차를 둘러싼 법적 이슈를 해결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규제의 부재와 부정합이 큰 현재 상황에서 종합적·체계적 해결이 아닌 이런 방식의 해결이 과연 타당한 지는 의문이다. 선제적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자율주행 기술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 이승준
연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연구했다. 현재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형사법전문가로 의료, 자율주행자동차 영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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