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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불청객’ 동물이 남긴 단서들

죽음, 그 후 ➍

시체농장에서 시체 사진을 찍다 심장이 멎을 뻔한 적이 몇 번 있다. 새나 쥐 같은 동물들이 시체 옆에 죽어있는 걸 보거나 똬리를 틀고 있는 뱀과 눈이 마주치면 혼자 비명을 지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도 있었는데, 이들이 지나가고 나면 시체들이 특이한 모양으로 훼손돼 있었다. 처음엔 시체의 팔다리에 구멍이 뚫리더니 그 다음엔 피부와 뼈만 남고 팔다리가 텅텅 비어버렸다. 마치 구멍으로 근육만 빼내 간 듯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시체를 덮은 비닐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거나 철망을 씌우지 않으면 이들의 집요한 공세는 며칠이고 계속됐다. 시체농장에선 너구리, 뱀, 쥐, 토끼, 청설모, 거북이, 독수리, 까마귀 등 수많은 동물이 시체와 함께 산다.

시체 주위로 모여든 동물마다 시체를 다루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근육이나 내장을 먼저 훼손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뼈에 관심을 갖는 동물도 있다. 시체 일부를 분리해 먼 곳으로 가져가거나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겨놓기도 한다. 동물이 남긴 흔적이 사람이 남긴 흔적과 매우 비슷해 보일 때도 있다. 특히 시간이 흘러 시체가 더 많이 훼손되고 흩어지게 되면 둘을 구분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동물에 의한 훼손 흔적을 분간해 낼 수 없다면 어떤 손상이 사람에 의한 것인지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수사의 방향을 잘못 정하거나 중요한 단서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절단된 시체가 발견됐을 때 이 손상이 너구리나 쥐와 같은 동물에 의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지 않고 성급히 가해자의 범죄 행위와 연관 짓는다면 수사력을 불필요하게 낭비할 수 있다. 법의인류학자들이 동물의 습성을 연구하고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이유다.



뼈 부수고 골수 빼먹는 갯과 육식동물

개나 늑대와 같은 갯과 육식동물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만큼 습성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뾰족한 송곳니와 열육치(carnassial teeth)로 먹이를 물어뜯거나 싹둑 자를 수 있다. 열육치는 위턱의 네 번째 작은 어금니와 아래턱의 첫 번째 큰어금니 한 쌍을 이르는 말로, 먹이를 쉽게 자를 수 있도록 발달한 이빨이다.

이들은 대체로 접근하기 쉽고 얻을 게 많은 곳을 우선 공격한다. 뼈나, 옷에 가려져 있지 않은 얼굴이나 목, 뱃속의 내장기관을 먼저 훼손하고 그 다음으로 가슴과 팔, 다리를 공격하는 식이다. 뼈의 구조가 복잡하고 연조직이 별로 없는 척추와 등은 대개 마지막까지 남기 때문에 원래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를 추론할 때 유용한 단서가 된다. 시체가 훼손되는 동안 뼈가 몸통과 분리되는 순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시체가 손상되고 분리되는 순서를 안다면 시체가 사망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갯과 육식동물은 강한 턱과 이빨로 뼈를 부수고 뼈 안쪽의 골수를 먹는다. 이들이 골수를 빼내기 위해 뼈의 끝부분을 파손한 탓에, 긴 뼈는 빈 파이프처럼 가운데 몸통 부분만 남게 된다. 이때 뼈에는 여러 형태의 이빨 자국이 생긴다. 뼈에 동그라미 혹은 부채꼴 모양으로 패인 흔적이나 구멍이 있다면 갯과 육식동물이 송곳니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송곳니로 뼈를 문 채 잡아당겼다면 패인 자국이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어금니를 사용해 뼈를 파손하면 절단면이 너덜너덜하고 불규칙한 모양이 된다(사진 ➋). 동시에 뼈의 부서진 부분이 반질반질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갯과 육식동물이 이빨로 뼈를 반복적으로 문지르거나 혀로 핥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친숙한 모습일 것이다.

뼈의 손상 부위나 좌우 송곳니의 간격 등을 보면 동물의 크기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갯과 육식동물들은 힘이 세지만, 우리 몸에서 가장 강한 뼈인 허벅지 뼈의 몸통 부분을 두 동강 낼 정도는 아니다. 두개골 또한 갯과 육식동물이 한입에 물기 힘들기 때문에 멀리 옮기기는 할지언정 완전히 부서뜨리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이런 부위가 완전히 파손됐다면 개나 늑대보다는 곰처럼 큰 동물이 개입했거나 사람에 의한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

시체에 남은 손상 흔적만을 보고 종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데 예외적으로 가능한 경우가 있다. 필자가 최근에 논문으로 발표한 너구리다. 너구리는 다른 갯과 육식동물과 다르게 내장보다 근육을 좋아해서 팔이나 다리에 먼저 접근한다. 일단 이빨로 피부에 작은 110구멍을 뚫은 다음 앞발을 구멍에 집어넣어 근육만 빼낸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시체의 팔 다리는 구멍 뚫린 피부와 뼈만 남긴 채 홀쭉해진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밤에만 나타나는 근육 빼먹는 동물’이 바로 이 너구리였다.



뼈를 갉아먹는 설치동물

갯과 육식동물만큼 흔하면서 시체에 관심을 갖는 동물로 설치동물을 꼽을 수 있다. 설치동물의 가장 큰
특징은 위턱과 아래턱의 앞니 두 쌍이 평생 자란다는 점이다. 앞니가 계속 자라면 입을 다물 수 없어 먹잇감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설치동물들은 계속해서 앞니를 단단한 물건에 대고 갈아줘야 한다. 설치동물이 뼈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이유다. 시체에서 분리된 뼈는 자꾸 움직이기 때문에 윗니와 아랫니를 동시에 사용해서 갉아 대기가 힘들다. 그래서 보통은 윗니로 뼈를 고정하고 아래턱을 움직여 뼈를 갉아낸다. 그 결과 위턱이 문 쪽엔 작은 점 모양의 찍힌 자국이 생기고 아래턱이 문 쪽엔 긴 일직선 형태의 긁힌 자국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오로지 앞니를 갈기 위한 목적으로 뼈를 이용하는 회색 큰다람쥐(gray squirrel)는 긴 뼈의 몸통처럼 두껍
고 단단한 부분에 이빨 자국을 남긴다(사진 ➌). 그 중에서도 연조직이 없고 완전히 마른 상태의 뼈를 선호하기 때문에 사망한 지 대략 30개월이 지나지 않은 뼈에서는 회색 큰다람쥐의 이빨 자국을 찾기가 힘들다. 이런 습성을 안다면 뼈에 회색 큰다람쥐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체의 사후경과시간을 판단할 때 도움이 된다.

앞니를 마모시키기 위한 목적 외에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뼈에 접근하는 설치동물도 있다. 집쥐가 대
표적이다. 집쥐는 완전히 마르지 않은 뼈를 갉아먹으며 미네랄이나 지방을 섭취한다. 긴 뼈의 경우 뼈의
양 끝 부분에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갯과 육식동물처럼 뼈의 끝부분을 주로 훼손한다. 긴 뼈의 끝 부분
이 훼손된 경우 이것이 갯과 육식동물에 의한 것인지 집쥐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집쥐는 갯과 육식동물보다 입이 훨씬 작기 때문에 뼈의 끝부분을 통째로 씹거나 분리시키지 못한다. 대신 벌레가 과일을 파먹은 것처럼 뼈의 강한 부분은 남기고 약한 부분만 조금씩 갉아 먹는다(사진 ➍).

독수리, 멧돼지, 바퀴벌레는?

최근 법의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동물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독수리, 멧돼지, 바퀴벌레 등
육지 동물은 물론 상어와 같은 바닷속 동물들이 시체를 훼손할 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도 알게 됐다. 동물 연구에서도 시체농장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촬영 장비를 이용해 동물이 시체를 훼손하는 순간을 정확히 기록할 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뼈를 훼손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같은 뼈를 몇 년 동안 추적 조사하기도 한다. 이런 연구는 뼈에 남은 훼손 흔적을 통해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파악하고, 나아가 훼손한 동물의 종을 구분하려는 시도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에 힘입어 법의인류학자는 사람에 의한 손상과 동물에 의한 손상을 분간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되는 변사자의 수가 1년에 100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아무도 동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따라서 뼈에 남은 흔적이 모두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거나 그 반대로 동물에 의해 발생했다고 성급히 판단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습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아는 게 첫 단추다.
 

 

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정양승 법의인류학자
  • 에디터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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