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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자율주행자동차, 직접 타보니

카메라로 주변 살피고, AI로 질주

‘드드드득~’.


핸들이 돌아가더니 ‘에트리카(Etri-Car)’가 출발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다. 5인승 자동차의 뒷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시속 15km, 에트리카가 천천히 움직인다. 하지만 체감은 고속 질주다. 전방에 사람이 보일 때마다 ‘으헉’ ‘앗’ 같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아직 자율주행자동차에 운전을 맡기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일까.

 

 

[ETRI] 인지-판단-주행, 레벨3 ‘에트리카’

 

“혼자 타보시겠어요?”


4월 2일 대전 유성구 ETRI. 이동진 ETRI 자율주행시스템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에트리카를 호출했다. 잠시 뒤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가로지르며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한 대가 눈앞에 멈춰 섰다. 운전자는 없다.

 

미리 설정한 경로를 따라 에트리카를 타고 1분간 짧은 드라이브를 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핸들을 돌리며, 전방에 다른 차량이나 사람 등 장애물이 보이면 일단 정지했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에는 속력을 살짝 줄인다. 사람과 운전 방식은 똑같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속력을 조금씩 줄이며 멈추더니 핸들을 돌려 바퀴 4개를 똑바로 정렬했다.

 

지적할 게 없는 안전한 주행이었다. 그런데 1분이 마치 10분처럼 길게 느껴진 건 왜일까. 이 선임연구원은 “자율주행자동차 탑승자에게는 운전자가 없다는 사실이 아직은 이질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트리카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임시운행 허가를 받은 ‘레벨3’ 자율주행자동차다. 레벨3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일정 구간을 자율주행 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사람의 개입 없이 어떤 환경에서도 정해진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완전 자율주행자동차는 레벨5에 해당한다.

 

현재 에트리카는 시속 60km까지 주행하고, 100m 앞의 장애물을 인지하며, 이에 따라 상황을 판단해 주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사람의 경우 전방 40m 내에 있을 때 감지하도록 설계됐다.

 

민경욱 ETRI 자율주행시스템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시속 60km로 주행할 때 사람이 가장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여기서 차츰 속도를 줄여 완전히 멈추는 데 필요한 거리가 100m”라며 “단순히 속력을 높이기보다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인지 능력과 판단 수준에 맞춰 주행방법을 결정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에트리카의 운전 능력은 트렁크에 설치된 3대의 컴퓨터 덕분이다. 각각 인지, 판단 그리고 블랙박스처럼 주행 기록을 저장하는 역할이다. 우선 자율주행자동차가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연구진은 각종 도로 상황을 찍은 4만여 장의 이미지를 인공지능(AI)에게 학습시켰다. AI가 이미지를 본 뒤 장애물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차량, 사람, 자전거등 장애물의 종류를 일일이 표시해주는 주석 작업도 진행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일찍 시작한 해외 선진국은 공개된 AI 학습용 데이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데이터가 없어 AI에게 국내 도로 상황을 학습시킬 자료를 구축하는 작업부터 진행했다”고 말했다.

 

에트리카는 주변 상황을 인지한 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여기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활용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 레이저, 라이다(레이저 레이더) 등 센서가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방에 보이는 장애물의 종류와 거리, 충돌을 피하기 위한 주행 방법 등을 정확하게 판단한다. 민 책임연구원은 “가상의 공간에서 자율주행차를 운전시키며 속력, 핸들을 꺾는 정도, 브레이크 가동거리 등 운전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단계는 주행이다. 학습을 마친 에트리카는 시험 도로에서 주행하며 주행 방식을 익혔다. 전방 상황에 따라 주행방법은 달라진다. 가령 장애물이 보행자로 확인되면 무조건 정지한다. 다른 차량이나 쓰레기통 등으로 인지되면 일단 속력을 줄인다.

 

자율주행자동차는 특별 제작한 정밀 도로지도로 경로를 확인한다. 정밀 도로지도는 중앙선과 같은 도로 규제선, 주변시설, 표지 정보, 노면의 상태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정보를 3차원으로 표현한 전자지도다. 국내에서는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2015년부터 정밀 도로지도를 부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민 책임연구원은 “정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라이다를 장착한 차량이 도로를 천천히 훑으면서 주행해 정밀 도로지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며 “대덕연구단지 내 길이 8km 시험 도로의 정밀 도로지도를 구축하는 데에만 한 달이 소요될 만큼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KAIST] 출발부터 도착까지 인공지능이, ‘유레카-AI’

 

다음 날, 또 다른 자율주행자동차를 확인하기 위해 대전 유성구 KAIST로 향했다. 점심시간의 대학 캠퍼스는 복잡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길을 가로지르는 보행자들, 갑자기 출몰하는 자전거, 여기에 도로변에 정차한 차량까지 왕복 2차선 도로는 각종 ‘장애물의 향연’이었다.

 

심현철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 ‘유레카(EUREKAR)-AI(아래 사진)’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여유롭게 캠퍼스를 누볐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를 발견하자 왼쪽으로 핸들을 틀더니 남아 있는 도로 폭에 맞춰 경로를 조정했다. 주차된 차량이 도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경우에는 속력을 줄여 멈췄다. 계속 주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선을 침범해야 하는 만큼 교통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일단 멈춘 것이다.

 

 

KAIST 자율주행자동차를 탑승하는 동안 두 가지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하나는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차량이 좌우로 움직였다. 심 교수는 “사람은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지만, 자율주행자동차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는 차에 고정돼 있어 사람에 비유하면 깁스를 한 사람의 시선과 같다”며 “언덕이나 심한 커브 구간에서 시야가 좁아져 차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심 교수팀은 반복 테스트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전방 횡단보도에 사람이 건너가고 있는데 완전히 멈추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는 점도 특이했다. 심 교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사람의 운전 습관을 그대로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AIST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유레카-AI’의 트렁크에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담당하는 컴퓨터가 들어 있다. 발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에어컨도 가동된다.

 

유레카-AI는 차 지붕에 달린 6대의 카메라로 주변 상황을 관찰한다.

 

엔비디아가 개발한 자율주행 가상훈련 플랫폼 ‘NVIDIA Drive Constellation’의 화면. 실제 도로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실제로 심 교수팀이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 두 대의 주행 방법은 서로 다르다. 자율주행자동차를 훈련시킨 연구원의 운전 습관을 AI가 그대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최근 ‘포뮬러1(F1)의 황제’로 불리는 루이스 해밀턴이 학습시킨 ‘해밀턴카’도 가능하다.

 

KAIST 자율주행자동차의 특징은 정밀 도로지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밀 도로지도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지만, 지도가 없는 도로에서는 자율주행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심 교수는 “무인항공기의 경우 하늘길이 변하지 않고, 공항의 변화도 빈번하지 않기 때문에 정밀지도를 구축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로 사정을 정밀지도에 시시각각 반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AI가 훈련부터 테스트, 실제 주행까지 담당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시스템이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 생산 업체인 엔비디아는 엔드투엔드 자율주행자동차가 가상 공간에서 주행 훈련을 할 수 있는 플랫폼(NVIDIA Drive Constellation)을 3월 28일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도시 건설 게임인 ‘심시티’처럼 실제 도로 환경을 가상의 공간에서 그대로 구현한다.

 

이를 이용해 자율주행자동차는 센서 성능을 검증하는 등 자율주행 시스템 일체를 테스트할 수 있다. 폭풍우, 눈보라 등 궂은 날씨는 물론 야간 운전, 운전 중 눈부심, 다양한 도로 표면 및 지형에서 자율주행자동차를 실험할 수 있다. AI는 실제 도로 주행과 가상공간 주행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심 교수는 “10년 무사고 운전자를 안전 운전자로 평가하는데, 사람이 연간 평균 2만~3만km를 주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만~30만km를 무사고로 운전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시험 도로에서 이 정도의 거리를 무사고로 운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가상 플랫폼에서 자율주행자동차를 시험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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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글·사진] 대전=권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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