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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전문 탐정의 시조 비도끄

소설 주인공보다 더욱 파란만장한 인생


죄수들을 계속 걷도록 지시하고, 그들의얼굴생김새와 걷는 습성 등을 눈에 익혀 범죄자 유형을 가려내는게 목적이다.


세계 최초의 전문 탐정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프랑스와 외젠 비도끄(1775-1857).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희대의 엽색가 카사노바, 미국의 마술사 후디니,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에드거 후버를 합쳐놓은 사나이라는 평을 받는 쟁쟁한 인물이다.

그는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병사, 죄수, 탈옥수, 스파이, 여장남자, 파리지구 범죄수사국(쉬르테)의 책임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 탐정사무소 대표가 그가 거쳐온 삶의 흔적들이다.

비도끄는 군생활을 마친 뒤 고향에 돌아와 상점을 차리고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정식 제대 명령을 못받았다는 이유로 도망병으로 간주돼 체포됐다. 또 형무소에서 위조지폐범 2명이 자신들의 죄를 비도끄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는 억울함에 못이겨 10여년 간 탈옥을 계속 시도했고, 경찰에 다시 체포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 시기에 비도끄는 도둑이나 사기꾼의 버릇과 습성을 환히 파악했다. 또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뛰어난 변장술을 익혔다.

비도끄가 마지막으로 잡혔을 때 경찰서장은 그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파리에 원정온 절도범 을 잡는데 협조하면 풀어주겠다는 것. 비도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절도범 일당은 일망타진됐다.

비도끄는 옷가게를 열고 다시 새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전과자 두명이 나타나 그가 탈옥수임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당황한 비도끄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형무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는 경찰서장에게 형무소 안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고 제의하고, 1년 9개월간 옥살이를 자청했다. 이때 빼낸 정보로 범죄자 체포건수는 급증했다.

경찰은 비도끄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경찰 전속 탐정으로 임명했다. 비록 무보수였지만 체포권이 인정됐기 때문에 비도끄는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 범인에게 붙여진 현상금은 짭짤한 수입원이었다.

한편 파리에 점차 온갖 범죄자가 몰려들자 기존 경찰만으로 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1812년 비도끄는 자신과 같이 개심한 전과자를 중심으로 범죄수사국 쉬르테를 창설한다. 각종 사기도박꾼, 위조지폐범이 초창기 수사대 구성원이었다. 1820년에 수사관은 30여명에 이르렀고, 파리의 범죄율은 40%나 줄어들었다.

“나 비도끄야” 한마디에 항복

비도끄는 1827년까지 쉬르테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2만여명의 범죄자를 체포했는데, 그의 이름만 들어도 악한들이 벌벌 떨었다고 한다. 어느날 유럽에서 손꼽히는 흉악범이 술집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경찰서장이 1천명의 경찰를 동원하려 하자 비도끄는 “8명이면 족하다”고 얘기한다. 그는 부하들을 수갑이 가득 채워진 가방을 들게 하고 밖에 대기시킨다. 그리고 혼자 술집에 들어가 무대에 서서 호령을 내렸다. “음악을 멈춰라. 나 비도끄야.” 그러자 악당들이 재크나이프와 권총을 떨어뜨리고 순순히 한줄로 늘어서 바깥으로 차례대로 나갔다. 부하들이 한 일은 비도끄가 지명한 사람들의 손에 부지런히 수갑을 채우는 것뿐이었다.

비도끄는 범죄수사에 과학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그는 범죄현장의 모든 증거품을 현미경으로 면밀히 조사했다. 또 지문이 범인을 확실하게 밝혀내는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필적분석결과도 중요한 증거자료로 채택했다.

그는 늘 “범죄에서 독창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첫 수법이 성공하면 반드시 되풀이하기 때문에 범죄패턴을 잘 정리하면 범인을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를 위해 그는 범인의 진짜 이름, 가짜 이름, 범죄의 유형과 습성, 교우관계와 같이 범죄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만들었다. 현재 경찰서에 비치돼 있는 범죄전력 카드의 원조격인 셈이다. 비도끄가 이끈 쉬르테는 훗날 영국의 경시청과 미국 연방수사국에서 모범적인 모델로 삼았다.

비도끄의 일생이 워낙 파란만장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최초의 추리소설로 알려진 애드거 앨런 포우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사건’에 나오는 오귀스트 뒤팡 탐정,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곧잘 등장시키는 에르쿨르 포아로 탐정이 바로 그를 모델로 만든 인물들이다.

한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터무니없이 억울한 취급을 받는 죄수 장 발장, 그리고 그를 추적하는 자베르 경위 두명 모두 탈옥수 시절의 비도끄와 탐정으로서의 비도끄를 모델로 삼았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억울한 죄목을 뒤집어 쓰고 무고하게 투옥됐다가 복수의 집념을 행동으로 옮긴 주인공 얘기 역시 비도끄의 기구한 삶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비도끄는 1834년 사설탐정소 ‘정보 사무소’를 차렸다. 그러자 그의 명성 탓에 단골이 금방 3천여명에 이르렀다.

비도끄는 한편으로 낭만을 잃지 않은 인물이었다. 82세에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젊은 아가씨들과 어울리는 일을 즐겼다. 그는 구수한 능변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만나는 모든 아가씨에게 “그대만이 내 생애의 연인”이라며 유산을 남겨준다고 속였다. 비도끄의 사후 유산을 자기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비도끄의 유서를 들고 온 젊은 여자가 11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산은 비도끄의 유언대로 가정부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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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자료출처

    이윤기 번역문학가
  • 자료출처

    강효흔 대표
  • 자료출처

    박광규 추리문학가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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