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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6개국 공동연구팀이 처음으로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자세하게 읽어낸 ‘인간게놈지도’를 발표했다. 이 지도를 통해 전체 게놈의 99%에 해당하는 32억 쌍의 염기서열이 해독됐다.

염기서열을 밝히는 것과 분석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염기서열이 밝혀졌다고 우리가 인간의 게놈에 대해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염기서열을 밝히는 것과 유전자를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네개의 알파벳(A,T,G,C)으로 이뤄진 코드가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지를 밝혀야 비로소 활용가치가 생긴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밝힌 질병 유전자는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아이작 코헤인 교수는 “표현형(형질)을 알지 못하면 게놈은 별로 소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벌거벗은 유전자’ 中).

어떤 유전자가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지, 또 어떤 유전자가 머리 색과 눈 색깔을 결정하는지 등 유전자와 형질을 연결 짓기 위해서는 DNA 염기서열과 그 DNA를 가진 개인의 형질 특성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 더구나 게놈은 개인 별로 조금씩 다르다. 이런 변이를 고려해 형질을 파악하려면 여러 개의 ‘DNA-개인 형질’의 정보 쌍이 있어야 한다.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최소 10만 개의 쌍은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듀크대 게놈과학 및 정책연구소 미샤 앵그리스트 교수 역시 ‘벌거벗은 유전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필요성을 느낀 과학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DNA를 공개해 데이터 ‘규모’를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
다. 지난해 인공 생명체를 합성해 화제가 된 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자신의 전체 염기 서열을 2007년에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DNA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그 해 9월 ‘플로스원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크레이그 박사는 논문에서 “이 논문은 미래에 개인의 게놈 비교 연구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며, 개인 맞춤 게놈 정보 시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 박사 역시 미국 국가생명공학정보센터(NCBI)가 운영하는 공공 DNA 데이터베이스 ‘젠뱅크’에 2008년 자신의 DNA를 기부했다. 분석 결과는 같은 해 ‘네이처’에 실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성진 차병원 의과학종합연구원장이 2008년 12월 처음으로 자신의 전체 유전자를 NCBI에 등록했다.

유전자 정보로 개인 식별 가능해… 관련 법안 필요
자신의 유전자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DNA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생물학적 정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나 주소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지우고 DNA만 공개한다 하더라도 금세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실제 미국 하버드대 라타냐 스위니 교수는 2013년 익명으로 DNA를 기부한 이들의 정보를,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생일, 성별 등을 포함하는 선거자 목록과 대조시켜 개인을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579명 중 241명의 신원을 밝힐 수 있었고, 정확도는 84%에 달했다(James 대신에 Jim과 같은 약칭을 사용한 경우까지 합치면 정확도는 97%다).

개인의 DNA 공개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보험에 들거나 일자리를 구할때 큰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 미국 철도회사 ‘벌링톤노던 산타페’가 손목이 아프고 손이 무감각해지는 손목터널증후군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 직원들의 혈액을 채취해 DNA 검사를 한 사례도 있었다. 철도 운전의 안전성을 위해서라지만, 차별 요소가 많은 행위였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건강보험을 사보험으로 운영하는 미국은 이 문제에 더욱 민감하다. 미국은 2008년 5월부터 ‘유전자 정보 차별금지법(GINA)’을 시행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건강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높일 수 없고, 고용주들은 근로자의 유전자 정보를 고용이나 해고, 인사, 승진 등에 반영할 수 없다. 신동일 한경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유전자 정보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이 시급하다”며 “과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놈 해독 10만 원 시대… 앱으로 질병 예측할까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여러 과학자들이 DNA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규모가 커진 DNA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게놈을 상세히 이용하고, 이를 통해 개인 맞춤 의학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서정선 소장은 “현재의 의학은 경험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래는 정보 의학, 정밀 의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자신의 유전자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질병에 걸릴 확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천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미리 알고있으면, 직업이나 거주지를 선택할 때 이런 정보를 활용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 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지금은 모든 정보가 의사에게 치우쳐있어 환자는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이었다”며 “정보 의학 시대가 오면 환자와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의학의 민주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런 정보 의학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아래와 같은 유전자 진단서를 받아볼 수 있다.
이런 진단서를 언제 어디서나 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제안한 기업도 있다. 미국의 유전체해독장비업체인 일루미나는 유전정보 분석업체인 헬릭스를 설립하고,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 볼 수 있는 ‘DNA 앱 스토어’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만 해도 자신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 달러(약 1억1800만 원)에 달했지만, 일루미나는 자신만의 해독 기술로 2014년 기존의 1%에 해당하는 1000달러(약 118만 원)까지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0일,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일루미나의 최고경영자 프란시스 데소우자는 한 사람의 DNA를 한 시간 안에 해독하는 기계를 소개하며 “이제 100달러(약 12만 원)에 유전체를 해독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헬릭스가 계획한 DNA 앱 스토어를 이용하면 20달러(약 2만3000원)에 자신이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에 관여하는 ‘속도 유전자(ACTN3)’에 대해 알고 싶다면 침샘플을 헬릭스에 보낸다. 결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단은 속도 유전자와 같이 재미 위주의 유전자를 중심으로 운영할 계획이지만,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질병에 관한 정보까지도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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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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