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의 일종인 광자에 정보를 담아 기존 광케이블통신망을 통해 전송하는 ‘양자암호통신’ 기술 개발 경쟁이 세계적으로 뜨겁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양자의 정보를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옮기는 실험들이 속속 성공하고 있다. 빠르게 도래하고 있는 양자통신기술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양자기술은 아직도 막연한 먼 미래의 기술일까. 지금의 슈퍼컴퓨터보다 최소 1000배는 빠를 것이라는 양자컴퓨터, 어떤 방법으로도 풀 수 없는 양자암호를 이용한 정보통신기술이 대표적인 양자기술로 꼽히고 있다. 이 두 가지 중 현재 좀 더 빨리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양자암호통신 기술이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역학만의 세 가지 독특한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 첫째는 양자 안에서 둘 이상의 상태가 공존하는 ‘양자중첩’ 현상이고, 둘째는 양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다. 여기에 둘 이상의 양자가 서로 특성을 공유하는 ‘양자얽힘’ 현상까지 더해진다. 이를 통한 양자암호통신은 도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완전한 방패 기술로, 나아가 일정 거리 내에서 정보를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양자 텔레포테이션’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널리 쓰였던 암호는 1977년 로널드 라베스트, 아디 샤미르, 레오나르드 아델만 등 세 사람이 만든 RSA 공개키 암호(이하 RSA 암호)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릿수가 큰 수의 소인수 조합을 찾아 입력해야 들어올 수 있도록 문에 비밀키를 달아둔 것과 같다. 강력한 암호지만, 만약 이 조합을 찾아내는 컴퓨터가 있다면 뚫을 수 있다.
이런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래컴퓨터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RSA 암호 방식은 시시각각 발전하며 추격해 오는 양자컴퓨터에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안의 절대 본좌, 양자암호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양자암호도 소용없는게 아닐까’라는 걱정은 양자암호에 대해 들어보면 금세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양자의 일종인 광자를 예로 들어보자. 빛 입자는 편광이라는 양자적 특성을 갖는다. 편광에는 ‘수직(90°, ↑)’과 ‘수평(0°, →)’ 혹은 ‘대각선(45°, ↗)’과 ‘반대각선(135°, ↖)’ 식으로 90°도씩 회전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양자에 정보를 입힐 때 편의상 ‘수직-수평’ 편광판을 통과시켜 정보를 새긴 것을 ‘ㄱ’ 방식, 대각선-반대각선 편광판으로 한 것을 ㅅ‘ ’ 방식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수평(0°)과 반대각선(135°) 편광판을 통과한 빛을 각각 ‘0’에 대응시키고, 수직(90°)과 대각선(45°) 편광판을 지나온 빛을 ‘1’이라 한다면, ‘0’ 또는 ‘1’ 중 어떤 정보값을 갖는지, 또 ‘ㄱ’ 또는 ‘ㅅ’ 중 어느 방식으로 통과시켰는지 모두 알아야만 양자정보값을 확정할 수 있다(자세한 설명은 과학동아 5월호 ‘위조할 수 없고 빼돌릴 수도 없는 양자지폐’ 참조).
곽 랩장은 “(양자정보의 이런 특성 때문에) 단일광자의 정보를 도청자가 확인하려고 시도하면 25%의 확률로 운 좋게 맞출 수는 있다”며 “하지만 정보를 나눠 담은 광자가 무수히 많다면 도청자는 절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양자암호는 다르다. 양자암호키 생성자가 어떤 방식으로 광자에 정보를 넣었는지 모른 채로 양자암호를 측정하면, 양자 중첩 현상때문에 원래 정보와 다른 값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정보값 ‘0’을 ‘ㄱ’방식으로 보냈는데, 이것을 ㅅ‘ ’ 방식으로 확인하면 양자중첩에 의해 50% 확률로 0 또는 1의 값이 결정된다. 즉, 검출된 양자의 정보값을 확인해보면 도청 여부를 알 수 있다. 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 암호이기 때문에 아무리 빠른 양자 컴퓨터가 나온다 해도 안전하다.
양자 단일키 전송방식, 그리고 트러스트 노드
현재는 양자컴퓨터가 개발되지 않아 양자정보를 하나씩 처리할 수 있다. ‘단일광자 양자암호통신기술’이다. 단일광자 통신기술의 구조를 보자(61쪽). 우선 레이저의 빛을 감쇄기를 이용해 단일광자 형태로 변환시킨 뒤, 빔스플리터로 광자를 두 개로 나눈다. 두 개의 길 위에 완전히 랜덤하게 돌아가는 편광판과 함께 위상을 90°로 바꿀지 또는 180° 바꿀지 결정하는 순수난수생성기, 그리고 실제로 순수난수생성기의 지시대로 위상을 바꿔주는 간섭계를 설치한다. 그러면 광자를 원하는 위치에서 검출할 수 있다. 광자는 입자지만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에 하나의 광자가 두 개의 길로 동시에 이동할 수 있고, 편광판을 통과한 광자 중 위상이 같아 보강간섭이 일어나는 곳에서만 광자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광자에 입력한 정보와 입력방식을 모두 아는 검출기가 양자암호값을 비교해 확인하면 양자채널을 통한 단일광자 통신기술이 완성된다.
곽 랩장은 “중간에 도청 시도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광자 중 특정 순서의 광자들을 도청 확인용으로 지정해 사용한다”며 “사용한 광자(양자암호키)는 버리고 나머지 양자암호키를 이용해 데이터를 암·복호화 한 뒤 광통신망을 통해 전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주고받는 것은 디지털화한 정보인데 이 정보는 양자암호 채널을 통해 도청이 없음을 확인한 안전한 키를 사용해 전송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7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SKT는 광통신 네트워크 기술을 가진 핀란드의 노키아와 공동개발한 단일광자 양자암호통신기술을 시연했다.
단일광자를 이용한 유선양자암호통신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와 일본의 통신그룹 NTT가 105km의 거리에서 전송실험에 성공했으며, 최근 유럽에서는 143km 떨어진 곳에서 무선방식으로 양자암호키를 전송하는 기록을 세웠다.
최대 100km 수준이면 아직 현재의 연결망을 대체하기에 역부족이지 않을까. 곽 랩장은 “SKT에서도 유선상으로 113km 떨어진 거리 전송에 성공했는데 광케이블 연결망이 잘 돼 있어 약 60km의 간격으로 트러스트 노드(Trust node)을 두면 한국 내에서 양자통신을 하는 데 문제없다”고 말했다.
트러스트 노드는 중간지점에 수신부와 송신부를 같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거점에서 생성된 암호키를 가지고 있다가, 트러스트 노드에서 한번 더 먼 지점으로 쏘는 형식으로 양자통신거리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2016년 양자통신위성을 쏘아 올린 것에 대해 곽 랩장은 “중국처럼 땅이 넓어 광통신망이 없는 지역에서 쓰거나 미래에 전 지구적인 양자통신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양자통신위성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올해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25년 양자기술과 관련한 시장이 2000조 원이며,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750조에 이를 것으로 언급했다. 김재완 교수는 “디지털망이 언제 양자통신망으로 바뀔지 모른다”며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이때 한국도 기술 선점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더 읽을거리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위조할 수 없고 빼돌릴 수도 없는 양자지폐(2017.5)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705N025
사람의 순간이동은 정말 가능할까(2006.9)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609N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