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나선형이나 타원형 은하가 많다. 하지만 특이은하라 불릴 정도로 막 생긴 은하도 있다. 이런 은하 대부분은 은하들이 충돌한 결과라고 한다. 대등한 회사가 합병하듯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작은 것이 큰 것에 먹히기도 하는 은하 충돌의 세계로 떠나자.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많은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정돈돼 있고 품행이 단정하며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이자 수십억개의 별들이 모인 은하들 하나하나가 고립된 섬처럼 조용히 지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충돌하는 은하들 몇몇은 단지 정상적인 길을 벗어난 별스런 존재로 치부됐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역전됐다. 우주는 그리 평화스런 곳이 아니라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곳임이 드러났다. 야생동물들 사이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듯이 은하들 사이에도 단순한 충돌이나 합병뿐만 아니라 먹고 먹히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은하들은 왜 충돌할까. 은하들이 충돌하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은하들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주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인 은하 충돌의 전모를 폭로한다.
교통사고보다 더 흔한 사건
빛으로 열심히 달려도 1백억년이 넘게 걸리는 광대한 우주에서 은하들이 충돌한다니 얼른 생각하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의 예상과 달리 지금 이 순간에조차 어떤 은하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충돌중이다. 왜 그럴까.
인적이 드문 공터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옆사람과 부딪칠 확률이 큰 이유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공터보다 시장에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만일 똑같은 공터에 사람 대신 거대한 공룡이 같은 수만큼 있다면 어떨까. 이번엔 사정이 달라져 거대한 공룡 몇 마리는 비좁은 공터에서 이리저리 부대낄 것이다. 은하들이 충돌하는 이유를 따져보려면, 은하와 은하 사이의 거리를 은하 자체의 크기와 비교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은하들은 평균적으로 은하 자체 크기의 10-1백배 정도 떨어져 있다. 비유하자면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사람 몸 크기의 10-1백배 떨어져 있는 사람들 무리가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틀림없이 수많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홀로 존재하기보다 무리를 이루는 은하들의 경우에도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우리은하의 주변상황은 어떨까. 우리은하는 지름 6백만광년 정도의 범위에 안드로메다은하를 비롯한 30여개의 크고 작은 은하들과 함께 국부은하군이라는 집단을 이룬다. 우리은하의 크기는 10만광년 정도이며, 국부은하군에 속하는 불규칙은하들인 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까지의 거리는 각각 16만광년과 30만광년으로 아주 가깝고, 우리은하보다 큰 나선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는 2백20만광년이다. 우리은하에 이웃하는 대형 은하까지의 거리가 불과 우리은하 크기의 22배일 뿐이라니!
은하들은 우리은하가 속한 국부은하군보다 더 큰 규모로 무리짓기도 한다. 은하단이라 불리는 이 집단 중에는 은하 사이의 거리가 국부은하군에서보다 더 가까운 종류도 있다. 예를 들어 미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했던 MS1054-03이라는 은하단을 보자. 이 은하단에서 81개의 은하를 선택해 자세히 연구했더니 13개가 충돌중인 은하이거나 최근 충돌한 은하의 잔해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교통사고 건수가 자동차 1천3백대 당 26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주에서 은하가 충돌하는 일은 교통사고보다 더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인 셈이다.
꼬리나 다리가 생기는 이유
충돌하는 은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보통 은하들은 타원형이나 나선형으로 대칭적인 모습을 하지만, 충돌하는 은하는 언뜻 보면 그 모습이 일정하지 않고 괴상하다. 그래서 제대로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는 ‘특이은하’라고 불렸다. 충돌하는 은하가 특이은하라고는 하지만, 교통사고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찌그러지거나 널브러진 모습은 아니다. 충돌하는 은하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1850년 최초로 발견된 나선은하 M51을 보자.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천체는 ‘부자(父子)은하’라는 별명처럼 큰 은하와 작은 은하가 다리로 이어져 상호작용하고 있다. 또 1917년에 발견된 ‘더듬이은하’는 충돌하는 은하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두 은하가 이제 막 충돌한 듯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곤충의 더듬이처럼 생긴 필라멘트 두개가 각각의 은하에서 하나씩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별명도 ‘더듬이은하’다.
1950년대 스위스계 미국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충돌하는 은하들을 처음 체계적으로 촬영했을 때나, 1966년 천문학자 할톤 아프가 충돌하는 은하 3백38개를 모아 ‘특이은하 목록’을 만들었을 때도 충돌하는 은하의 특징이 드러났다. 이들 은하에서 가냘픈 꼬리(필라멘트)나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충돌하는 은하에서 필라멘트나 다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기조력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기조력은 지구에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힘이다. 밀물이 일어나는 원인은 지구에서 달에 더 가까운 쪽에 미치는 달의 인력(중력)이 더 먼 쪽에 미치는 인력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에 더 가까운 바닷물이 달 쪽으로 당겨져 부풀어오른다.
기조력은 인력(중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두 은하가 가까워지는 경우에도 서로에게 기조력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각각의 은하는 가까운 쪽이 먼 쪽보다 훨씬 더 큰 힘으로 잡아 당겨지므로 길이는 늘어나고 모양은 뒤틀린다. 이 과정에서 필라멘트나 다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은하의 모습을 특이하게 만드는 원인이 기조력이라면, 두 은하가 반드시 정면으로 충돌할 필요는 없다.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스쳐지나가더라도 두 은하가 상호작용할 수 있고 상당한 뒤틀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은하가 충돌하는 경우 만들어지는 특징에는 꼬리(필라멘트)나 다리, 또는 뒤틀림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은하의 극 방향으로 형성된 고리,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은하핵과 원반, 양파 껍질처럼 나타나는 겹구조, 은하 주위에 파문처럼 보이는 무늬, 은하 중심에 있는 상자형 핵 팽대부(벌지) 등이 은하 충돌의 증거로 인정되고 있다.
중심핵이 여럿인 거대 은하
은하가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많은 과학자들은 은하가 충돌하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왔다. 1940년대 스웨덴의 천문학자 에릭 홀름버그가 2백여개의 전구를 이용한 아날로그 컴퓨터로 은하 충돌을 시뮬레이션했다. 원시적인 시뮬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홀름버그는 은하들이 서로 충돌하며 뒤틀리고 속도가 느려져 결국 합쳐질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1960년대 후반 컴퓨터가 더 빠르고 강력해지자 천문학자들은 은하 충돌을 좀더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잘된 시뮬레이션 연구는 알라와 유리 투므어 형제가 1972년에 쓴 논문이었다. 이들은 충돌하는 은하의 일반적인 모습을 시뮬레이션하는 대신에 M51, 더듬이은하 등 잘 알려진 실제 충돌 은하 네쌍을 시뮬레이션했다.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가 관측된 증거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할 목적이었다. 놀랍게도 결과는 은하 충돌이 강한 기조력을 발생시켜 충돌하는 은하에서 관측되는 다리나 꼬리와 비슷한 특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더듬이은하를 재현한 시뮬레이션은 극적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 관측을 재현하려고 수백번에 걸친 많은 시도를 했다.
두 은하가 충돌하는 과정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이때 과연 은하에 속한 별들은 어떻게 될까. 언뜻 생각하면 별들끼리 충돌이 일어날 것도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에 비해 별 자체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우리 태양을 예로 들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별까지의 거리가 태양 크기의 2천7백만배나 된다. 충돌은 커녕 서로 그리워하기에도 애처로울 만큼 먼 거리다. 은하가 충돌할 때는 마치 칠흑 같은 밤에 배들이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듯 은하에 속한 별들은 때로 비교적 가까이 통과할지 모른다. 물론 은하가 충돌하는 동안 개개의 별들은 충돌하지 않지만, 상대방 은하의 기조력 때문에 자신들의 본래 궤도에서 벗어날 것이다. 별들의 궤도가 바뀌면 속도가 변화하고, 별들이 계속 움직이면 은하 전체의 모양이 변할 것이다. 그래서 별들이 다리나 꼬리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은하의 기조력에 의해 별들이 가장 많이 교란받을 때는 은하들이 비교적 느린 속도로 가까워질 때다. 특히 크기가 비슷한 두 은하가 느리게 충돌한다면 충돌하는 은하는 합쳐져 하나의 은하를 형성한다. 이 과정은 ‘합병’(merger)이라 불린다. 마치 비슷한 규모의 두 회사가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회사를 이루는 일과 비슷하다. 미국 조쉬 반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두 은하가 충돌을 일으켜 완전히 하나의 은하로 합병되는데 20억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은하는 단번에 하나의 은하가 되지 않고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하나가 된다.
반면에 커다란 은하가 작은 은하를 끌어들여 흡수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은 ‘잡아먹기’(cannibalism)라고 한다. 많은 은하들로 구성된 은하단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거대 타원은하가 이렇게 형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거대 타원은하는 때로 둘 이상의 중심핵을 가지며 보통 은하에 비해 대단히 밝다. 이런 특징은 거대 타원은하가 은하단 내에 있던 작은 은하들 여럿을 집어 삼키며 몸집을 키운 ‘괴물’ 은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은하 충돌 삐딱하게 보기
은하들이 무리 지어 형성된 은하단이나 은하군에서 은하들은 인력(중력)에 의해 서로 묶여 있다. 은하들의 무리가 더 밀집된 경우 은하들은 서로에게 기조력을 작용하거나 심지어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밀집된 은하군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테팡의 5중주’다. 1877년 프랑스 천문학자 에두아르 스테팡이 페가수스자리에서 발견한 이 은하군에는 상호작용하거나 충돌하는 듯한 5개의 은하가 보인다.
스테팡의 5중주에는 또다른 논란이 숨어있다. 문제는 1961년 제프리 버브리지와 마거릿 버브리지가 5개 은하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후 도플러효과에 의해 지구에서 멀어지는 후퇴속도(스펙트럼에서 나타난 적색이동을 환산한 양)를 알아봤을 때 나타났다. 하나의 밀집된 군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5개 은하 가운데 4개는 후퇴속도가 초속 6천km 정도로 비슷했지만, 유독 NGC7320이라는 은하 하나만 초속 8백km를 보였기 때문이다. 은하의 후퇴속도(적색이동)가 클수록 거리가 멀다는 허블의 법칙에 따르면, 은하의 후퇴속도로부터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거리가 같아야 할 것처럼 보이는 5개 은하의 후퇴속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후퇴속도(적색이동)가 거리와 상관없다는 말일까.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반증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지구에서 3천5백만광년 떨어진 NGC7320만이 거리가 2억7천만광년으로 더 먼 은하군 앞에 우연히 놓인 은하라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가까운 NGC7320에 속한 별들이 또렷이 식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색이동이 거리와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천문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특이은하 목록’을 만들었던 할톤 아프다. 아프는 적색이동이 작은 은하와 적색이동이 큰 퀘이사가 연결된 듯한 영상을 여럿 모았다. 특히 밝은 다리로 연결된 듯한 나선은하 NGC4319와 퀘이사 마카리안205의 영상은 아직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후퇴속도가 초속 1천8백80km인 나선은하에서 후퇴속도가 초속 2만1천km인 퀘이사가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광경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단순히 수억광년 떨어져 있는 퀘이사가 우연히 나선은하 뒤에 겹쳐 보이는 모습일까. 아프는 퀘이사가 나선은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