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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새롭게 주목 받는 ‘환경 곤충’,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


사람들은 매년 1조 개의 폴리에틸렌(PE) 비닐봉지를 사용한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인 아이에이치에스마킷은 올해 전세계 PE 사용량을 9200만t으로 추산했다. PE 비닐봉지는 자외선이나 열에 의해 조금씩 분해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해되기 위해서는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 그런데 최근 애벌레가 PE 비닐봉지를 갉아먹고 이를 분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애벌레는 플라스틱을 먹고도 건강(?)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비닐봉지 먹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 연구팀이 ‘꿀벌부채명나방(Galleria mellonella)’ 애벌레가 PE 비닐봉지를 먹고 분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4월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doi:10.1016/j.cub.2017.02.060).

애벌레가 PE 비닐봉지를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과정이 흥미롭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 칸타브리아 생물의학 및 생명공학연구소의 페데리카 베르토치니 박사는 취미로 꿀벌을 키우는 양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벌집을 망가뜨리고 있는 기생충을 잡아 비닐봉지 안에 넣어두었는데, 이튿날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벌집의 밀랍을 먹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비닐봉지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이를 눈여겨 본 그는 본격적으로 실험에 나섰다. 애벌레 100마리를 PE 비닐봉지에 담아두고 관찰을 시작했다. PE 비닐봉지는 40분 만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12시간 뒤에 무게가 92mg 줄어들었다. 92mg이 아주 적은 것 같지만 그간 밝혀진 플라스틱 생분해 속도에 비하면 획기적인 수준이다.

PE 비닐봉지를 갉아먹고 있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플라스틱 분해 방법 중 가장 빨라
2016년 3월 ‘사이언스’에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빠르게 분해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일본 교토대 고분자연구소 요시다 쇼스케 박사팀이 PET를 분해하는 박테리아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Ideonella sakaiensis)’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박테리아가 이제껏 알려진 다른 플라스틱 분해 박테리아에 비해 아주 빠르게 PET를 분해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또 박테리아에서 PET를 분해하는 효소를 분리해 페테이스(PETase)와 메테이스(MHETase)로 이름 붙였다. 이들이 발견한 효소를 PET 필름에 바르자 하루에 1cm2당 0.13mg을 분해했다(doi:10.1126/science.aad6359).

그런데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를 갈아 만든 즙(애벌레에게는 미안하지만 애벌레가 단순하게 PE 비닐봉지를 씹어서 잘게 쪼개는 게 아니라 분해한다는 걸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다)은 같은 조건에서 PE 필름을 5.52mg이나 분해했다.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보다 4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플라스틱 생분해 방법 중 속도가 가장 빠르다.


PE를 먹고 분해할 수 있는 이유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는 어떻게 PE 비닐봉지를 먹고 분해할 수 있을까. 힌트는 애벌레가 평소 먹이로 먹는 꿀벌 집의 재료가 밀랍이라는 데 있다. 밀랍 역시 고분자 중합체(분자가 긴 사슬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로, PE와 화학구조가 비슷하다. 연구팀은 PE를 먹은 애벌레를 으깨 분광기(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법, FTIR)로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PE의 구성성분인 에틸렌글리콜이 다량 검출됐다. 애벌레가 PE를 에틸렌글리콜로 분해한 것이다.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렌글리콜은 부동액에 주로 사용하는 물질로,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쉽게 분해된다. 연구팀은 PE를 분해하는 효소가 애벌레의 침샘이나 장내 공생세균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효소를 찾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플라스틱 먹는 ‘환경 곤충’들
이전에도 플라스틱을 먹는 애벌레가 발견된 적이 있다. ‘화랑곡나방(Plodia interpunctella)’ 애벌레와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 애벌레다. 화랑곡나방은 꿀벌부채명나방과 같은 명나방과로 애벌레가 비닐로 포장된 제품의 겉면을 갉아먹고 내부로 들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곡류를 먹고 자라는 화랑곡나방 애벌레와 성충은 쌀벌레로 불리기도 하며, 우리나라 가정집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갈색거저리는 밀웜이라고도 한다. 반려동물의 먹이나 차세대 곤충 식량의 재료로 유명하다.

2014년 11월 ‘환경과학기술’에는 PE 필름을 먹는 화랑곡나방 애벌레에 대한 연구가 소개됐다. 중국 북경 항공항천대 화학환경과 준 양 교수팀은 화랑곡나방의 소화기관에서 두 종류의 박테리아를 분리했다. 이 박테리아 배양액은 60일 동안 100mg의 PE 필름 조각들을 6.1~10.7mg 분해했다(doi:10.1021/es504038a).

갈색거저리들이 스티로폼을 갉아먹고 구멍을 숭숭 뚫어놨다.

양 교수팀은 갈색거저리 애벌레가 스티로폼을 만드는 폴리스티렌(PS)을 먹고 분해한다는 연구결과도 2015년 9월 ‘환경과학기술’에 공개했다. 갈색거저리 애벌레의 장에서 분리한 박테리아 배양액은 60일 동안 100mg의 PS 조각을 7.4mg 분해했다(doi:10.1021/acs.est.5b02663).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다양한 곤충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애벌레들이 플라스틱을 먹어 없앨 수 있으니,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애벌레들을 대량으로 사육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애벌레로부터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나 효소를 찾아내고, 이를 대량 생산 한다면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갈색거저리 애벌레 소화기관 속 박테리아의 모습. 박테리아를 대량 배양하면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에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2016년 5월 23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2차 UN 환경총회에서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800만t 이상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버려지고 있다. 자연분해 플라스틱이 실제로는 자연분해되기 어렵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자연분해 플라스틱의 대부분이 50℃ 이상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인위적인 폐기처리 과정이 아닌, 자연적인 조건에서는 분해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또 자연분해 플라스틱이라는 용어 때문에 사람들이 환경에 덜 유해하다고 인식해 쉽게 버리고, 이는 오히려 해양 오염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도 지적했다.

자연적으로 쉽게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의 개발과 함께 이미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만 한다. 애벌레들이 해결사가 돼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더 읽을거리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내 옷이 만든 재앙 해양 미세섬유의 습격’(2017.5)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705N037
‘플라스틱 공화국의 재활용 비법’(2008.3)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803N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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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현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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