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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 대량 살포된 고엽제

맹독성 물질 다이옥신 함유


1960년대 베트남에서 고엽제가 뿌려지는 모습.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 사용돼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고엽제가 한국에서도 대량 살포됐다는 점이 밝혀졌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지난 1968년 미국 화생방사령부에 보낸 비밀문서 ``‘고엽제 살포작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 일대에 고엽제가 집중적으로 살포됐다. 살포 면적은 2천2백만평에 달한다.

비무장지대에 고엽제를 살포한 이유는 북한군이나 간첩이 이곳을 뚫고 남파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8년의 1.21 사태(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비무장지대를 거쳐 서울까지 침투한 사건) 이후 남북의 긴장상태는 더욱 팽팽해졌고, 휴전선을 지키는 국군과 주한미군의 신경은 한층 날카로와졌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온통 숲으로 우거져 있어 침투자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많은 군인들이 매일 풀베기에 나섰지만 무리였다.

‘식물통제계획 1968’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바로 ``‘식물통제계획 1968’이라 불린 작전. 고엽제를 대량으로 살포해 아예 식물을 없애자는 내용이었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한 이 작전은 68년부터 몇년간 진행됐으며, 매년 수만명의 인원이 동원됐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참여한 군인들이 선천성 기형아를 낳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등 각종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시 작전에 동원됐던 군인들은 일반 제초제를 뿌리는 정도로 알고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한다. 고엽제가 무엇이길래 인체에 이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고엽제(枯葉劑)란 말 그대로 식물을 말려죽이는 약이다. 베트남전에서 대량으로 살포된 이후 건강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요주의’ 판정을 받은 맹독성 물질이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군은 울창한 밀림 속에서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잠적하는 베트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미군은 밀림 자체를 황폐화시켜 베트공의 은신처와 이동 경로를 파악하려는 작전을 펼쳤다. 여기에 사용된 것이 바로 고엽제였다.

당시 사용된 고엽제의 종류는 오렌지제, 블루제, 그리고 화이트제 3가지였다. 이들을 담은 드럼통에 두른 띠의 색깔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2차대전 기간에 미국이 ‘작물 파괴용’으로 개발한 화학약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오렌지제와 화이트제는 식물 호르몬의 작용을 흉내내 정상적인 대사과정을 교란시켜 식물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에 비해 블루제는 건조제가 함유돼 있어 식물을 말려죽인다. 이번에 비무장지대에 살포됐다고 알려진 고엽제에는 오렌지제와 블루제가 포함돼 있다.

고엽제 가운데 특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것은 오렌지제. 1g으로 2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불순물로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과학동아 99년 7월호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독성물질 다이옥신’ 참조). 또 다이옥신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자연에 방출됐을 때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성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에 뿌려진 오렌지제 가운데 다이옥신의 양은 무려 1백70kg 정도인 것으로 예측됐다.

미군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10여년 간 총 9천1백만kg의 고엽제를 살포했다(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살포량은 약 5만9천갤런으로 베트남전 경우의 0.3%에 해당한다). 그 여파는 어땠을까. 1983년 1월 고엽제의 공략이 가장 심했던 호치민(당시 사이공)에서 열린 ‘전쟁에서 고엽제가 인간과 자연에 미친 장기적 영향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고엽제의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고엽제로 인해 내륙의 밀림과 광대한 농토, 그리고 해안 생태계는 오랫동안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이들이 원래대로 되살아나려면 최소한 1백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의 경우 당시 고엽제를 뿌리는데 참여했던 한 국군의 증언에 따르면 살포 지역이 6-7년간 황무지로 변해있었다고 한다.


베트남전 이후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많다.


자손에게 피해 전해질 가능성

하지만 ‘군사작전’의 관점에서 볼 때 생태계의 파괴는 불가피 했을 수 있다. 몸을 가릴만한 식물은 모두 없앤다는 것이 작전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고엽제가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위의 심포지엄에 따르면 고엽제에 노출된 인간에게 즉각적으로 현기증, 두통, 구토, 호흡곤란이 일어났으며, 기형아 출산, 유산, 간암과 간염 등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다.

1971년 미국 닉슨행정부는 고엽제 살포를 중지한다고 선포했다. 다이옥신의 위험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다이옥신이 포함된 제초제가 농가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시민단체들은 이 제초제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일단 인체에 침입한 고엽제는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수많은 베트남인,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의 참전군인은 아직도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고엽제의 피해가 2세까지 대물림된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인제대 의대의 한 연구팀은 설문조사를 통해 부산과 경남지역의 고엽제 피해자 71명의 자녀 1백82명 중 90명이 각종 질병과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색소성 피부증을 앓는 사람이 38명, 피부 발진 23명, 선천성 기형 15명, 전신 허약 12명 등이었다.

국내의 고엽제 피해자는 모두 1만7천2백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상대로 1인당 3억원씩 모두 5조1천6백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제 피해자 수와 손해배상 액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고엽제 살포에 참여한 ‘숨은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또 어떤 고통을 받고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이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자 당시 고엽제 살포에 참여한 사람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비무장지대가 ‘한국 생태계의 보고’라는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오랫 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30년 전에 뿌려진 고엽제가 먹이사슬을 통해 동식물에 축적됐을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어디에 고엽제가 뿌려졌는지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가 없고, 비무장지대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생태계가 어느 정도로 오염됐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비록 베트남전에 뿌려진 양의 0.3% 정도가 살포됐다지만, 이로부터 동식물과 인간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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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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