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2. 내 안에 펼쳐진 나만의 우주



가장 놀라운 것은 유전물질이다. 유전물질인 염색체는 DNA가 실타래처럼 마구 엉켜 있는 모습으로, 프랙탈 구조다. DNA는 모든 세포에 들어 있다. 사람 세포 하나의 크기는 0.01~0.2mm로 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다. 그런데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DNA는 총 길이가 2m나 된다. 심지어 이 안에는 배열에 따라 유전정보를 나타내는 염기쌍이 약 30억 쌍, 유전자도 수 만 개나 들어 있다. 알파벳 네 개로 표현하는 염기서열이 생김새와 체질, 성격처럼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혈관 네트워크는 깨진 유리창을 닮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무자비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할 처지가 되자, 계약한 대로 심장 부근의 살점을 떼어가겠다고 말한다. 평소 밉상이었던 그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피는 계약서에 적지 않았으니 단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베어가라’는 지혜로운 판결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이렇게 단 한군데도 예외 없이 온몸 곳곳에 혈관이 골고루 뻗어있는 비결은 바로 프랙탈이다.

19세기 독일의 과학자 빌헬름 루는 혈관과 식물 줄기, 강물 세 가지는 어떤 액체를 흐르게 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혈관은 언뜻 심장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또는 하천이 흘러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온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대동맥부터 대정맥, 동맥, 정맥과 모세혈관이 몸 곳곳에 퍼져 있다. 이에 따라 머리끝부터 손끝, 발끝까지 온몸에 혈액을 보낸다.

그렇다면 프랙탈의 기준에서 이들은 얼마나 닮았을까. 빌헬름 루는 나뭇가지를 관찰해, 한 분기점에서 두 개 이상의 가지가 뻗어나갈 때 원래 줄기나 각 가지의 굵기에 따라 각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천은 조금 다르다. 물길이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옆으로 휘돌아 간다. 저항이 가장 적은 곳을 골라 가는 것이다. 나무뿌리가 자라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나무뿌리는 지하수를 빨아들이기 위해 땅속으로 잔뿌리를 낸다. 이때 단단한 돌이 가로막고 있으면 이를 피해 돌아나간다. 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변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프랙탈의 형태를 정확히 따르지 못한다.

혈관의 프랙탈 구조도 전혀 다르다. 스위스 베른대의 베리 매스터스 박사팀은 인체에서 혈관이 가장 빽빽하게 몰려 있는 망막을 관찰했다. 그리고 혈관의 프랙탈 차원을 계산했더니 약 1.7이었다. 이 값은 하천이나 나뭇가지보다는, 유리창 한가운데를 세게 내리쳤을 때 깨지면서 생기는 금과 비슷하다. 중력이나 햇빛처럼 한 방향을 따라 가지를 친 게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수많은 혈관들이 뻗어 나간 셈이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필립 볼은 저서 ‘가지’에서 혈관이 고유한 프랙탈 구조를 띠는 이유는 혈관모세포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혈관모세포가 혈관내피 성장인자라는 단백질분자를 주변으로 내뿜는데, 새로운 혈관이 여기에 형성되면서 네트워크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혈관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이미 유전적으로 설계된 대로 가지를 뻗고 있는 셈이다.
 

[포스텍 3세대방사광가속기로 찍은 건강한 쥐의 폐(93쪽)의 일부를 확대한 영상. 폐포로 이어지기 직전에 기관지(노란색)에서 세기관지(파란색, 빨간색)가 뻗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황정은 박사가 기관지 네 개의 패턴을 관찰한 결과, 기관지가 예상보다 훨씬 더 프랙탈 법칙을 잘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불규칙한 리듬에서 나타나는 프랙탈


전문가들은 심장박동과 뇌파, 걸음걸이처럼 불규칙하게 보이는 리듬에서도 일정한 규칙을 찾았다. 시간을 기준으로 리듬을 분석해 프랙탈 패턴을 찾은 것이다. 생체리듬 속 프랙탈은 주식 시장의 흐름과 비슷하다. 주식 시장이 일년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며 그리는 패턴은 한 달 동안, 또는 24시간 동안 그리는 패턴과 비슷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심장박동 리듬이나 뇌파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관찰하면 프랙탈의 특성이 나타난다. 심장이 300분 동안 뛴 리듬을 나타낸 그래프를 크게 확대하면, 30분 또는 3분 동안 뛴 리듬과 유사하다. 뇌파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리듬에서 이렇게 프랙탈이 나타나는 이유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원인이 되는 사건과 결과가 되는 사건 사이의 시간차는 사건의 종류나 규모와 관련이 있다.

최근 국내외 연구는 프랙탈을 통해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내는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랙탈을 활용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몸속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거대한 우주에 한걸음씩 들어가면서 말이다.
 

 
기관지는 완벽한 프랙탈 구조!

기관지는 어떤 프랙탈 구조를 이루고 있을까. 황정은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원은 기관지가 하천과 마찬가지로 기관지 내부에 흐르는 기체의 압력 손실이 적은 쪽으로 자랄 것이라고 가정했다.

유체역학에 따르면 기관지는 난류영역, 세기관지는 층류영역인데, 공기가 흐르면서 잃어버리는 압력 손실의 규칙이 난류냐 층류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기관지들은 공기가 흐르는 동안 잃어버리는 압력에 영향을 받아 유체역학적으로 최적의 형태를 갖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기관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황 박사는 공기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서 세기관지들은 기관지들보다 갈라지는 각도가 크고 생김새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세기관지들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기관지와 길이와 굵기만 다를 뿐 뻗은 모양은 같았다. 똑같이 생긴 기관지들이 여러 번 반복해 붙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관지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철저하게 프랙탈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황 박사는 “기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청사진에는 난류냐 층류냐 하는 구분이 없고, 기관지 모양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반복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기관지가 만들어지는 태아 시기에는 공기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세기관지에까지 유체역학적 자극이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프랙탈 규칙을 채택하면 기관지처럼 고도로 복잡한 기관을 불과 몇 개 유전자의 상호작용만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매우 큰 이득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프랙탈 의학
Part 1. 우리 몸에는 프랙탈 나무가 자란다
Part 2. 내 안에 펼쳐진 나만의 우주
Part 3. 진단부터 치료까지 프랙탈 의학

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의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