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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봇의 도전, 가장 사람다운 표정 만들기

아침에 커피 한 잔 부탁해
아침에 커피 한 잔 부탁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문자를 보낼 때에는 같은 문장이라도 이모티콘에 따라 어감이 다르다. 사이버 상에서 문자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미세한 감정을 이모티콘이 전달하는 셈이다.

가상현실이나 게임에서도 표정이 중요해졌다. 내 얼굴을 보고 가상현실 속 아바타가 표정을 따라 하기도 하고, 게임 캐릭터가 스토리와 상황에 맞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표정이 사람처럼 다양하고 자연스러울수록 가상세계도 훨씬 실감난다. 최근에는 로봇공학자들도 표정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과 친밀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와 산업로봇제조사인 리싱크 로보틱스 연구팀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두 팔 로봇인 백스터를 개발했다. 이 로봇은 다른 공장기계처럼 서류를 전달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단순한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런데 백스터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하나 있다. LCD 모니터를 통해 갖가지 표정을 지어보인다는 점이다.

모니터 속 백스터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떠 있다. 평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지만 새로운 일을 배울때는 눈썹을 기울이고, 일에 집중할 때는 눈을 가늘게 뜬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양쪽 눈썹의 방향이 달라지고, 결국 작업을 그만둬야 할 때에는 눈이 슬프게 처진다. 사람이 다가오면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업무를 마치면 눈을 감는다.
 
오늘 해야 할 작업을 준비 중인 백스터. 표정을 보면 백스터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알 수 있다. 조금 지루해 보이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일을 시작하려는 표정이다.

연구팀이 로봇에게 표정을 만든 목적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이들을 동료처럼 여기면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또 로봇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표정으로 나타내면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나는 일을 미리 막을 수 있다.

국내에도 간단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로봇이 있다.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만든 휴보는 커다란 머리에 두 팔, 두 다리를 갖고 있는 ‘사람형 로봇’이다. 휴보는 누가 봐도 로봇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체형과 기계적인 외양을 갖고 있다.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한편으론 귀엽다. 그런데 이 휴보에 사람의 얼굴을 단 적이 있다. 지난 2005년에 만든 ‘아인슈타인 휴보’는 얼굴 안쪽에 작은 모터 30여 개를 달아 기쁨과 놀람 같은 감정을 표정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휴보의 얼굴은 귀여움과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공포가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닮은 인형이나 로봇을 보고 징그러움이나 무서움을 느끼는 심리가 있다. 언뜻 익숙해보이지만 사실은 낯선 대상이 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무의식이 낳은 본능적인 감성이다. 마치공포영화에서 “내가 아직도 너희 엄마로 보이니?”라고말하는 ‘엄마 모습을 한 귀신’처럼 말이다.

사람과 닮고도 친근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거부감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970년대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 박사는 “로봇이 사람과 닮을수록 호감도는 증가하지만, 어느 수준을넘으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뀐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내놨다. 그는 “하지만 사람과 구별할수 없을 정도로 닮은 수준이 되면 다시 로봇에 대한 호감도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만큼 커진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사람과 너무 닮아 친근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람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들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 혐오감이 생긴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사람과 닮은 로봇에게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1년 7월, 미국 UC샌디에이고 인지과학 및 신경과학과의 아이세 피나르 세이진 교수팀이 불쾌한 골짜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혔다(doi:10.1093/scan/nsr025).
 
연구팀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실험참가자 20명을 모은 뒤, 일반 로봇과 휴머노이드,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화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촬영해 관찰했다. 휴머노이드는 일본 오사카대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가 만든 것으로 얼핏 보면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사람을 볼 때와 로봇을 볼때 뇌가 활성화하는 양상이 비슷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를 볼 때는 시각을 느끼는 부분과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극적으로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로봇이라는 것을 깨닫고 뇌가 혼란을 일으킨 것이라며, 휴머노이드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세이진 교수와 함께 불쾌한 골짜기를 실험으로 증명한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팀은 2005년부터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정교하게 얼굴을 흉내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2006년에 만든 ‘제미노이드 HI-1’은 이시구로 교수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그와 키, 체형이 비슷한데다 실리콘으로 살갗을 만들어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얼핏 쌍둥이 같다.
 
하게 얼굴을 흉내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2006년에 만든 ‘제미노이드 HI-1’은 이시구로 교수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그와 키, 체형이 비슷한데다 실리콘으로 살갗을 만들어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얼핏 쌍둥이 같다.

이 로봇은 원격조종으로 얼굴 근육과 입술, 눈동자를 움직인다. 이시구로 교수가 짓는 표정을 카메라로촬영해 원격으로 전기신호를 보내면, 제미노이드가 실시간으로 표정을 흉내 내는 원리다. 특히 입술은 이시구로 교수의 입술에 달아놓은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하는 대로 전기신호를 보내 움직인다.

2010년에는 훨씬 더 정교한 여성 로봇 ‘제미노이드F’가 탄생했다. 제미노이드 F는 기쁨과 슬픔, 난처함,화남 등 이전에 만든 제미노이드보다 표정이 훨씬 풍부하다. 훨씬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비결은 얼굴 근육을 흉내 낸 모터다. 제미노이드 F의 얼굴 피부 속 모터들은 복합적으로 움직여 여러 가지 표정을만든다. 최근에 개발한 제미노이드는 사람의 발음을 듣고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추정해 똑같이 움직여 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제미노이드 F는 지난해 휴머노이드로는 최초로 영화에 출연했다. 원전사고 후의 재난을 그린 영화 ‘사요나라’에서 제미노이드 F는 주인을 간호하는 로봇으로 나왔다.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대화하고, 미소를 짓거나 찡그리는 등 여러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미노이드 F는 과연 불쾌한 골짜기를 이겨냈을까. 이시구로 교수는 2013년 11월 일본 오사카의 타카시마야백화점 의류 코너에서 2주 동안 제미노이드 F가 직접 손님을 응대하도록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사람이 표정을 짓고 말을 하면 원격조종으로 제미노이드 F가 표정을 따라하고 말을했다. 손님들은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했다. 아직까지는 제미노이드가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과 로봇 동작에 대한 기술이 발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 표정 따라잡기’다. 저출산 고령화가 점점 심해질 미래에는 1인 가족이나 독거노인과 교감하고, 또 자폐증 환자를 보살피는 데 로봇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표정은 이런 교감에 필수다.

어쩌면 로봇이 요리 주문을 받거나, 뉴스를 진행하거나, 심지어 물건 가격을 흥정해서 파는 상황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로봇에게 ‘사람이 아니라는 표시’를 꼭 해야만 하는 법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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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가장 인간적인 표정을 찾아서
PART 1. 의식과 무의식이 빚은 1만 개의 언어, 표정
PART 2. 로봇의 도전, 가장 사람다운 표정 만들기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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