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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의식과 무의식이 빚은 1만 개의 언어, 표정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기 때문일까. 사람은 웃고 화내고 울고 기뻐하면서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남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을 수도 있고, 알게 모르게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수 마디 말보다 단 하나의 표정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실험참가자 230명에게 행복과 슬픔, 공포, 노함, 놀람, 역겨움 등 21가지 감정을 나타내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어떤 표정인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거의 똑같은 답변을 내놨다.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거의 같은 얼굴의 근육을 사용한다는 증거다.

하지만 아직 문명이 닿지 않은 곳에서는 표정이 뜻하는 의미가 다르다.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은 기쁨이나 공포를 느낄 때 표정이 우리와 같다. 그런데 역겨움이나 분노를 나타내는 표정은 전혀 다르다. 표정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문화적인 학습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는 근거다.



표정을 만드는 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건 얼굴근육이다. 사람 얼굴에 있는 근육은 43~80여 개다. 여기서 표정을 만드는 근육은 27~50여 개이며, 사람이 만들 수 있는 표정은 300여 개다. 감정과 표정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UC샌프란시스코 심리학과 폴 에크먼 명예교수는 사람의 표정이 1만 개가 넘으며, 이 표정을 만드는 데 주요하게 필요한 근육은 5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근육마다 형태와 기능이 달라, 복합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표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에서 표정을 만드는 부위는 주로 눈과 이마, 눈썹, 코, 입과 입술, 눈썹, 턱, 뺨이다. 각 부위마다 피부 아래에 근육들이 단위를 이뤄서 움직인다. 각각의 단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얼굴 근육 대부분은 제7번 안면신경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표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눈 주위와 입 주위의 근육이다. 표정은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후천적인 사회적 학습의 결과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나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도 웃음을 짓거나 슬픈 표정을 짓고 운다. 이런 표정은 유전적으로 뇌에 각인돼 있는 것으로, 피질하부의 신경회로를 통해 신호가 전달되면서 근육이 무의식적이고 불수의적으로 움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민망할 때 짓는 표정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학습하면서 배우는 표정이다. 즉 뇌의 피질경로로 전해진 신호에 따라 근육이 수의적으로 움직인 결과다. 결국 사람의 표정이란 무의식적이면서도 의식적이고, 수의적이면서도불수의적인 운동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doi.org/10.1177/0301006616647742).
 

뼈와 뼈에 붙어 있는 근육, 그리고 피부 사이에 특별한 구조도 표정을 만든다. 대부분의 근육은 뼈에 붙어 표정을 만들지만, 눈 주위나 입술 주위에 있는 근육처럼 뼈에 붙어 있지 않은 근육도 있다. 근건막층처럼 피부의 주름과 표정을 만드는 부위도 있다. 이 부위는 피부의 진피와 표정 근육 사이를 잇는다. 콜라겐 같은 탄력 섬유 조직으로 돼 있으며 미묘한 표정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얼굴에 있는 지방도 표정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지위가 어떤 모양으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양방은 얼굴 구획마다 나뉘어 분포해 있고 피부와 강하게 붙어 있다. 구획의 경계마다 인대가 있어서 표정을 짓게 되면 어떤 부위는 많이 움직이고 어떤 부위는 상대적으로 고정돼 있다. 즉, 근육마다 움직이는 정도가 달라 특별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얼굴 근육 50여 개로 300~1만 가지의 표정을 만든다. 근육마다 형태와 기능이 달라,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덕분이다. 표정을 만드는 근육은 눈 주위와 코 주위, 입 주위에 특히 많다. 또 근육에 따라 깊숙한 곳에 있는 것도 있고, 상대적으로 얕은곳에 있는 것도 있다.

●입과 입술 주변 : 입꼬리내림근, 아랫입술내림근, 입꼬리당김근, 턱끝근, 큰광대근, 작은광대근, 윗입술콧방울올림근, 입꼬리올림근, 윗입술올림근, 입둘레근, 볼근, 광경근이 있다. 이 근육들은 입을 둘러싸고 있는데 각기 다른 모양과 뱡향, 세기로 힘을 가해 입꼬리를 올리거나 내리고, 입술을 내밀거나 오므리게 한다.

●코 : 코의 모양도 표정에 영향을 미친다. 코에 있는 코근과 눈살근, 비중격내림근은 콧구멍을 넓히거나 좁히고 콧등의 주름을 만들면서 표정을 만든다.

●눈과 눈썹 주변 : 눈둘레근은 눈을 감거나 찡그리고, 눈의 모양을 삐뚤어지게 하거나 눈가의 잔주름을 만들고 안검거상근은 놀라고 공포를 느낄 때 눈을 크게 뜨게 만든다. 이마 좌우에는 전두근이 있어 이마를 올리거나 내리고, 미간에서 눈썹내림근과 눈썹주름근, 눈살근 등은 눈썹의 모양을 조절한다. 이외에도 눈 주변 근육은 감정에 따라 눈을 크거나 작게 뜨거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귀 주변 : 사람은 근육이 거의 퇴화해 흔적기관으로만 남아 있다. 동물은 귀를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감정과 생각은 얼굴에 고스란히 표정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대 정신건강의학과 마티유 아르민존 박사팀이 지난해 학술지 ‘플로스원’에 밝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0.1~0.31초 밖에 되지 않는 찰나에도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표정을 100%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다. 표정이 단순히 얼굴의 구조적인 특성으로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글래스고대 심리학과 필립 사이킨스 교수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오드 올리비아 박사는 동일한 얼굴 사진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나열하고 표정을 읽게 하는 ‘닥터 앵그리와 미스터 스마일’ 실험을 했다(위 사진).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같은 사진인데도 큰 것은 웃는 모습으로, 작은 것은 화가 난 모습으로 봤다. 사이킨스 교수는 사람이 다른 이의 표정을 인지할 때는 구조적인 면만이 아니라 색조와 대조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doi.org/10.1016/S0010-0277(98)00069-9). 그래서 우리 뇌가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인지할 때 시각적 또는 관념적인 오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다.

표정에 대한 시각적 착각에 관한 실험
필립 사이킨스 교수팀이 실험에서 사용한 ‘닥터 앵그리와 미스터 스마일’ 사진.
모두 똑같은 사진인데 큰 것은 웃는 모습으로, 작은 것은 화가 난 모습으로 보인다.
뇌가 표정을 인지할 때 생김새뿐 아니라 색조와 대조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판단하는 게 100% 옳지는 않다는 뜻이다.

 
눈, 코, 입의 생김새나 뻗어 있는 방향 등으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관상학은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표정으로 성격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얼굴의 전체 127적인 생김새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로 결정되지만, 사람의 표정과 인상은 어려서부터 각자 어떤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표정을 자주 지었느냐에 따라 특정 얼굴 근육과 거기에 붙어 있는 뼈의 모양이 바뀔 수 있다. 심지어 눈, 코, 입이나 주름의 생김새도 달라질 수 있다. 아름다운 얼굴 또는 좋은 인상을 가지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많이 지어야 할까? 무엇보다도 속마음이 긍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제2의 언어인 표정이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운명이다.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승철 동국대 일산병원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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