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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커피와 자유, 그리고 협업

노벨상 공장의 세 가지 재료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edical Research Council·MRC)가 1947년에 세운 분자생물학연구소는 영어 약자로 ‘LMB’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캐번디시연구소 안에 설치한 연구 그룹이었지만, 곧 다양한 성과를 내며 독자적인 연구소로 성장했다. 기자가 LMB에 주목한 이유는, 2000~2015년 사이 노벨상 수상자 6명의 핵심 논문에 LMB가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LMB에서 ‘노벨상 연구’를 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LMB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이 연구소의 초기 멤버다. DNA 이중나선 구조도 이곳에서 발견했다. 인슐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밝히고 DNA 해독 기법을 연구해 노벨화학상을 두 번이나 탄 프레데릭 생어 역시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 지금까지 총 14명의 연구자가 이곳에서의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소속 과학자가 400명이 채 안 되지만, LMB는 ‘노벨상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한 연구소다. 8월 9일, LMB를 방문했다.


과학자들을 연결하는 재료, 커피

과학자들의 도시, 케임브리지 외곽에 자리한 LMB는 말끔한 회색 수트를 입은 영국 신사 같은 느낌이었다.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새 건물이었다. 놀랍게도, 약 3127억 원에 이르는 건축비 대부분을 연구소에서 개발한 ‘단일클론항체’ 기술의 특허료로 충당했다. 단일클론항체 기술은 어떤 항원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항체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이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때, 세포 내 특정 물질의 위치를 확인할 때 등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이를 개발한 체자르 밀스테인과게오르게스 쾰러 박사는 1984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연구소가 노벨상을 낳고, 노벨상 연구가 연구소 건물을 지어준 셈이다.
 

연구소 식당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구원들. 수많은 대화가 노벨상 연구를 비롯한 성과로 이어졌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미래의 노벨상 씨앗이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LMB에서 연구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인 이병길 박사가 입구에서 기자를 맞았다. 이 연구원은 “지금쯤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이라며 가장 먼저 꼭대기 층으로 안내했다. 탁 트여 연구소 주변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연구소의 ‘로얄층’은 다름 아닌 식당이었다. 8월 초라 휴가를 떠난 사람이 많았지만, 꽤 많은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연구원은 “지금(10시 30분)이 오전 티타임 시간”이라며 “보통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티타임을 갖는데,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둘 중 한 번은 참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LMB에서의 티타임은 단순한 휴식시간이 아니다. 초대 소장인 막스 페루츠 박사(1962년 노벨화학상 수상)가 ‘연구자 사이의 대화가 없는 연구소는 실패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만든 일종의 ‘제도’다. 티타임 참석을 강제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시간을 굳이 기피하는 사람도 없다.

티타임은 딱딱한 회의가 아닌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연구 과정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조언을 주고받는 시간이다. 자기 연구팀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팀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과 그룹 리더, 연구소장, 노벨상 수상자가 격의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위기여서 지식과 경험의 공유가 활발하게 일어난다. ‘연구할 시간도 모자란데 웬 시간 낭비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간에 주고받는 의견으로 불필요한 실험을 피할 수 있어서 오히려 연구의 효율을 높인다.

연구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매일 오전과 오후에 만나 티타임을 갖고, 점심 식사까지 같이 하다 보면 결국 대화 소재는 연구로 귀결된다. 그 결과 탄생한 노벨상급 연구가 한둘이 아니다.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토마스 스타이츠 예일대 교수는 노벨재단에 제출한 회고록에 “LMB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는 동안 티타임과 저녁에 펍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일생의 연구 주제인) DNA 복제와 RNA 전사, 그리고 단백질 합성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원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연구소 소장을 지낸 리처드 핸더슨 박사(그룹 리더)는 “스타이츠 교수와 키모트립신의 분자 구조를 밝혀낸 성과도 티타임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1966년 LMB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해 지금까지 그룹 리더로 연구하고 있는 그는 LMB 역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 많은 생물학 실험실에서 이용하는 동결전자현미경(Cryo-EM, 시료를 급속히 얼린 뒤 관찰하는 전자현미경)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그는 LMB의 차기 노벨상 후보로 꼽힌다.

“당시 스타이츠 교수는 박사후연구원으로 LMB에 왔어요. 저는 박사과정 학생이었고요. 우린 둘 다 소화효소 중 하나인 키모트립신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하고 있었죠. 연구 그룹도 달랐고요. 그런데 우리 둘 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아침부터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방법이 없을지 함께 고민한 거죠. 그렇게 하루 종일 식당에 있었어요. 쉬지도 않고요.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음날 각자 그룹 리더에게 가서 둘이 함께 연구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연구 방향을 완전히 바꾼 거였죠. 그로부터 6개월 뒤, 키모트립신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작용86하는지 등 모든 걸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이병길 연구원이 어디론가 사라졌나 했더니 식당 바깥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다른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그룹 소속이지만, 연구 내용을 알고 있어 “그때 하던 연구 어떻게 되고 있냐”며 안부를 물었다. 도마고즈 바레틱 연구원이 최근 동결전자현미경으로 특정 단백질을 인산화시키는 효소의 구조를 풀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 연구원은 “나도 그 단백질에 관심이 있다”며 “다시 만나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새로운 연구가 시작될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재료, 협업

“LMB 연구원들의 공동연구 관계를 나타내는 네트워크입니다.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죠?”

핸더슨 그룹 리더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연구원들 사이의 연결망을 보여주며 말했다. LMB 연구자들이 그룹에 관계없이 얼마나 활발하게 협업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그는 “티타임을 포함해 LMB의 모든 문화와 시설, 조직은 연구자 사이의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협업의 결과가 여러 차례 노벨상 업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연구소의 모든 조직과 구조는 협업을 장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년째 LMB에 몸담고 있는 얀 로웨 그룹 리더는 “연구 그룹은 리더와 박사후연구원, 학생으로 이뤄져 있지만 아무런 위계구조가 없다”며 “모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물론 연구소 내에서 의사결정과 책임을 맡은 직책은 있다. 로웨 그룹 리더를 비롯해 네 명의 연구 분과 대표가 있고, 소장과 부소장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인재 채용이나 새로운 연구 그룹을 만드는 것 등에 관여할 뿐 연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로웨 그룹 리더는 “건물의 구조도 모두가 연구에 평등하게 참여하며 협업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연구소를 둘러보니, 모든 구조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일단 LMB 건물은 상염색체의 모양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건물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같은 형태다. 일렬로 연결된 실험실들이 상염색체를 이루는 염색분체처럼 두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과 회의실, 휴게실이 염색분체를 묶는 동원체처럼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층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실험실은 유리 칸막이로 구획만 나뉘어 있을 뿐 모두 연결돼 있었다. 자기가 속한 실험실로 가려면 다른 그룹의 실험실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실험을 하다가 창문 너머로 반대편 실험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 구경할 수 있었다. 실험실마다 콘크리트 벽과 철제 문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국의 연구소와는 사뭇 달랐다.

연구소에는 소장이나 그룹 리더의 방이 따로 있지만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유리벽이었고, 문은 대부분 열려 있었다. 그나마도 새로 건87물을 지으면서 만든 것으로, 이전 건물은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막스 페루츠 초대 소장의 철학에 따라 아예 문이 없었다. 이병길 연구원은 “연구원들이 그룹 리더의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라며 “방에서 블라인드를 내리고 오래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건물 2층의 한쪽 끝에는 강당이 있는데, 매년 10월 둘째 주 이 곳에서 프랜시스 크릭의 이름을 딴 ‘크릭 주간’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크릭 주간에는 56개의 모든 연구 그룹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연구 현황을 발표한다. 남의 연구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생각하기 쉽지만, 마치 유명 가수가 콘서트라도 하는 것처럼 강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못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발표는 동영상으로 실시간 중계된다.

연구소 내부 구조는 연구원들의 소통과 협업을 위해 최적화 돼 있다.
 

왼쪽부터 얀 로웨그룹 리더와 이병길 연구원, 레베카 테일러, 리처드 핸더슨 그룹 리더.
 
세계 최초로 박테리오로돕신이라는 막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낸 핸더슨 그룹 리더와 나이젤 언윈 박사의 공동연구도 1973년 크릭 주간의 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

LMB에 온지 2년이 채 안 되는 레베카 테일러 그룹 리더는 “박사학위를 받고 6년 동안 다른 연구소에 있었는데, 이곳은 내가 경험한 어떤 연구소보다 협력적인 분위기”라며 “자신들의 연구를 비밀로 하거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경쟁하는 느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재료, 자유

커피를 마실 공간은 어느 연구소에나 있다. 그리고 많은 연구소가 연구자들의 소통과 협업을 강조한다. 하지만 LMB만큼 성공적인 곳은 드물다. 기자가 LMB에서 만난 세 명의 연구자는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티타임을 비롯한 모든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LMB에는 그룹별 예산이 따로 없습니다. 전체 예산을 가지고 모든 연구 그룹이 나눠 쓰기 때문에 협력 연구에 장벽이 없죠.” 핸더슨 그룹 리더는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에서 매년 제공하는 88중앙 예산(Central Budge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간 약 580억 원(4000만 파운드)의 예산이 주어지는데, 각 연구팀에 일정 금액씩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씩 신청해서 쓰는 구조다. 여기에 각 그룹 리더가 외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구비를 포함하면 총 예산은 약 720억 원(5000만 파운드)이 된다. 하나의 연구 그룹에 평균 13억 원 정도가 주어지는 셈이다. 행정직원 인건비를 포함해 연구원 1인당 연구비가 1억1813만 원 정도다(총 623명).

이 정도는 한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과 비교했을 때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 생명과학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인력규모는 비슷하지만(632명) 1인당 평균 연구비는 두 배가 넘는다(2억5235만 원).

하지만 LMB 연구자에게는 연구비를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룹별로 쓸 수 있는 연구비의 규모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도 인건비와 재료비 등으로 예산이 세분화돼 있는 한국과 다르다. 까다로운 연구 계획서도 필요 없다. 연구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연구에 돌입할 수 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다음 해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티타임과 크릭 주간 등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적용해 바로 실험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핸더슨 그룹 리더는 “LMB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중앙 예산 시스템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웨 그룹 리더도 “굳이 외부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사용한 연구비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만 한국처럼 매년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5년에 한 번씩 연구 성과를 평가한다. 로웨 그룹 리더는 “그룹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 경우 12쪽 정도의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1년 만에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든데 매년 평가를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박사(현재 LMB 부소장)는 그 자유를 쫓아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고, 결국 리보솜 구조를 규명해 노벨상을 탔다. 라마크리슈난 부소장은 2011년2011년 7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벨상 업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꼽았다.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로웨 그룹 리더와 연구원들.
 
그는 “LMB에 오기 전 미국 유타대에 있을 때는 리보솜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없었다”며 “LMB에 오지 않았다면 버스를 놓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패할 위험이 높은 연구였기에 다른 과제와 병행해야 했고, 그 때문에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게 지원한다는 것도 LMB의 중요한 특징이다. 젊고 경력이 짧은 연구자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리더로 뽑아 6년 동안 지원한다.
 
연구자의 연구 방향을 제한하거나 조종하지 않는다. 테일러 그룹 리더는 “연구소에서 신경세포의 노화와 관련된 연구를 하기 위해 날 뽑았지만, 내가 내일부터 다른 연구를 하겠다고 해도 허락할 것”이라며 “지원 기간이 끝났을 때 연구 성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노벨상 공장은 자유로운 연구비와 연구자 사이의 치밀한 네트워크를 재료로 쓰고 있었다. LMB를 취재하며, 노벨 생태계는 데이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올해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다. 이런 생태계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기형적인 한국의 연구 생태계가 건강한 것처럼 포장될 수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연구비 규모를 키웠다면, 이제는 연구 생태계를 재정비할 때다. 그래야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다. 건강한 연구 생태계에서 노벨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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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데이터로 본 노벨 생태계
PART 1. 연구비보다 '연구 자유'가 중요했다
PART 2. "받기도 힘들고 받아도 힘들었어요"
PART 3. 건강한 네트워크에서 노벨상 씨앗 자란다
PART 4. 커피와 자유, 그리고 협업
INTERVIEW. "좋은 질문을 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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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영국 케임브리지=최영준 기자
  • 사진

    영국 케임브리지=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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