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곰탱이’에서 곰탱이란 사실 곰의 별명이 아니다. 곰이 주변 낙엽이나 풀을 모아 만든 폭신한 침대를 곰탱이라 부른다. 1월, 지리산 곳곳의 바위틈이나 나무 굴속에는 곰탱이 위에서 한참 겨울잠을 자는 반달가슴곰이 있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과 사람을 만나러 2024년 12월 4일 전남 구례의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를 찾았다.

편집자 주
해가 비스듬히 비추던 2024년 12월 4일 오후 3시, 지리산 자락은 조용했다. 그래서 반달가슴곰 세 마리가 낙엽 위에서 뒹굴 때 나는 건조한 소리를 한참 듣고 있을 수 있었다. 겨울을 맞아 털이 북슬북슬해진 곰이 장난삼아 손에 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사방을 살필 때 나오는 입김을 볼 수 있었다.
기자가 전남 구례의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를 찾은 이날은 반달가슴곰 동면 기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난 시기였다. 반달가슴곰의 동면 기간은 보통 12월 1일부터 3월 말까지다. 벌써 기온이 더 낮은 산 위쪽 야외방사장의 곰들은 동면하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곰 세 마리는 12월 10일부터 동면에 들어갈 개체들이라고 했다.
정우진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장은 “곰이 동면하는 시기는 먹이에 영향을 받아 결정돼서, 야외방사장의 곰은 11월부터 먹이 양을 줄여주다가 동면 시작일 3일 전부터 금식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곰들은 동면을 위해 제각기 바위굴이나 나무굴 등 마음에 드는 곳에 터를 잡고 겨우내 묵을 잠자리 ‘곰탱이’를 만든다. 야외방사장의 곰에게 곰탱이를 만들 재료인 짚이나 낙엽더미를 갖다 쌓아주는 것도 연구원들의 몫이다.
“여기 있는 곰 세 마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그래서 사이가 좋지요.” 야외방사장의 곰들은 야생성이 보이지 않거나, 회복이 어려운 부상을 입는 등 야생에 풀어놓을 수 없는 곰들이다. 기자가 만난 곰들은 러시아에서 온 형제들로 유전적 자원을 확보해 추후 인공수정 등 연구에 활용할 목적으로 풀어놓지 않고 있었다. 정 센터장과 많이 친해졌는지, 기자가 아무리 카메라 셔터음을 내도 가만 있던 곰들이 정 센터장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반갑게 애교를 부렸다.

반달가슴곰 복원 20년, 지리산에는 곰 85마리가 산다
현재 남부보전센터 야외방사장에는 반달가슴곰 26마리가 연구원들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 일대의 야생에는 85마리의 곰이 활동하고 있다. 2004년 환경부가 본격적으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세운 초기 목표인 50마리를 달성한 셈이다. ‘50마리’는 지리산 권역 반달가슴곰의 최소 존속 개체수다. 이는 반달가슴곰이 50마리는 있어야 앞으로 환경과 유전적 변화, 자연재해 등이 벌어져도 100년 뒤, 나아가 1000년 뒤까지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남아있다고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 센터장은 “한국에서 진행된 대형 멸종위기동물 복원 사업으로는 반달가슴곰 복원이 첫 사례”라면서 “현재 지리산에는 처음 방사한 1세대 반달가슴곰부터 그들의 자손 4세대까지가 살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반달가슴곰은 원래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 산지 이곳저곳에 살던 흔한 동물이었다. 오죽하면 우리가 ‘웅녀의 후손’이라는 설화까지 있을까. 그러던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급감한 건 일제강점기부터였다. 당시 일제는 해수구제(해로운 동물을 없애는 것) 명목으로 반달가슴곰 1076마리를 죽였다.
이후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반달가슴곰의 서식지가 훼손되면서 반달가슴곰은 절멸의 위기를 겪었다. 게다가 1972년 반달가슴곰 사냥 금지령이 떨어질 때까지, 반달가슴곰의 쓸개를 ‘웅담’이란 이름의 약재로 쓰기 위해 지리산에서만 매년 40여 마리의 반달곰이 포획됐다.
분위기는 1983년 5월, 강원도 설악산에 울린 한 발의 총성을 계기로 바뀌었다. 밀렵꾼의 엽총에 맞은 반달가슴곰이 설악산 마등령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발견돼 대대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이 곰은 발견 뒤 3일 만에 끝내 폐사하고 만다. ‘설악산이 울었다’ ‘반달곰을 살려라’ 등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을 통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반달가슴곰의 존재를 반가워하고, 안타까워했는지 알 수 있다.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한반도 반달가슴곰 복원 논의가 시작됐다. 복원에 앞서 서식 현황 조사를 통해 전국에 반달가슴곰이 21개체 서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정부와 지자체는 제각기 반달가슴곰 복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1년,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의 자연에 적응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방사를 진행했습니다. 자연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서 활동하는 새끼곰의 모습을 보며 복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죠.”
남부보전센터에서 처음 방사한 개체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온 우수리반달가슴곰이었다. 반달가슴곰에는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시베리아 남부에 서식하는 우수리반달가슴곰을 포함해 일본반달가슴곰, 티베트반달가슴곰 등 7아종이 포함된다. 정 센터장은 “반달가슴곰 복원을 위해 러시아, 북한, 중국 동북부 등에서 사냥으로 어미를 잃은 새끼 우수리반달가슴곰을 데려왔다”면서 “한국에 원래 있던 종과 유전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시험방사된 반달가슴곰 장군, 막내, 반돌, 반순은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꾀할 때 어떤 고민이 먼저 필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모두 7개월 된 아기 곰이었는데, 이 중 막내는 지리산 탐방로 근처나 인근 암자에 나타나며 탐방객과 스님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실패였다. 어린 반달곰이 인간과 친해지면 자연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막내는 이후 다시 회수돼 야외방사장에서 살게 된다.
반순은 방사 1년 뒤 사체로 발견됐고, 나머지 장군과 반돌은 지리산에 잘 적응해 살아가다가 민가에 침입해 벌꿀을 훔쳐먹거나 농장의 염소를 죽이는 등 사건사고를 겪고 다시 야외방사장으로 돌아왔다.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은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이 큰 변수였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접촉을 줄이고, 혹시나 발생할 지역주민의 피해에 대비할 방법이 숙제로 남았다.

반달곰 ‘비몽사몽’ 잠든 곰 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국외에서 어린 반달가슴곰을 들여와 방사하는 한편, 2009년부터는 야생에서 반달가슴곰이 태어나는 경사도 매해 꾸준히 있었다. 오늘날 지리산의 야생 반달가슴곰 85마리 중 방사된 개체는 16마리, 야생에서 나고 자란 개체는 69마리에 달한다. 이 숫자 뒤에는 ‘곰 삼신할아버지’ 양정진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의 노력이 있다. 남부보전센터 옆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 양 센터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굉장히 활발하죠? 이게 2017년 세계 최초로 반달가슴곰 인공수정에 성공하던 때 사용한 정자입니다.”
화면을 바라보는 양 센터장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곳 야생동물의료센터는 국립공원 내에서 구조되는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검사하는 등 역할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업무가 바로 반달가슴곰 복원이다. 야외방사장과 야생의 반달가슴곰이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검진을 할 뿐 아니라, 인공수정 등의 방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리는 일도 이곳의 몫이다. 양 센터장은 “(반달가슴곰 인공수정 성공은) 수컷에서 정액을 채취하는 방법과 암컷의 배란 시기를 예측하는 노하우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끝에 얻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매년 겨울은 반달가슴곰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시기라 야생동물의료센터와 남부보전센터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 반달가슴곰은 여름철에 짝짓기를 하고, 동면기간 중 200~300g의 성체 덩치에 비해 작은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겨우내 어미곰의 젖을 먹고 자라 동면이 끝나는 봄에는 2~3kg까지 성장한다. 새끼곰의 상태를 확인하기엔 어미곰이 동면하느라 비몽사몽 중인 겨울이 적기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마취총, 방검복, 곰 스프레이 등으로 중무장하고 곰 굴을 찾는다.
“포유류의 동면은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선잠을 자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날이 따뜻할 땐 굴 앞에 나와서 이끼에 묻은 물을 빨아먹다가 날이 추우면 다시 들어가 자는 식이죠. 곰이 굴 안에 있을 때 야생동물의료센터와 남부보전센터가 함께 출동합니다. 어미에게 마취총을 쏴서 발신기를 교체하는 한편, 새끼 곰의 모근과 혈액을 채취합니다. 이렇게 얻은 유전적 정보를 토대로 부모를 추정하고 지리산 반달가슴곰 가계도에서 새로 태어난 곰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죠.”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현재 야생동물의료센터와 남부보전센터 모두의 가장 큰 고민은 ‘유전적 다양성’이다. 집단 내 유전적 다양성은 그 종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초체력과 같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야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전염성 질환이 유행하더라도 집단 전체가 멸종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야생 반달가슴곰이 사람 마음대로 자손을 남겨준다면 좋으련만. 현재는 모든 개체가 골고루 번식을 하는 게 아니라 매해 번식하던 개체만 번식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 탓에 현재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유전적 다양성은 그리 높지 않다. 국외에서 새로운 개체를 데려오려고 해도 현재로선 쉽지 않다. 이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북관계 악화 등 ‘인간의 사정’ 탓이다.
그래서 떠올린 해법이 바로 정자 동결기술 개발이다. 양 센터장은 “우수한 유전 형질을 가진 개체가 번식을 싫어하거나 야외방사장에 갇히게 돼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런 개체의 유전자를 남겨 추후 인공수정에 사용하기 위해 2021년부터 정자 동결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동결정자를 이용해 곰 인공수정에 성공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팬더 외에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양 센터장은 “활력도를 보이는 정자가 신선한 정액에 대비해 60% 이상은 돼야 동결정자의 질이 좋다고 본다”며 “현재는 평균 40% 정도에 도달한 상태라 나머지 20%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전국에 반달곰이 살기까지 사람과 곰의 공존을 고민하다
2024년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된 지 꼭 20년이 되던 해였다. 이제 사람들에게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있다는 사실은 익숙하다. 남부보전센터를 찾기 위해 구례구역에서 택시를 탄 기자가 “반달곰 보러 가는데요”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기사가 더 묻지도 않고 남부보전센터로 향한 것만 봐도 그렇다. 택시 기사 문승조 씨는 “주말만 되면 타지에서 반달가슴곰을 보러 많이 온다”면서 “덕분에 구례를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우리는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리산은 물론, 다시금 백두대간 전체에서 반달가슴곰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에서 반달가슴곰을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대형 포유류인 곰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달가슴곰이 애초에 지리산에 있어야 할 이유를 묻는 이들도 있다.
정 센터장은 “실제로 반달가슴곰 복원 초기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왜 반달가슴곰을 복원해야 하는가’였다”면서 “반달가슴곰 복원이 갖는 문화생태적 중요성을 들어 설득한다”고 말했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 생태계의 우산종(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한 종)이에요. 우산종을 복원하고 보호하기 위해선 그 지역 생태계가 건강해야 하죠. 우산을 펼치듯 먹이사슬에서 반달가슴곰보다 아래 위치한 종들을 함께 아울러 보호하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반달가슴곰과 먹이경쟁을 하는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해주는 효과도 있고요.”
반달가슴곰을 둘러싼 오해는 여전히 많다. 정 센터장은 “흔히 곰은 육식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반달가슴곰은 과일, 도토리, 새순 등을 주식으로 한다”면서 “애초에 사냥감을 쫓아가기에 적합한 체형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반달가슴곰은 사람을 꺼린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지리산의 야생 반달가슴곰 위치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탐방로 주변 100m 이내에 있었던 적은 전체의 3.1%에 불과했다. 탐방로만 이용하면 곰을 마주칠 확률이 낮다.
“현재는 지리산에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늘어나고, 활동범위도 덩달아 늘어난 상황입니다. 반달가슴곰은 무척 영리한 동물이라 5~7세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곤 하죠. 개체 특성도 다양해서 멀리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개체도, 유독 사람을 좋아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모를 피해를 막기 위해 매일 지리산 권역의 반달가슴곰 위치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곰 피해를 100% 보상하는 한편, 지역 농가에서 나온 낙과를 곰 먹이로 주고, 반달가슴곰과 공존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된 지 만 20년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지리산 너머 백두대간 곳곳에 반달가슴곰의 발걸음이 닿도록 만들 때”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