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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두리안 ‘ X냄새’가 궁금하다!



농구공만한
과실에 가시가 잔뜩 돋은…, 기다리던 두리안이 도착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호텔이나 지하철, 공항, 심지어 대중교통에도 반입 금지라고 하는 두리안을 당당히 과학동아 편집실로 배달시켰습니다. 어떤 향인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식품 전문가들조차 설명이 모호했습니다. (가장 압권은 요리 평론가인 리처드 스털링의 것이었죠. 돼지 똥에 테레빈유와 양파를 섞어 체육관용 양말에 넣고 뒤섞은 냄새….) 그래서 직접 사봤습니다.

힘들게 껍질을 벗기니 노르스름한 과육이 나옵니다. 언뜻 바나나 과육처럼도 보이는데요.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대로 ‘휘휘’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두리안의 향을 맡아 봤습니다. ‘음~’ 첫 느낌을 좌우하는 강렬한 탑 노트는 방귀 냄새입니다. 맨 아래 기본향이 되는 베이스 노트는 달착지근한 과일향이고요, 기본향 위에 향의 인상을 결정하는 미들 노트로 꽃냄새가 얹어져 있습니다. 아, 왜 어떤 사람들은 냄새가 향기롭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불쾌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비전문가의 생각이고요. 진짜 분석은 이제부터입니다. 유럽 향미 분석의 선구자인 독일 뮌헨공대 식품공학과 피터 쉬벨레 교수와 독일 식품화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이 최근 몬통 품종의 두리안 향기를 분석해 논문을 냈거든요(doi:10.1021/acs.jafc.6b05299). 과일의 향기를 분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냄새 성분이 당과 결합해 있기 때문에(배당체) 쉽게 휘발되지 않습니다. 포도의 경우에도 자유로운 상태의 냄새 성분보다 배당체의 형태인 것이 5배 이상 많습니다. 연구팀은 냄새 성분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인 친유성과 휘발성을 이용했습니다. 즉, 유기용매를 이용해 냄새 분자를 추출하고, 고진공 조건에 넣어 휘발하는 성분들을 영하 196℃의 액체 질소에 포집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이렇게 포집된 시료를 가스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라는 기기로 분석하면 보통 수백 가지의 냄새 성분이 나옵니다.


과일향 더하기 ‘이것’은 두리안 향
연구팀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후각측정기를 사용해 그중에서 19가지의 핵심 냄새 성분들을 규명했습니다. 각각의 성분은 농도가 1kg 당 1μg~1mg로 다양했기 때문에 냄새 활동도(OAV)가 큰 것을 추렸습니다. 냄새 활동도는 농도가 높을수록, 냄새를 인지할 수 있는 문턱값이 낮을수록 높아집니다.

 
냄새 활동도(OAV): 절대 농도 ÷ 냄새 인지 문턱값
 
그 결과 두리안의 향은 한 마디로 ‘과일향+양파향’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과일향인 에틸 (2S)-2-메틸부타노에이트(OAV 1700000)와 썩은 양파향인 에테인티올(OAV 480000), 구운 양파향을 내는 1-에틸설파닐에테인-1-티올(OAV 250000)의 냄새 활동도가 특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개인적으론 양파향이 충격이었습니다. 두리안을 개봉했을 때는 양파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거든요.

연구팀은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두리안의 복잡미묘한 향기를 과일향과 양파향 두 가지만 섞으면 그럴듯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팀은 냄새 활동도가 높은 두리안의 핵심 냄새 성분 10가지로 누락 테스트를 했습니다. 10가지 냄새 성분 중에서 하나를 뺄 경우, 진짜 두리안 향과 얼마나 다른지를 사람들에게 비교하게 한 겁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에틸 (2S)-2-메틸부타노에이트 성분(과일향)과 1-에틸설파닐에테인-1-티올 성분(양파향)을 빼지 않으면, 두리안의 향과 명확한 감각적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두리안의 10가지 향기 성분이 과일향, 양파향 주로 두 가지 향기로 정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왼쪽 표). 또 몇몇 성분의 농도가 그것의 냄새 인지 문턱값을 훨씬 넘어버린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해당 냄새와 결합하는 후각 수용체가 이미 포화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사한 향을 내는 다른 냄새 성분은 ‘없어도 그만’이 돼버리는 거죠.
김영석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냄새는 혼합물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 뇌는 이것을 패턴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한 냄새 성분들을 감지하는 데 여러가지 수용체 조합이 활용되고, 이렇게 조합된 냄새 수용체들이 뇌에 전기적 신호를 전달해 냄새 특성을 구분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맡으면 양파향이 나는 성분인데, 적절한 농도로 과일향과 섞이면 미묘한 매력을 가진 두리안 향기로 둔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냄새 성분이 뇌에 인식되는 과정은 소리나 빛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평소에 자주 먹는 딸기의 향도 어떤 성분들이 어떻게 그런 향 특성을 나타내는지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기 아이스크림의 향은 진짜 ‘딸기향’과 완전히 다릅니다!) 김 교수는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냄새가 크게 좌우하는 만큼, 향미에 대한 연구가 좀 더 깊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토마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맛있는 향기’
식품의 향기 얘기가 나왔으니 채소의 냄새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과일의 향기가 대부분 과일이 익어가는 중에 나오는 반면, 채소류에서는 주로 세포조직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냄새 성분들이 생성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녹색잎휘발성물질(GLV)’인데요. 여기서 나오는 풋풋한 ‘잔디 냄새’는 어린 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하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GLV는 탄소수가 6~7개인 포화, 또는 비포화 지방족 알코올, 알데히드, 케톤, 에스테르 등의 혼합물입니다. 정확한 조성은 식물종에 따라 다릅니다. 시중에 파는 토마토에서는 GLV의 일종인 (E)-2-헥세날 성분이 나옵니다. 실제로 잔디를 깎을 때 방출되는 성분이죠. 일본 고베대 미키코 구니시마 연구원팀은 토마토의 엽록체 속 틸라코이드 막에서 GLV 성분을 만들어내는 핵심 효소를 찾아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DOI:10.1074/jbc.M116.726687).

지난 1월 27일 ‘사이언스’에는 ‘토마토의 향미를 높이기 위한 화학적 유전자’라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 식물혁신센터 해리 클라이 교수팀이 토마토 398종의 유전체 전체를 분석한 결과였는데요. 연구팀은 사람들의 선호도에 영향을 주는 33가지 화학물질을 추려내고, 이것을 좌우하는 유전자를 찾아냈습니다. 그 결과 개량을 여러 번 거친 상업화된 토마토에는 야생 토마토에 들어있는 Lin5와 같은, 단맛이나 향을 내는 유전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클라이 교수팀은 지난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토마토를 냉장 보관하면 향을 망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낸 적이 있습니다. 냉장고와 상온에서 각각 토마토를 보관하고 비교했더니 3일 뒤부터 향의 변화가 생겼다는 거죠. 냉장고에서 일주일 동안 보관한 토마토는 특유의 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토마토를 12℃ 이하에서 보관할 경우, 특유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효소가 급격히 줄었고, 한번 줄어든 효소는 다시 상온에 옮겨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DOI:10.1073/pnas.1613910113).
 
 

+더 읽을거리
김영석 외 ‘생각이 필요한 식품기능성론’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빛깔 좋은 딸기가 몸에도 좋다’ (2004.4)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404N040
‘과학으로 먹는 맛있는 과일’ (2012.10)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210N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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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자료출처

    DOI:10.1021/acs.jafc.6b05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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