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때도 일찍이 맛있는 음식(美品)을 찾아 먹었는데 침교(沈橋·현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파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이 좋아 서경(평양)의 오수집 돼지국과 같았다. 서경에서는 기름진 비계가 손바닥처럼 두꺼운데 설편(雪片)처럼 얇게 잘라 입에 넣으면 얼음이 녹듯 했고, 불에 구워도 천하일미라고 할 만했다. 궁지에 있는 사람이라 음식 생각이 가장 많아서 이렇게 두루 말하거니와 우스운 일이다….”
탐식가들이 대거 출현한 조선
조선후기 문인이자 관리였던 효전 심노숭(1762~1837)이 자신의 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에 쓴 음식 품평이다. 유배지에서 고을의 제사음식인 돼지고기를 먹고 서울과 평양의 유명한 돼지국밥 맛을 떠올리며 찬탄하고 있다. 조리 방식을 설편(눈송이)에 빗대 묘사한 대목은 미식가답게 섬세하기 그지없다.
효전은 조선의 대표적인 미식가였다. 효전산고를 보면 그가 좋아한 것은 돼지고기뿐만이 아니었다. 봄이면 쑥과 미나리, 복어 이야기가, 여름이면 개장국, 가을이면 송이버섯과 감, 겨울이면 떡과 청국장에 대한 이야기가 구구절절 적혀 있다. 하지만 정작 입맛이 까다로워 음식 투정도 잦았다고 한다. 특히 냉면 마니아였는데 어느 날 한 메밀면을 먹고 “메밀가루가 마치 모래를 씹는 듯하여 냉면이든 온면이든 모두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졌다. 이것을 어떻게 먹으랴” 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효전은 1801~1806년 경남 기장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에도 탐식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열도와 가까운 기장의 지리적 특성을 적극 활용해 일본제 난로를 구한 뒤 쇠고기를 구워먹었다. 또 본가에서 음식을 잘하는 여자 노비를 데려오려다 여의치 않자 자신이 가르치던 서동 중 한 명에게 직접 서울식 요리법을 가르쳐 전속 요리사로 삼기도 했다.
효전의 음식 기록은 단순한 미식가의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 효전의 음식 기록에 대한 최초의 연구 논문(‘18·19세기의 음식 취향과 미각에 관한 기록’)을 ‘동방학지’에 발표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효전 이후로 다양한 음식 맛을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드러낸 한문 기록이 급증한다”며 “금욕적이던 조선 사회가 욕망을 추구하고 소비를 과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개장국 레시피 능력자 박 주부
실제로 조선 중기에는 내로라하는 탐식가들이 대거 출현한다. 그중엔 실학자 초정 박제가도 빼놓을 수 없다. 박제가는 저서 ‘북학의’를 통해 상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 사상을 전개한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다. 그런데 박제가는 경제 사상만 기록한 게 아니었다. 한 저서에는 스승인 연암 박지원과 처음 ‘집밥’을 먹었던 순간을 감동적으로 적어놨다. 그는 연암이 숯불 위에 손수 하얀 자기를 올려 밥을 지었다고 기록했다(부인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밥을 함께 먹고 대화를 나누며 지음(知音) 즉 자신을 알아주는 감동을 느꼈다고 적었다. 물론 밥맛보다는 정성에 탄복했을 것이다.
박제가는 사실 그 스승보다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주부처럼 자신만의 음식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는데, 개장국 레시피가 특히 대단했다. 당시 조선에는 여름이 되면 개고기를 삶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음식디미방’이라는 조리서를 보면 개장(개순대), 개장꼬지 누르미,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 등 다양한 개고기 요리법이 나온다. 다산 정약용은 개장국만큼은 박제가의 요리 방식대로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그는 신미년(1811) 겨울 흑산도에 유배된 형 약전에게 편지를 보내 박제가의 개장국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했다. ‘개고기를 물에 씻지 말라’, ‘삶은 개고기를 꺼내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한 뒤 다시 볶거나 삶아야 훌륭한 맛이 난다’ 등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 뒤, “이것이 바로 박 초정(박제가)의 개고기 요리법입니다”라고 적었다.
박제가는 반찬을 만드는 솜씨도 좋았다. 특히 말린 늙은 호박을 이용해 나물 무침을 맛깔나게 만들었다. 당시 호박은 절에서만 먹는 채소였다. 이름은 남쪽 나라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남과라고 불렀다. 박제가는 남과에 돼지고기 목살, 새우젓을 넣고 끓여서 자신만의 호박나물 레시피를 개발했다. 이 호박나물이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박제가와 동료 실학자 유득공, 그리고 둘의 아들들이 나눠 먹으며 장편 시를 읊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집안마다 특별한 레시피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었고 주변과 나눠 먹는 일이 빈번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균, 조선의 ‘맛 지도’를 그리다
한국 최초의 ‘맛 지도’ 역시 조선 시대에 나왔다.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1611년 사대부 출신 첫 음식 칼럼니스트로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음식과 식재료 품평서를 펴냈다. 허균은 스스로를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깐깐한 식객이었다. 그런 그가 44세가 되던 해에 전라도 함열(지금의 전북 익산)로 난생 처음 귀양을 가게 된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찾아 먹었던 산해진미가 그리웠던 허균은 그 맛을 반추하며 도문대작을 쓰게 된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해 본다’는 뜻이다. 책에는 병과 음식(떡 종류) 11종목, 채소와 해조류 21종목, 어패류 39종목, 조수육류 6종목, 차, 술, 꿀, 기름, 약밥 등 조선 팔도의 명품 토산품이 빠짐없이 적혀있다. 또 서울의 계절 음식 17종과 방풍죽, 차수(칼국수), 두부 등 지역별 별미 음식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허균은 책에서 ‘최상의 두부는 서울 창의문 밖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두부 맛이 말할 수 없이 연하다’고 적었다. 그는 해산물, 특히 게 요리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책에서도 ‘삼척에서 잡아 올린 대게가 최고의 맛’이라고 평했다. 이런 사실은 조선 시대 사람들이 요즘처럼 지역 별미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미 그때부터 지역별로 잘 알려진 ‘맛집’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서울 사람들의 맛집 사랑
탐식의 시대 조선에는 유명한 식당, 이른바 ‘맛집’도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개장국 전문점 ‘군칠(君七)이집’이 가장 유명했다. 군칠이집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여군칠이집’ ‘남군칠이집’으로 분점을 냈다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심지어는 춘향전에도 군칠이집에 술을 받으러 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시대 맛집은 18세기 후반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여기에는 정조의 정책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정조는 오랫동안 독점 영업을 이어오던 육의전 상인들에 대항해 난전을 허용하면서, 난전 상인들이 작은 음식점을 낼 수 있도록(술을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자 서울 종로 피맛골 주변에는 선술집, 국밥집, 색주가 같은 음식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음식점이 얼마나 많았던지 ‘서울 시내 상점 절반이 술집이고, 서울에서 잡는 가축의 고기 대부분이 술안주로 쓰인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였다. 양반들이 주로 모여 있는 서울에서는 계절마다 유행하는 음식이 민감하게 달라졌다. 가령 ‘복사꽃이 필 무렵 전후로는 복국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해마다 그 시기가 되면 서울 사람들이 단체로 복국을 먹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다. 마침 복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잘 잡히기 때문에 한강의 특산품이었다. 복국을 먹은 조선 시대 사람들은 복국을 맛있게 끓이는 집, 복국의 맛 등을 서신으로 주고받았다. 오늘날 SNS를 통해 먹은 음식 사진을 공유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조선 이전에도 분명 탐식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서야 탐식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문집과 어문 기록에는 음식과 관련된 언급이 거의 없었다. 보통 한문으로 쓰는 시문으로는 점잖고 고급스러운, 지식과 교양을 과시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적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조선 중기 이후로는 한문시나 산문 속에서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급격히 늘어난다”며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음식 기록을 보면 정보가 오늘날에 못지않게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음식을 저장하는 방식에 따라 요리의 개성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 사람들은 고추장과 같이 간단한 음식에도 강렬하고 진한 맛을 느끼고 서술하는 경향이 있었다. 18세기는 오늘날 만큼이나 탐식의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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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대한민국을 지지고 볶는 탐식 열풍
Part 1. 탐식의 시작 : 처음 밝혀진 조선시대 미슐랭 가이드
Part 2. 탐식에 빠진 TV : 쿡방, 왜 재밌을까 촬영공식3
Epilogue. 쿡방 열풍, 어떻게 받아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