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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방을 재밌게 만드는 세 가지 법칙
1. 친숙하고 살찌는 요리를 만들라
“쿡방을 자꾸 보게 만드는 공식은 간단해요. 기름지거나 달콤한, 열량이 높은 요리를 보여주면 됩니다.” 이 PD는 쿡방의 인기 비결을 재차 묻는 기자에게 ‘시청률=열량’이라는 간단한 공식을 내놨다. 흔히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에게는 시청률이 ‘깡패’다. 다큐멘터리 ‘누들로드(2008)’를 연출하고 유명한 요리학교인 영국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다녀와 지난해에는 다큐멘터리 ‘요리인류’까지 만들어낸 대학민국의 유일한 ‘셰프 PD’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쿡방에서는 어떤 요리를 선보이느냐가 시청률을 크게 좌우합니다. 팬 위에서 지글지글 소고기를 굽거나, 케이크에 진한 초콜릿 소스를 들이붓는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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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진화학자들의 학설 중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이 있다. 인간이 수렵채취 시대부터 몸 안에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 에너지원이 되는 기름진 맛(지방)과 달콤한 맛(탄수화물)에 쾌락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 배가 고프면 맛에 관계없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찾게 된다는 최신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뉴욕대 의대 연구팀이 2011년 6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초파리도 영양결핍 상태에서는 본능적으로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선호한다.
기름진 고기 요리나 달콤한 디저트 외에도 성공률(?)이 높은 요리는 의외로 ‘친근한 요리’다. 이 PD는 부대찌개를 예로 들었다.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영상을 보고 과연 외국 사람들이 군침을 흘릴까요? 답은 ‘No’입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의 맛을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요즘 쿡방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의 ‘집밥 백선생’도 매회 된장찌개, 김치전, 계란 프라이 같은 평범한(?) 음식만 취급한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레시피를 전달한다는 의도도 있겠지만, 맛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음식들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려는 속셈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2. 리얼 쿡방? 연출이 반이다
요리인류 키친은 매회 세계 각지의 특별한 음식과 음식에 담긴 역사,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대부분이라 시청률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PD는 “대신 맛과 모양을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촬영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촬영을 할 때 마치 영화를 촬영하는 것처럼 카메라의 심도를 낮춘다. 심도를 낮추면 피사체가 입체적으로 보일뿐 아니라, 주변 배경이 살짝 흐릿하게 보이면서 화면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뉴스나 일반 방송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ENG 카메라를 사용하면 심도가 깊어서 화면 전체에 초점이 잘 맞는 대신, 피사체가 평평하게 보인다.
적절한 연출도 필수다. 음식을 가만히 그릇에 담아 놓을 때보다 한 숟가락 퍼 올릴 때 더 맛있어 보이기 때문이다(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음식을 촬영할 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또 촬영 중에는 소금이나 버터 같은 재료를 정해진 레시피보다 더 듬뿍 넣는다. 어떤 재료가 쓰이는지 잘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셰프가 방송에서 만든 음식이 오히려 맛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PD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중간에 간을 보지 않는 이유가 다 있
다”면서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간을 보지 않는 것은 음식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간을 보는 느린 화면이 방송의 흐름을 끊기 때문이라고 한다.
촬영팀은 요리가 완성된 직후에 가장 바쁘다. 이때가 음식이 가장 맛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촉촉한 음식은 특별히 예쁘게 담지 않아도 먹음직스럽다. 촬영장에서 만난 푸드스타일리스트 겸 사진작가인 남명혜 ‘더롱테이블’ 대표는 “음식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국물
이나 소스를 따로 준비했다가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부어낸다”고 힌트를 줬다. 그는 음식을 맛있게 보이게 찍는 또 다른 비법으로 역광을 꼽았다. 주 조명을 음식 뒤에 둬서 음식의 실루엣을 강조하고, 음식 앞에는 보조 조명을 둠으로써 음식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 음식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촬영하다보면 정작 제작진은 다 식은 음식만 먹게 된다는 슬픈 후일담도 들었다.
3. 작은 소품이 명품 쿡방 만든다
이날 상수동 촬영장에는 선반마다 각양각색의 그릇과 조리기구들이 놓여있었다. 모로코의 전통 조리기구라는 ‘타진’과 같은 물건은, 촌스러
운 기자는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쿡방에서 소품은 음식을 맛있게 보이게 하고 식욕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동안 무심코 봤
지만 쿡방에 나오는 그릇이나 냄비, 음식을 담는 양과 위치가 철저한 계산이었던 셈이다. 남 대표는 “특히 그릇과 음식의 색깔 조화가 중요하다”
며 “그릇에 음식을 담았을 때 3가지 이상의 색이 들어있지 않아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흰 접시를 고른다” 같은 ‘꿀팁’들을 일러 줬다.
실제로 음식과 그릇의 색 조화는 오래전부터 연구가 이뤄져왔다. 한 예로 2012년 한국색채학회에 발표된 ‘음식의 시각적 맛과 식기 색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담백한 맛을 내는 두부는 유사한 색인 연두색 식기와 가장 잘 어울리고, 단맛 케이크의 경우 유사한 느낌의 빨간색 식기에 담았을 때 가장 맛있게 보인다.
매콤한 낙지볶음은 흰 접시와 배치해야 붉은 색이 선명하게 부각돼 먹음직스럽다. 샐러드는 그릇의 색과 큰 연관은 없지만 흰 색이나 노란 접시와 대체로 어울리고, 냉면은 흰색 식기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잘못된 색 선택은 오히려 식욕을 깎아 내린다. 미국 코넬대 식품 브랜드 연구소 연구팀이 2012년 성인 60명을 조사한 결과, 음식과 음식을 담은 그릇의 색이 대조적이면 동일한 색 그릇에 담겼을 때보다 음식을 20% 가량 적게 먹는다는 연구가 있다. 그릇에 담긴 음식 양이 부각돼 먹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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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만큼 재밌는 놀이는 없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에선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TV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요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쿡방’ 열풍은 오히려 좀 늦게 온 편이죠.” 이 PD는 쿡방이 지나치게 많다는 불평에 “쿡방 열풍은 당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재밌잖아요.” 쿡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 음식을 먹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죠. 쿡방은 이런 욕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립니다.”
그가 말하는 쿡방의 첫 번째 매력은 ‘여럿이 먹는 재미’였다. “축구 경기를 혼자 보면 재미가 있나요? 음식을 혼자 먹을 때와 여럿이 먹을 때의 차이는 축구를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는 TV를 보는 사람들이 함께 요리를 즐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촬영장을 최대한 실제 부엌과 유사하게 꾸몄다고 했다. 작고 아늑한 공간에 실제 가구를 들이고, 보통 요리 프로그램 세트장에는 없는 상하수도, 도시가스 같은 시설도 구축했다. 촬영장을 꾸미는 데만 1억 원이 넘게 들었다. ‘함께 먹는 것’은 사람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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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존 드 카스트로는 사람이 타인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식욕이 어떻게 달라지는 조사해 1989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사람은 타인과 함께 식사를 할 때 평소보다 음식을 44%나 더 먹었다. 또 재미있게도 같이 먹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큰 식욕을 보였다. 함께 먹는 사람이 1명이면 평소보다 33% 더 먹고, 2명이면 47%, 3명이면 58%, 4명이면 69%, 5명이면 70%, 6명이면 72%까지 섭취량이 늘었다. 상대방의 먹는 모습이 모방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미츠루 시미츠 박사팀이 학술지 ‘식욕’에 발표한 연구결과에서도 과체중인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하면 먹는 양이 파스타는 31.6%, 샐러드는 43.5%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쿡방의 또 다른 매력은 마술쇼 같다는 점이다. 피가 뚝뚝 흐르던 섬뜩한 고깃덩이가 여러 가지 화학작용을 거쳐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요리로 변신하는 게 바로 요리다. TV는 이런 마술쇼를 펼치기에 최고의 전달 매체다. 제작진들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간접적으로는 후각과 촉각을 언급해 뇌가 맛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시청자들은 진짜 마술 쇼를 볼 때처럼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쿡방은 게임과도 매우 유사하다. 요즘 유행하는 쿡방을 보면 ‘15분 내로 요리하기’ ‘냉장고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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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쿡방, 레시피형 쿡방, 예능형 쿡방…, 쿡방을 설명하는 용어가 많은데, 쿡방의 내용과 형식은 앞으로 더 다양하게 진화할 것입니다.” 이 PD는 현재의 쿡방이 대부분 오락적인 예능 쪽으로 기울어 있지만 모든 쿡방이 이렇게 획일화돼선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목표는 음식에 담긴 이야기, 즉 음식의 문화와 역사, 과학적인 발명 등의 내용을 담아내는 ‘인문학적 쿡방’이다.
그는 최근 참여형 쿡방도 시도했다. 쿡방을 보기만 했던 시청자들이 요리에 직접 동참하는 라이브 실습 쿠킹쇼를 연 것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참가자 60명의 가정에 달걀과 큐민 가루, 파프리카 가루, 홀 토마토, 양파등 재료들을 보낸 뒤, 지난 7월 18일 정오에 이들과 함께 중동의 달걀요리 샤크슈카를 만들었다. 그와 좌충우돌 초보 요리사들의 요리 과정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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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대한민국을 지지고 볶는 탐식 열풍
Part 1. 탐식의 시작 : 처음 밝혀진 조선시대 미슐랭 가이드
Part 2. 탐식에 빠진 TV : 쿡방, 왜 재밌을까 촬영공식3
Epilogue. 쿡방 열풍, 어떻게 받아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