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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의료인류학으로 본 MERS


 
오래 전부터 낙타는 아랍 유목민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였다. 아랍의 고전에 등장하는 낙타는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정신적 존재였고, 현실에서는 유용한 이동수단이자 식량이었다. 이슬람 시대 이전부터 아랍인에게 낙타는 ‘사막의 배’이자 숭배의 대상이었고 또한 전투의 수단이었다. 아랍인은 낙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즉 ‘낙타일(日)’로 먼 거리를 가늠했고, 낙타가 한번에 실을 수 있는 중량으로 무게를 가늠했다. 그들은 낙타의 고기를 먹고 낙타의 가죽으로 만든 텐트에서 잤으며, 낙타의 똥을 땔감으로 사용했다. 심지어 낙타의 오줌으로 머리를 감기도 했다.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온 아랍인의 역사는, 낙타와 함께 한 긴 여정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낙타는 약 4500만 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서 진화해 약 180만 년 전에 현재의 베링해협을 건너 아시아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남미에 서식하는 라마나 알파카가 낙타의 먼 친척이다. 아시아로 건너온 낙타는 이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는데, 추운 지방에 적응했던 신체적 특성이 사막의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도 잘 맞았다. 눈밭을 걷도록 진화한 낙타의 발은 사막의 모래를 걸을 때에도 도움이 됐고, 혹에 든 지방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이 됐다. 이런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동인들은 약3000년 전 낙타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인류의 오랜 친구였던 낙타가 수모를 당하고 있다. 메르스(MERS, 증동호흡기증후군)를 퍼트린 범인으로 의심받기 때문이다. 과연 메르스 집단 발병을 낙타의 탓으로 돌려도 되는 걸까.
 
가축과 인간의 병원균 평형이론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는 코로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표면의 돌기가 마치 태양의 코로나(태양을 둘러싸고 빛나는 플라스마 대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크기가 대략 80~160nm 정도 되는 RNA형 바이러스다. 사스(SARS) 바이러스도 여기에 속한다. 사스와 메르스는 원인 바이러스의 계통이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집단 감염의 시작과 유행과정 등이 여러모로 많이 비슷한 편이다.



2003년 1월, 중국 광저우의 한 새우 상인에게 처음 발병한 ‘페이띠엔싱페이엔’, 즉 비전형폐렴은 130명의  
의료인과 환자에게 급격히 확산됐다. 당시 의료진 중 한 명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으로 떠났고, 홍콩에서도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스 사태는 중국에서 5327명, 홍콩에서 1755명의 감염자와 6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고, 전 세계로 전파되고 나서야 비로소 수그러들었다. 첫 환자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나서야 사스 바이러스를 퍼트린 용의자가 지목됐다. 일부 사향고양이에서 사스 항체가 검출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루왁커피나 고양이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수만 마리의 사향고양이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바로 살처분됐다. 그리고 사스는 점점 잊혀져 갔다. 


 
약 10년이 지난 2012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체불명의 폐렴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인을 잘 몰라서 중동 사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나중에 사스와 비슷한 계통인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태의 범인으로는 낙타가 꼽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된 역학조사 결과, 낙타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들이 메르스에 많이 감염됐고 일부 낙타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의 항체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많은 낙타가 살처분됐고, 심지어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국의 낙타들도 상당기간 격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양이와 낙타, 인류의 가장 좋은 두 친구가 최악의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사태는 몹시 이상했다. 인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병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약 3만 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회색늑대를 개로 길들인 이후, 소나 돼지, 말, 닭, 낙타,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이 가축이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간과 가축이 서로 병원체를 주고 받았고, ‘병원체 평형 상태’에 이르렀다. 서로의 병원체를 상대에게 퍼뜨려 면역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개와 아주 가깝게 살고 심지어 같이 자기도 하지만, 개 때문에 심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육식화, 도시화, 병원화 그리고 대유행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바이러스가 숙주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숙주를 금방 죽이면 바이러스 자신도 살 방법이 없어진다. 가급적 오래 살려야 바이러스도 오래 살고 잘 퍼진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도시
화로 좁은 공간에서 사람과 가축이 서로 뒤엉켜 사는 복잡한 생태환경이 나타났다. 현재 아시아 온대 지방에 사는 인구는 20억 명을 훌쩍 넘어서며, 대부분 비좁고 열악한 도시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육류 소비가 늘었고, 가축의 수는 인구보다 더 빨리 늘어났다. 지난 40년간 중국 인구는 7억9000만 명에서 13억 명으로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동안 돼지는 520만 마리에서 5억8000만 마리, 가금류는 1230만 마리에서 130억마리로 급격히 늘어났다.
 
상당수의 가축은 인간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 중국 남부에서는 집 안에서 돼지와 닭, 오리를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서양에서 집안에 개를 들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런 가축 중 일부는 주변 야생동물과 접촉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류가 잘 접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를 전달받는다.
 
특정 동물과 바이러스가 서로에게 해를 주지 않는 상태로 공진화한 경우, 이 야생동물을 해당 바이러스의 자연숙주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바이러스 중 일부는 가축에게 큰 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가축에도 곧잘 퍼진다. 이를 숙주이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 중 일부는 인간에게 우연히 전염되기도 한다.
 
보통은 이런 형태의 우연적 감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간 집단 내에서 크게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치명적이라 초기 감염자를 일찍 죽여버리거나, 사람 사이의 감염력이 아주 낮은 경우가 많다. 이런 감염병은 초기에 잘 차단하면 큰 유행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간혹 복잡한 의료인류학적 상황이 이런 우연적 감염을 보다 심각한 공공보건상의 위협으로 비화시키곤 한다. 범인은 바로 병원이다.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아픈 사람은 일단 병원을 
찾게 되는데, 병원에는 감염에 취약한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 환자 가족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늘 북적거린다. 병원체 입장에서는 기세를 부리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흔히 병원을 가장 깨끗하고 위생적인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사실은 각종 치료저항성 병원체와 감염원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장소가 병원이다. 영국에서만 매년 2만 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사망한다. 전세계적으로는 매년 1500만명이 병원에서 새로 감염되고 그 중 1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중국발 사스 사태 역시 주로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사스는 단 한 명의 슈퍼전파자에서 시작된 뒤 130명의 의료인과 환자를 감염시켰는데, 이는 병원 전체 직원의 8%에 해당했다. 또다른 슈퍼전파자는 싱가포르의 한 종합병원에서 24명의 의료진과 27명의 환자 및 가족을 감염시켰고, 바이러스는 곧 다섯 개의 종합병원과 두 개의 요양원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사스 바이러스는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도 심
각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400명의 감염자와 40여 명의 사망자, 그리고 2만5000명의 격리자가 발생했는데, 대부분의 감염자는 의료인이거나 병원 내 감염자였다. 의료선진국으로 알려진 캐나다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병원체 다양성의 감소가 병을 불렀다?
 
인류가 감염병에 취약해진 또다른 진화적 이유는 병원체의 다양성이다. 어떤 동물종에 기생하고 있는 병원체가 다양할수록, 해당 종은 새로운 감염에 보다 잘 저항하는 특징을 보인다. 개체마다 면역력이 다양해, 일부 개체가 감염되더라도 다른 개체는 면역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유행으로 번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 때문에 감염병에 매우 취약해졌다.
 
약 7만5000년 전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의 폭발로 아프리카 대륙이 추워졌다. 이 사건으로 당시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는 약 1만 이하로 감소했다. 인류의 개체수가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몸 속에 기생하던 병원체의 다양성도 크게 감소했다. 또 인간은 약 100만 년 전부터 음식을 불에 익혀 먹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체에 들어오는 병원체의 수와 종류를 급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체 수준에서는 불의 사용이 음식을 통한 감염을 막는 순기능을 하지만, 인구 집단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병원체 다양성이 감소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또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병원체가 득실대던 열대 우림을 떠나 사바나, 혹은 이보다 더 척박한 땅으로 이동했다. 이 역시 노출되는 병원체의 종류를 감소시켰을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진화적 사건을 통해 인류는 다른 동물종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수의 병원체만을 몸 속에 보유하게 됐다. 이를 ‘병원체 병목현상’이라고 한다. 다른 동물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갑자기 숙주를 바꿔 인간에게 침입할 경우, 인간은 그 공격에 맥없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밀림을 떠나지 않은 침팬지 등의 영장류는 훨씬 다양한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인간에게 발생하는 주요 감염병의 5분의 1이 영장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타를 넘어, 감염병을 넘어
 
사스 사태 이후 이뤄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스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는 사향고양이가 아니라 중국 남부지역에 서식하는 관박쥐였다. 상당한 수의 야생관박쥐에서 사스 항체를 발견한 것이다. 사향고양이는 박쥐로부터 바이러스를 옮긴 중간숙주 역할을 했거나, 혹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박쥐에 의해 감염된 피해자에 불과했다. 중국 남부에서는 박쥐를 요리 재료로 쓰므로, 바이러스가 중간숙주를 거치지 않고 박쥐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파됐을 가능성도 있다.
 
박쥐는 약 5000만 년 전에 처음 진화한, 가장 오래 된 포유류 중 하나다. 긴 시간 동안 분화가 많이 일어나서, 약 1000 종에 달한다. 이는 전체 포유류 종의 20%에 해당하는 수다. 따라서 이들이 품고 있는 바이러스의 다양성은 상당하다. 게다가 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에 널리 분포하고 있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기도 한다. 병원체를 쉽게 전파할 조건이 모두 갖춰진 것이다. 그래서 감염병 학자들은 신종 바이러스의 주요 원인으로 유인원, 설치류와 함께 박쥐를 주목하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 역시 낙타는 중간숙주일 뿐이고, 자연숙주는 박쥐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낙타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메르스 감염자가 있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낙타를 훨씬 많이 키우는 소말리아나 케냐에는 메르스 감염이 거의 없다. 다만 아직 어떤 종이 숙주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낙타가 메르스를 인간에게 옮긴 중간숙주라 하더라도, 수천 년간 충실하게 봉사해 온 낙타에게 그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긴 진화적 역사를 통해서 병원체에 점차 취약해진데다가, 수많은 동물을 인간의 입맛에 맞게 길들였으며, 복잡한 도시생활을 하는 인류에게 신종 감염병의 유행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신종 감염병은 대개 병원, 그리고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비위생적인 병원 환경으로 인한 감염을 차단하고, 도시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신종 병원체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 연구하고 적절한 예방백신과 치료약을 개발하면 메르스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도 잘 길들일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Part 1. MERS 진실 혹은 거짓
Part 2. 의료인류학으로 본 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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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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