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메르스 첫 감염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여러 언론에서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40%에 달하는 치사율.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 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971명 중 356명이 사망했다. 계산하면 사망한 비율은 36.6%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계산대로라면 메르스에 감염된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확률적으로 반드시 죽는다. 메르스와 자주 비교되는 사스(SARS)의 사망자 비율이 4~5%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하지만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2003년 월간 ‘복지동향’ 기고에서 “환자의 수와 사망자 수의 단순 비율로 치명률(치사율)을 계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메르스나 사스 등 호흡기질환은 기존에 질환이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사망률 차이가 매우 크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에서 배포한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 위원장의 자료에 따르면, 메르스 감염환자 중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치사율이 45.2%인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12.3%에 그쳤다.
이처럼 기저질환이라는 변수에 따라 사망률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치사율과 함께 상대위험도(relative risk), 기여위험도(attributable risk)를 함께 명시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상대위험도는 위험이 있는 사람의 치사율을 위험이 없는 사람의 치사율로 나눈 값이다. 메르스에서 기저질환을 하나의 위험으로 간주한다면, 상대위험도는 3.67, 약 4배가 된다. 즉,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사망할 확률이 4배 가량 높다는 의미다. 기여위험도는 위험요소가 질병에 의한 사망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위험이 있는 사람의 치사율에서 없는 사람의 치사율을 뺀 값이다. 즉, 사망자 중 32.9%는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외에도 메르스 치사율이 40%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모집단의 설정이다. 우리가 40%라고 집계한 사례의 대다수는 중동에서 발생했다. 메르스 최초, 최다 발병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의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가 격리 대상자가 감염이 의심될 만한 증상이 보이면 바로 진단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메르스 진단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우리나라만큼 많지 않다. 임현술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료여건이 좋지 않다보니 증상이 심각한 사람들만 진단을 받게 된다”며 “중동에서 메르스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은 이미 상태가 심각했던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 메르스 치사율은 10%대로(6월 21일 현재), 기존에 알려졌던 치사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임교수는 “아직 메르스에 대한 연구도 적고 표본도 작아 정확한 수치를 논의하기엔 이르지만, 메르스에 대한 감시체계에 따라 치사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공기전염이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기로 전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다.
메르스나 사스 등 호흡기계 전염병의 가장 보편적인 감염방식은 ‘비말감염(droplet infection)’이다. 비말은 날아 흩어지는 물방울로 침이나 눈물 등 사람의 분비물이 이에 해당한다. 감염자의 비말이 직접 입이나 코로 들어와 감염되는 경우도 있고, 비말이 묻은 물건, 매개물을 통해 전염될 수도 있다. 문제는 지름이 5μm(1μm는 100만 분의 1m) 이하인 아주 작은 비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에어로졸(aerosol)’이다. 에어로졸은 병원 내에서 인공기관지 삽관 등 시술이 있을 경우에 발생하는데, 입자가 작고 가벼워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다. 하지만 에어로졸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에어로졸로 감염되기란 쉽지 않다. 크기가 작은 만큼 그 안에 포함된 바이러스의 양도 적을뿐더러 환기구를 통해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외부 환경으로 빠져 나간다.
공기 전파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던 평택성모병원의 경우는 예외사례다. ‘하필’이 세 번이면 사고가 발생한다고 했던가. 하필 최초 환자가 그 병원에 입원했던 시기는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배출되던 때였고, 하필 최초 환자가 입원한 병실에만 환기구가 없었으며, 하필 그 병실은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중앙에 있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전 대청병원을 보면 공기 전파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는 휴게실을 기준으로 감염자가 있던 병동의 반대편 병동에서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 교수는 “만약 메르스 바이러스가 공기로 퍼졌다면 이 정도로 사태가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스와 매우 유사하다고 알려진 사스의 경우, 홍콩의 아파트 단지인 ‘아모이가든’에서 에어로졸로 집단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사스 감염자의 배설물이 아파트의 오수 시스템을 오염시켰고, 이 오수의 작은 에어로졸이 아파트 각 층 욕실바닥의 하수구를 통해 빨려 들어와 아파트 주민을 집단으로 감염시킨 것이다. 이럴 가능성은 없을까.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가능성이 높진 않다’고 답했다. 천 교수에 따르면 아모이가든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사스는 메르스와는 다르게 비말보다는 배설물로 감염된 사례가 더 많다. 메르스도 배설물이 하나의 감염 경로로 추정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감염 사례는 없다. 또 다른 원인은 홍콩의 배수시설이다. 건물 안에는 공공 하수도에서 나오는 유해한 가스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U자 모양의 트랩(하우스 트랩)이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는 이 트랩이 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홍콩은 텅 비어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에어로졸이 이동할 공간은 없다. 천 교수는 “아직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모이가든처럼 메르스가 전파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첫 환자가 나타난 후 사람들 가장 궁금했던 건 바로 치료제의 유무였다. 안타깝게도 2012년에 처음으로 나타난 메르스의 치료제를 개발하기엔 전세계 제약회사들은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치료법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건강한 사람이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보다 살 확률이 높은 이유는 면역체계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타미플루(신종플루 치료제)와 같이 딱 떨어지는 치료제가 없을 뿐이지 면역력을 높이면 완치할 수 있는 병”이라며 “현재 병원에서는 면역증강제인 인터페론제를 사용해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영국의학전문저널 ‘랜싯(Lancet)’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메르스에 걸린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인 ‘리바비린(Ribavirin)’과 인터페론제 ‘페가시스주’를 투여했을 때 생존자 수가 2배 가량 늘어났다.
완치된 사람의 혈장을 투여하는 ‘혈장주입치료법’도 있다. 완치된 사람의 혈장에는 병원체에 대한 항체가 존재한다. 여기서 항체를 따로 분리해 대량으로 만들어내면 치료제가 된다. 하지만 항체를 분리해 배양하고, 또 임상실험까지 마쳐 치료제를 생산하는 데에는 적어도 5~10년은 걸린다. 지금 당장은 해결책이 될수 없다. 그래서 적은 양의 항체라도 들어있는 완치자의 혈장을 주입하는 것이다. 신종플루, 사스, 에볼라에 이 방법을 사용해 환자의 상태가 개선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 6월 12일 우리나라에서도 메르스 중증환자에게 이 방법을 시도했다.
현재로서는 메르스의 앞날을 예측하긴 어렵다. 현재까지 신규 확진자 발생 수를 비교해보면, 80여 명을 감염시킨 14번 환자로 인해 6월 8일 최고점을 찍었다가 현재는 점점 줄어가는 추세다(위 그래프 참고). 하지만 메르스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전염병과는 조
금 다르게 ‘슈퍼전파자’가 있기 때문에 진정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하긴 이른 감이 있다. 현재 ‘메르스 감염 예측 모델’을 만들고 있는 정은옥 단국대 수학과 교수는 “확산될 것이냐, 진정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감염자가 단위시간 동안 만나는 사람의 수(contact number)”라며 “격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면 메르스 역시 자연스럽게 잦아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확진 환자의 노출기간이 메르스 최대 잠복기인 14일을 지나지 않은 병원이 30군데다(6월 21일 기준). 다시 말해, 30군데 병원 중 어딘가에서 또 슈퍼전파자가 나올 수도 있다. 6월 말이나 돼야 모든 병원의 최대 잠복기가 지난다. 그 때까지 또 다른 확진자 소식이 없기를 기원한다.
최신 메르스 소식(과학동아 데일리) www.dongaScience.com/special/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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