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의존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서서히 사람을 파멸시키는 진행성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마시자. 한잔의 술…"
한동안 금지되었던 가수 이장희의 권주가가 해금됨과 때를 맞춰 장안은 온통 술얘기로 가득하다.
연일 계속 쏟아져나오는 음주운전 사망자 소식, 술과 지방간(肝), 술과 피부 등 술과 관련된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즐기는 사람들의 신체를 서서히 혹은 급작스럽게 파멸시키는 술은 인간의 정신세계마서 오염시키고 있다.
술에 취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술 즉 알콜을 금방 산화시켜 이산화탄소와 물로 바꾸는데 소질있는 사람이 바로 '타고난' 술꾼. 이들의 간에는 알콜산화효소가 많다.
술을 먹으면 얼굴이 빨갛게 되는 까닭은 알콜이 혈관의 신경을 자극, 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동시에 심장이 빠르게 고동쳐 혈행(血行)이 왕성해진 탓인 것이다.
한편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실제로 체온이 상승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느낄 뿐이다.
음주량이 많아지면 알콜은 완전히 산화되지 않고, 중간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의 형태로 남게 된다. 이 아세트알데히드가 바로 음주 후 두통과 숙취의 원인 물질.
상습적인 음주는 간(肝)의 지방이 덩어리지는 간경변을 일으킨다. 또 간의 기능이 떨어져 혈관과 심장 등에 지방이 축적되기도 한다.
알콜의존증은 가족성 질환
오늘날 우리 사회도 현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음주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알콜의 대량생산과 장기저장이 가능해짐에 따라 술 소비량이 급증되고 있다. 또한 종전의 막걸리의 선호가 소주나 양주등의 독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국가기관에서 행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남자중 7%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음주남용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는 사회적 문제로서 외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실정이 된 것이다. 더욱 걱정스런 것은 최근 3~4년 사이에 청소년, 여성의 음주남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의 통계에 의하면 성인 남자 10명중 7명은 술을 마시며, 술 마시는 사람 12명중 1명은 알콜중독자가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 의학적으로 알콜중독이란 급성중독상태를 가르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만성중독상태인 경우엔 알콜의존증이란 용어가 더 타당하다. 요컨대 알콜의존증이란 술을 무절제하게 마시는데서 오는 병.
술이란 절제있게 마시면 사회생활의 즐거움을 더해 줄 수도 있지만 무절제하게 마시면 개인적인 파탄은 물론 사고 질병 등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단축시키는 물질이다. 알콜의존증이 무서운 이유는 이 병이 진행성이라는 점이다. 마치 결핵처럼 초기상태에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잘 모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 중기나 말기에 들어서면 몸과 정신을 동시에 파멸시켜 간다. 또 가정과 학교, 직장을 심하게 황폐케 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병의 특징으로 인해 인생의 주기상 가장 완숙할 시기인 40, 50대에서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그 직장내에서 한창 중요하게 일할 나이에, 가정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 필요할 때 발병한다. 알콜의존증이란 병은 가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모든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알콜의존증은 한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가족성 질환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알콜중독자란 길거리에 쓰러져 대낮에도 술에 만취돼 있는 부랑인과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알콜의존자의 약 95%는 필요한 고등교육을 받은 보통의 시민들이다. 그들 중 반수정도는 좋은 직장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알콜의존증을 감추고 있다.
또한 알콜의존증은 특별한 성격적 결함이나 특수한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병도 아니다. 단지 술을 무절제하게 마시는 데서 오는 병이므로 증상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된 점은 조절할 수 없는 음주습관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문제나 갈등으로부터 회피하거나 도망가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알콜의존증은 시작된다.
의학적으로 알콜의존을 정의하는데 여러 기준이 있고 상당한 논란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음주빈도, 음주량, 음주 후 기억력 소실 등도 객관적인 진단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알콜의존증환자는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가? 술과 관련된 사고로 법적 조치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 술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를 자주 빠지거나 지각 또는 휴직한 적이 있는 경우, 술로 인해 부부간에 심한 불화 별리 혹은 이혼한 경력이 있는 경우, 주인성(酒因性) 신체질환, 즉 알콜성간염 지방간 간경화증 등의 질환이 발병한 경우, 이상의 4가지 중 한가지 사항만 있어도 이는 명백한 알콜의존증환자라고 보아야 한다.
평균수명이 10년 이상 단축돼
일단 의존성이 생기기 시작한 초기단계에서 음주자들은 매번 술을 끊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하지만 결국 금주에 실패하게 된다. 오히려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분아래 더욱 자주 술을 마신다. 이때는 술에 대한 내성이 증대되어 과거보다 많이 마셔야 이전의 효과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보통은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골아떨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다.
실제로 초기상태에서 술 잘 마시는 사람과 알콜의존 초기단계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알콜의존의 중기단계에 들어서면 술 마시는 것을 가족이나 친지에게 속이고 감추려든다. 술 마시는 일이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고 이때는 많이 마셔도 좋은 기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말기단계에 이른 음주자들에게 있어서 술은 가족이나 직장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된다. 마치 술을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또한 고독감에 빠지며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고립되는 느낌을 갖는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믿지 못하고 피하게 된다. 점차 혼자 지내려는 경향이 많아지고, 항상 불안과 초조감에 싸여 지낸다. 또 의욕과 능률이 떨어지며 직장이나 학교에서 소외당하게 된다.
더욱이 이때는 술독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다. 식욕이 없어지고 손이 떨리고 간혹 헛것이 보이고 전신무력감이 생긴다.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결국 알콜의존증은 죽음으로 끝을 맺기 십상이다. 정신과 신체 모두에 치명적인 파멸을 초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알콜의존증환자들의 평균수명이 일반인들에 비해 10~12년이 짧다는 통계는 이를 증명한다.
알콜의존증환자들은 '부정'(denial)과 '합리화'(rationalization)라는 심리적 방어기능을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알콜의존상태를 벗어나려면 스스로 치료적 도움을 청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임상경험으로 보면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의 치료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진행성 질환의 동반자나 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알콜에 빠져있는 가족을 진정으로 도우려는 노력은 훗날의 불행을 예방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알콜의존증을 해결하는 치료적 대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환자의 치료에 임한다. 술이 그렇게 좋았는지 아니면 해로웠는지를 환자에게 물어봄으로써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술이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약물의 하나이며 어느 물질보다도 습관성이 높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