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2. 광대뼈가 높을수록 진실한 사람이라고?

얼굴에서 美를 찾다

PART 2. 광대뼈가 높을수록 진실한 사람이라고?

“그녀의 싸늘하게 높은 코, 단정하지 못한 입 언저리, 촉촉하게 젖은 눈, 그런 것 전부에서, 일순간, 나는 달빛 아래의 우이코 모습을 보았다.” _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중

아름다움에 경도된 한 청년의 정신적 방황을 그린 일 본 소설 ‘금각사’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남자는 친구가 유혹하려는 여성을 본 그 순간, 어려서 자신을 무시했 던, 아름답고 도도한 다른 여성(우이코)의 얼굴을 떠올 린다. 바로 다음 순간, 주인공은 그 여성이 기억 속의 여성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닮은 것은 그저 ‘도도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느낌뿐이다. 그런데 궁 금하다. 도도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을, 주인공은 어 떻게 한 순간 얼굴을 본 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을까. 싸늘하게 높은 코였을까. 혹은 단정하지 못한 입 언저리? 촉촉하게 젖은 눈? 무엇보다 얼굴만 보고 사람의 성격 을 파악한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얼굴에서 美를 찾다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얼굴이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된 계기를 성선택에서 찾는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저서 ‘진화심리학’에서 얼굴과 관 련한 여성의 매력 요소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두툼한 입술, 깨끗한 피부, 부드러운 피부, 맑은 눈,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이다. 버스 교수에 따르면, 티 없는 피부는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았고, 상처도 잘 낫는 좋은 유전자를 지녔다는 뜻이다. 안색이 좋으면 병 이나 상처가 없었다는 뜻이고, 혈색까지 느껴지면 건강하다는 신호가 된다. 건강한 젊은 여성일수록 머리카락이 더 길고 질도 좋다. 따라서 이런 여성을 선택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유리해진다.

버스 교수는 얼굴의 전반적인 비율이 보여주는 ‘여성적인 매력’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두툼한 입술, 큰 눈, 얇은 턱, 높은 광대뼈, 입과 턱 사이의 짧은 거리, 얼굴의 대칭성’ 등을 의미한다.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다시 말해 성적 능력이 퇴화하기 시작하면 같이 줄어드는 특성들이다(생기 없는 입술, 주름살로 뒤덮인 눈, 늘어진 턱과 쳐진 광대뼈, 일그러진 얼굴). 역시 성선택 으로 얼굴의 매력을 평가한 대목이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보다 ‘남성 적인 얼굴’, 즉 눈두덩이 크고 광대뼈가 나왔으며, 아래턱이 더 길고 넓으며 좌우가 대칭적인 얼굴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광대뼈와 턱 이다. 남녀 모두 광대뼈와 턱이 발달한 사람을 매력적으로 꼽았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광대뼈 축소술’, ‘사각턱 교정’ 같은 성형수술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는 이들의 발달을 전혀 다른 진화적 시 각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미국 유타대 의대 데이비드 캐리어 교수팀은 지난 6월, 인류의 광대 뼈와 턱뼈가 육탄전 시 ‘주먹질’에 대항하기 위해 발달했다는 연구 결 과를 ‘생물학 리뷰’에 발표했다. 이들은 덴마크에서 주먹다짐을 하 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 1156명의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그 결과 앞 얼굴이 68.5%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 먹질을 하면 열에 일곱은 얼굴을 강타한다는 것이다. 얼굴을 맞았 을 때 더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광대뼈와 턱이 튼튼하게 발달한 사람 이다. 연구팀은 이런 이유로 인류에게 광대뼈와 턱이 점점 진화했을 것이라 고 결론지었다. 이들이 발달한 얼굴을 선호하는 것도, ‘싸움에 강하다’는 신 호로 해석했기 때문이 아닐까.


뇌는 얼굴을 통해 사람을 파악하고자 진화했을 것이다.

표정을 둘러싼 얼굴과 뇌의 숨바꼭질 얼굴은 성적 능력이나 ‘맷집’만 드러내는 게 아니다. 성격이나 감정을 파 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 칼텍 분자생물학과의 도리스 차오 교수(당시 하버드 의대 연구원)는 2008년 fMRI 실험을 통해 뇌의 안 와전두피질에 얼굴 인식과 관련한 부위가 있으며, 감정이 담긴 얼굴을 봤 을 때 이 부위가 더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인류가 다 른 사람이 얼굴에 드러내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는 뜻이다.

보다 고차원적인 판단에도 얼굴이 관여한다. 올해 8 월에는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 람인지 판단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대 심 리학과 조나단 프리먼 교수팀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1초 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신뢰할만한지 혹은 신뢰하기 어려운지 말하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진을 흘끔 본 것만으로 상대가 믿을만 한지(우리 편인지 혹은 적인지) 판단했다. 연구팀은 구체 적으로 얼굴의 어떤 부분이 신뢰성을 주는지도 알아냈 는데, 특이하게도 눈썹과 광대의 모양이었다. 눈썹 가 운데가 쳐지지 않고, 광대가 높을수록 신뢰감이 있었다 (광대뼈는 여기에서도 좋은 역할을 한다). fMRI를 이용 해 관련된 뇌 부위도 찾았는데, 사회적, 감정적 행동과 연관이 많은 편도체였다. ‘믿음직하게 생겼다’는 말이 신 경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얼굴은 더없이 정직하게 감정과 의도 를 표출하고, 뇌는 정확하게 그 의도와 뜻을 읽어내는 것 같다. 세상이 관상가들로 넘쳐나도 할 말이 없다. 그 런데 이상하다. 현실이 그럴까. 얼굴로 성격과 감정을 파 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살면서 무수히 많은 오해를 할까. 왜 세상에는 사기 사건이 많고, 엇갈린 사랑이 느 는 걸까. 관상가는 왜 늘 사기꾼 취급을 받을까. 역설적이지만, 얼굴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생 각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가장 정직해 보이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가 하는 행동이 모두 정 직하다고 철통같이 믿을 자신이 있을까. 실제로 2008년 영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집단 지성을 이용해 이 사실을 확인해 봤다. 먼저 온라인으로 1000여 명의 얼굴 사진을 받았다. 이 때 응모자는 스스로 자신의 얼 굴이 행운이 따르는 얼굴인지, 종교적인지, 믿을만한지 등을 평가했다. 그 뒤 응답에 따라 따로 얼굴을 합성해 그 항목의 평균 얼굴을 만들었다. 즉 ‘나는 종교적이다’ 라고 평가한 사람들을 모아 ‘종교적인 사람’의 평균 얼굴 을 만드는 식이다. 이어 다시 온라인에 얼굴을 공개하고 그 사람의 성격을 물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6500명이 실험에 참여했는데, 정답을 맞춘 사람은 적었다. 여성의 합성 얼굴을 보고 행운이나 종교성을 맞춘 사람은 각각 70%와 73%로 그나마 높았지만, 신뢰성을 맞춘 사람은 54%로 반을 겨우 넘었다. 남성의 합성 얼굴은 훨씬 더 낮았다. 행운을 가져오는 얼 굴은 22%만 맞춰 찍은 것보다 못 맞췄고, 신뢰성과 종교성은 찍은 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눈썰미’는 그리 정확하지 않았던 것이다(남녀의 결과 가 차이 나는 이유는, 여성의 얼굴에 더 정보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여성이 표정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드러낸다는 속설은 사실인 걸까).
김태희와 나의 얼굴, 유전자 차이는 겨우 20개?
 
진화가 빚은 얼굴과 표정의 다양성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기에도 진화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뇌는 분명히 얼굴을 통해 사람을 구분하고 파악하는 쪽으로 ‘똑똑하게’ 진화했다. 하지만 그 동안 얼굴이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얼굴 역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만약 얼굴 표정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특성, 감 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유리했다면 진화는 계속 그 방향으로 진화했 을 것이다(1파트에서 나온 흰 눈동자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절히 의중을 드러내는 것 못지 않게, 속을 숨기거나 속이는 것도 중 요했다. 그래서 얼굴 역시 교묘하게 의도를 숨기고 뇌를 속이도록 복잡하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얼굴을 지 금처럼 알 수 없게,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표정을 지니도 록 진화시킨 것은, 어쩌면 마음을 읽고 싶기도 하고 감 추고 싶기도 한 이율배반적인 인류의 마음 때문이 아닐 까. 그렇다면 하나 더. 미래의 얼굴은 어떻게 변할까. 아 마 미래 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다를 것 이다. 믿고 소통하는 사회일지, 혹은 서로 불신하며 속 마음을 숨겨야 하는 사회일지에 따라 말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진화, 천의 얼굴을 빚다
PART 1. 인류의 얼굴은 왜 점점 작아졌을까
PART 2. 광대뼈가 높을수록 진실한 사람이라고?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진로 추천

  • 심리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