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1. 감춰진 미싱 링크 찾는 신종헌터

살아 있는 미싱 링크를 찾다

 

실러캔스는 부챗살 같은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에 살집이 있다. 이들 일부가 뭍으로 올라오면서 지느러미가 다리로 진화했다는 게 현재 진화론의 정설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에 약 550종의 동물 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당시에는 그것도 많은 숫자였다. 2000년이 지나 18세기에 이르자 현대 생물분류학이 체계를 갖 추기 시작한다. 스웨덴의 칼 폰 린네는 당시까지 알려진 식물 8500종과 동물 4200종 등 총 1만2700종의 생물을 처음으로 정 리해 '신종헌터의 아버지'가 된다. 불과 200년이 지난 현재, 지 구에서 발견된 생물은 190만 종으로 늘어났다.


신종헌터들의 눈부신 공로다. 그런데 아직도 한참 멀었다. 생물학자들은 진핵생물(박테리아를 제외한 생물로 DNA가 핵 막에 담겨 있다)만 수백만에서 1억 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종헌터들이 새로운 생물 종을 발견할수록 자연과 진화 에 대한 비밀도 더 많이 풀리고 있다. 특히 진화의 빠진 고리를 뜻하는 '미싱 링크'는 신종헌터에게 최고의 추적대상이다.

 

살아 있는 미싱 링크를 찾다
 

찰스 다윈이 19세기 중반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가장 공격을 받았던 것은 '중간 종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윈은 화석 기록이 불완전하고 중간 종은 멸종하기 쉽다며 반격했지 만, 근거가 빈약했다. 그러나 193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 견된 실러캔스를 필두로 미싱 링크라고 할 만한 신종들이 곳곳 에서 나타나면서 진화론을 지원하기 시작했다(PLUS 참조). 특 히 생존 환경이 거의 변하지 않는 심해나 고립된 섬은 중간 종 의 독특한 형태, 즉 서로 다른 두 생물이 갈라지기 직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바꿔 말하면 미 싱 링크를 찾는 신종헌터에게는 이곳이 최고의 사냥터다. 대표 적인 곳이 아프리카 동남부에 있는 거대한 섬 마다가스카르다. 세계적인 곤충학자 브라이언 피셔는 10여 년 동안 이곳에서만 800종이 넘는 개미를 발견했다. 특히 2001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한 아데토미어마 속, 일명 '드라큐라 개미'는 그가 발견한 가장 유명한 신종이다.


드라큐라 개미는 자기 무리에 있는 애벌레에 구멍을 뚫어 즙 을 짜내듯 피를 빨아먹는다. '드라큐라'란 별명도 그래서 붙었 다. 왜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할까. 어른 개미가 딱딱한 먹이를 직 접 소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애벌레는 어른 개미를 위해 먹 이를 갈아주는 일종의 '믹서기'인 셈이다.

 

피셔는 이 개미를 찾기 위해 길도 없는 마다가스카르의 밀 림을 헤맸다. 진흙구덩이에 빠진 차를 빼내고 정글칼로 수풀을 헤치던 중 처음 보는 개미를 발견하고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사정없이 물어뜯는 개미떼를 뚫고 개미집을 파헤치다가 피셔 는 깜짝 놀라 멈춰선다.


개미 배의 형태가 개미보다 말벌에 가까웠던 것이다. 개미는 말벌에서 7000만 년에서 1억 년 전에 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 었다. 피셔가 발견한 드라큐라 개미는 이러한 진화 과정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피셔는 "화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 는 것도 대단하지만, 나는 지구에서 이런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는 게 더 대단한 것 같다"고 홈페이지에 올린 영상을 통해 말하고 있다. 지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생물은 이미 멸종 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 미싱 링크는 화석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살아있는 채 발견된다면 상 세한 모습이나 DNA, 생활습성 등을 훨씬 정확 하게 알 수 있다. 오늘도 신종헌터들은 오지에서 미싱링크 신종을 찾고 있다.

 

height:188px; width:333px

 

 

날카로운 눈매로 실러캔스 찾은 신종헌터


 

 

지하감옥에서 살아남아 '진화의 원리' 밝힌 신종헌터
 


대혁명이 프랑스를 휩쓸고 있던 1793년, 한 사제가 지하 감옥 에 갇혔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 안드레 라트레유. 국가에 대한 충성서약을 거부한 탓에 사형을 당하게 됐다. 곧 죽을 운명이었 지만 그는 태연하게 감옥 바닥에 엎드려 하루 종일 딱정벌레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가 관찰하던 딱정벌레는 나중에 밝혀졌 지만 희귀한 신종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사에 관심이 많았던 라트레유는 이 신종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의 대범한(?) 모습 에 감명 받은 군의관의 도움으로 살아서 감옥을 빠져나온 것 이다. 간신히 살아난 라트레유는 사제를 그만두고 동 물학자의 길을 선택한다. 1798년부터 1850년까지 그가 발견해 이름 붙인 신종은 모두 163종. 감옥생 활에서 재능을 제대로 발견한 셈이다.

 

그가 발견한 가장 유명한 신종은 '포르미카 루페센스', 일명 '노예개미'다. 유럽에서 발견 한 이 개미는 다른 개미를 노예로 삼는다. 노예로 삼은 개미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먹지도 못해 굶어 죽는다. 이 종에 속한 개미는 나이가 적든 많 든, 영국에 있든 스위스에 있든 행태가 똑같다. 가까운 종인 '포 르미카 산기니아(분개미)'도 역시 라트레유가 발견한 노예개미 인데, 역시 어느 지역에서든 똑같이 노예를 부렸다. 이 사실은 곧 찰스 다윈에게 전해졌다.


다윈은 라트레유의 놀라운 발견에 서 '본능이 자연선택을 통해 유전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노예 개미의 사례는 진화의 원리를 담은 명저 '종의 기원'에 당당히 실려 있다. 수많은 벌이 본능적으로 정교한 벌집을 만들고, 남 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 어내는 사례와 함께. 신종 덕분에 목숨을 건진 신종헌터는 이 렇게 자연에 은혜를 갚았다.

 

하와이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이고, 생물다양성이 높은 열대지방에 있어 신종 생물을 찾기 좋은 지역이다.

 

LTE급 속도로 진화하는 신종

2005년 미국 리하이대와 메릴랜드대 생물학자들은 엄청나 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신종을 발견한다. 하와이 숲속 에만 사는 귀뚜라미 '라우팔라'였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 면 이 귀뚜라미는 100만 년에 4.17종을 새롭게 만들 정도로 빠 르게 진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치칠리드 어류 다음으로 세계에 서 가장 진화속도가 빠르며, 일반적인 무척추동물보다 10배나 빠르다. LTE급 진화의 비밀은 암컷의 '절대음감'이었다. '히든 싱어'에서 관중들이 미묘하게 다른 음을 내는 가수를 탈락시키 는 것처럼, 귀뚜라미 암컷들은 수컷의 구애노래를 음미하며 약 간이라도 다른 음을 구별해낸다. '암컷의 취향이 아닌' 노래를 부르는 수컷은 교미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 면서 새로운 종이 자꾸 탄생한 것이다. 이 귀뚜라미는 '고속 진 화'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지구의 대변화 밝혀낸 신종헌터
 

역사상 가장 활달했던 신종헌터는 영국의 식물학 자 조지프 돌턴 후커였을 것이다. 그는 다윈의 가장 가까 운 친구이기도 했다. 후커는 영국에서부터 시작해 남극과 히말라야, 인도, 팔레스타인, 모로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를 항해하며 새로운 생물 종을 무수히 발견했다. 인도 양 크로제섬에서만 꽃식물 18종, 이끼류 35종, 지의식물 25종, 해조류 51종을 발견했다.

 

height:266px; width:482px
후커는 새로운 생물 종을 찾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프 리카 남쪽 끝 희망봉에서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들을 발 견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식물 이었다. 또 히말라야 산맥이나 인도 반도의 고립된 산맥, 스리랑카 섬의 고지와 자바의 원추 화산에서 완 전히 똑같은 식물 종을 발견했다. 희한하게도 더운 저지대에서 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보르네오섬의 산꼭대기에 자라는 식 물들은 남호주에 있는 식물 종과 똑같았다. 누군가 산꼭대기마 다 찾아다니면서 식물 씨앗을 뿌린 것 같았다. 심지어 적도 근 처 열대지방을 훌쩍 건너뛰고 남반구 북반구에 똑같은 식물이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후커는 '지구가 주기적인 빙하기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을 내렸다. 북반구가 빙하시대에 돌입했을 때 식물들이 따뜻한 남반구로 후퇴하고, 반대로 남반구가 극심한 빙하기로 돌입하 면 식물들이 북반구로 후퇴한다는 설명이었다. 당시로서는 너 무 혁명적인 주장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구 전역에서 한 날 한 시에 모든 종이 창조됐다는 창조론이 훨씬 그럴듯하게 보 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주장이 옳았는지. 활 달한 신종헌터 후커가 발견한 식물 종의 분포는 전 지구적인 기 후변화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로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height:534px; width:300px

회오리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넌 신종?

 

영국의 동물학자 알버트 귄터는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한 신 종헌터였다. 그는 호주에서 민물고기를 연구하며 수많은 신종 을 발굴했다. 그런데 연구 도중 '갤럭시아스 아테누아투스(뱅어 의 일종)' 등 일부 민물고기가 호주와 뉴질랜드, 멀리 남아메리 카에 걸쳐 발견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바다로 나가면 죽는 민물고기가 어떻게 대양을 건넜을까. 다윈 역시 머리가 아팠다. 창조론자의 귀에 들어가면 공격을 면치 못할 사안이었 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다윈은 여러 가설을 세운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맹렬한 회오리바람에 날아갔을 것, 알이 떠내려갔을 것, 예전에는 바다에 살았던 어류가 민물로 적응하면서 여러 지역으로 퍼졌을 것…. 회오리바람까지 등장하다니 다윈도 어 지간히 급했나 보다.


반세기가 지나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나오면서 이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원래 한 대륙으로 붙어있던 지 역들이 갈라지면서 민물에 사는 생물들이 여러 대륙으로 나눠 진 것이다. 민물고기였던 폐어의 화석이 남반구 전역에서 발견 된 사례도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쓰였다. 귄 터는 살아서는 진화론을 괴롭혔지만, 죽어서는 지구의 거대한 변화를 증명한 신종헌터였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