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혜성처럼 살다간 별나그네

밤하늘의 안내자 박승철 추모기획

과학동아에‘박승철의 밤하늘여행’을 3년 넘게 연재하던 아마추어 천문가 박승철(朴承哲)씨가 갑작스레 우리곁을 떠났다. 장수(將帥)를 연상케 하는 시원한 풍채와 재치 넘치는 화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순간도 식은 적 없는 별에 대한 열정. 혜성처럼 살다간 그의 삶을 눈시린 천체사진과 함께 만나보자.

지난해 12월 30일 뜻밖의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다름아닌 아마추어 천문가 박승철씨가 29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천체관측자이자 천체사진작가였다.


1990년 여름 서강대 옥상에서 14인치 반사망원경을 제 작했을 때의 모습


우리나라 최고의 천체사진가

자연과학 분야 가운데서도 천문학은 아마추어 관측자들의 기여도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크다. 지금도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많은 발견들이 아마추어 관측자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우리나라 천문학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천문학자들이다감당해내지못하는실제관측분야에크게기여해왔고, 앞으로도 혜성의 발견과 같은 가치있는 업적을 남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1964년 3월 5일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그의 마음속은 어린 시절부터 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네 면사무소 마당에서 TV를 통해본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모습, 어렵게 구해보던 어린이 잡지에 나오는 신비로운 우주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고향의어두운밤하늘을뒤덮은무수한별들은어린시절의그를사로잡고말았다.

자신이 직접 창단한 서강대 천문동아리 일기장 1권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73-5년 사이 여름날 어느 저녁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굉장한 눈요기를 했는데, 혜성이었다. 초저녁 서쪽하늘에 걸린 이 거대한 혜성이 나의 삶을 결정지어버렸다.”


소백산천문대 관측실에서 관측하던 모습.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결성 주도

그가 본격적으로 별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86년 서강대에 입학한 후부터다. 1987년 서강대 천문반을 창단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꼭꼭 쌓아왔던 별에 대한 열렬한 열정을 펼쳐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단지 뛰어난 천체사진작가로만 생각하지만, 당시 그는 한국 최고의 망원경 제작자를 꿈꾸었다. 당대 최고의 망원경 제작자였던 나은선, 이만성 등과 교류하며 그는 망원경 제작에 열을 올렸다. 결국 1988년 그는 당시로서는 대구경인 10인치 반사경을 훌륭하게 만들어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년 후에는 한발자국 더 나아가 14인치 반사경에 도전해 완성한다. 또 20인치 망원경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에서 반사경을 수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망원경을 이용해 그는 온 밤하늘을 샅샅이 살피며 관측에 열을 올렸다.

대학시절 그의 별에 대한 열정은 기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렬했다. 그는 별을 보느라고 학교를 11학기만에 졸업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별에 바쳤노라는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동아리 후배들과의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별을 열심히 보지 않는다고 항상 질책당하던 그 후배들은 지금도 여전히 별을 보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별친구로 남아있다.

1989년 서울천문동호회 결성과 1991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KAAS)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그는 우리나라 아마추어 천문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1991년 여름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2년에는 천문잡지‘월간 하늘’의 창간을 주도했다. 얼마 안가서 발행이 중단됐지만 이 책은 당대 최고의‘별쟁이’들이 모여서 만든 잡지답게 소중한 자료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박석재 박사는 이 두 사건을“한국 아마추어 천문학 발전에 기여한 커다란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소백산천문대 문지기에서 관측가로

1993년 그는 홀연 소백산천문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소백산천문대에서 일하기까지의 일화는 이미 아마추어 사이에선 전설같은 이야기로 남아있다. 관측과는 상관없는 직책으로 천문대에 취직한 후 소백산천문대를 대표하는 사진들을 무수히 찍어냈다. 이런 그의 이야기는 미국 팔로마산천문대 건설때 잡역부로 일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허블과 함께 우주팽창의 발견에 큰 역할을 한 밀튼 휴메이슨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소백산천문대에 들어간 이후부터 그는 사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다른 관측자들에 비해서 사진을 시작한 것은 상당히 늦은 편이었지만 그의 사진은 일취월장했다. 그가 찍은 1996년 햐쿠타케 혜성과 1997년 헤일-밥 혜성의 사진은 소백산에서 그가 들인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소백산 천문대라는 좋은 환경과 장비들이 그것을 뒷받침해줬지만, 별을 보기 위해서라면 무모하리만큼 적극적이었던 그의 열정과 매서운 겨울산의 추위를 버텨내며 몇날밤을 지새우는 노력이 그런 환경을 비로소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줬다. 이때부터 그는 한국 천체사진의 독보적인 존재의 자리에 올라섰다.

별사랑 여러 사람과 공유 원해

1998년 갑자기 그가 천문대를 그만두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별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만한 생활에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뿌리치고 나왔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별을 보던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 자신만의 천문대를 짓는 것이었다. 그는 개인천문대 건설을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이미 측량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편 그는 그때까지 다소 개인중심적으로 진행되던 별에 대한 애정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틈틈이 몇몇 사설천문대의 운영에도 참여하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천문교육 프로그램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날의 사고도 감기몸살로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사설천문대의 행사를 치르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문대를 그만둔 이후로 그는 우리나라의 주요 관측지와 호주, 뉴질랜드 등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사진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남에게 널리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좀처럼 남들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던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불과 20일 전에 홈페이지(www.star-party.com)를 개설하고, 주옥같은 사진과, 사진촬영의 방법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측자이자 천체사진작가였지만 별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은 혜성에 넋을 잃던 어린아이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별에 대해 생각했으며, 끊임없이 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별을 보고 자랑하기를 좋아했으며, 그 자랑을 받아주고 그에게 별을 본것을 또한 자랑하는 이들을 좋아했다.

이제 그는 떠나고 없지만, 끊임없이 별을 쫓았던 그의 삶은 별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밤하늘의 어느 별보다도 더 밝은 별로 뜰 것이라 믿는다.

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승철
  • 김동훈 아마추어 천문가
  • 김지현 아마추어 천문가
  • 이한주 아마추어 천문가
  • 심재철 아마추어 천문가
  • 한종현 아마추어 천문가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