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계적인 반전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발발이 임박한 제2차 걸프전은 공격 효과는 극대화하면서도 인명과 재산 피해는 최소화하는 ‘경제적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언론의 시각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정보화 시대의 첫 전쟁이 시작되는가’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미국이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최첨단 무기와 새로운 전술들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2월 17일 보도했다. 1991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의 1차 걸프전이 약 40일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아들 부시가 대를 이어 수행하는 2차 걸프전은 2-3주 내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미군이 준비한 최신 무기들의 특징은 ‘최소 파괴무기’로 요약된다. 막강한 화력으로 적을 압도하기 위해 무조건 살상력을 높인 예전의 대량살상무기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뉴스위크 특집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자폭탄(e-bomb)이라는 것이 있다. 크루즈 미사일에 실려 운반되는 탄두로서 폭발시 번개처럼 고에너지파를 방출해 영향권 안의 모든 전자장비를 마비시킨다. 현재까지의 테스트 결과로는 성능이 일정치 않았다. 엔지니어들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1년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에 쳐들어가는 첫날 이 전자폭탄은 바그다드 시내와 그 주위에 있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주요 지휘통제소 벙커들 위에서 터질 것이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되면 전기가 나가면서 컴퓨터들이 꺼지고 전화선도 죽을 것이다. 후세인 일당은 고요한 어움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외로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미군이 공격 개시후 48시간 내 이라크 방공망과 지휘통제소, 대량살상무기 은닉장소, 그리고 ‘지휘부 목표물’에 약 3천발의 정밀폭탄을 퍼부어 후세인과 그의 아들들 및 측근들의 제거를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칩이 총과 대포
오늘날 인류는 정보혁명으로 인한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18세기 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2백년 동안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온 산업문명 패러다임이 정보문명 패러다임으로 전환됨에 따라 전쟁 수행방식과 양상도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산업시대의 전쟁 방식 및 양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보전쟁과 네트워크 중심전쟁 같은 새로운 전쟁형태가 발전되고 있다.
19세기가 총과 대포에 의한 전쟁이었다면, 1차 세계대전에는 탱크와 폭격기가 등장했고, 2차 세계대전에는 원자폭탄이 선보였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인공위성, 컴퓨터, 전투로봇 등이 전쟁터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보가 흐르고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새로운 전장으로 부각되면서 해커들과 해커 대응군도 전쟁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런 사이버 전사들에게는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칩이 곧 ‘총’과 ‘대포’다.
1990-1991년 벌어진 1차 걸프전은 이미 미래의 전쟁양상이 고도로 과학화된 정보전쟁과 미사일 전쟁으로 발전될 것임을 예고했다. 항공우주전력, 미사일, C4I(지휘·통제·통신·전산 및 정보,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 전자전 기술이 전장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전쟁과 반전쟁’을 통해 걸프전을 제3의 물결 전쟁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3의 물결 시대를 가능하게 한 매개체는 컴퓨터의 개발이고 이것이 네트워크화 됨으로써 가능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정보혁명은 현대 전쟁 수행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즉 걸프전은 과거의 전쟁과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 정춘일 박사의 ‘21세기의 새로운 군사 패러다임’에 따르면 걸프전 양상의 특징은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차 걸프전은 수직좌표가 주가 되고 수평좌표가 보조가 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예를 들어 걸프전에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인공위성 같은 우주자산을 이용해 상대방을 완전히 파악하고 정보와 영상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장의 공간이 지상·해상에서 공중·우주로 확장됨에 따라 평면좌표가 주된 역할을 맡고 수직좌표는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던 전쟁 수행방식이 수직좌표가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평면좌표는 보조적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소프트 킬 전력이 위력을 발휘한다
둘째 1차 걸프전은 파괴 및 살상의 탈대량화를 보여준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라크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나 독일군 못지 않게 철저히 파괴·손실됐으나, 수도 바그다드 거리는 크게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군사표적만을 정확하게 식별해 정밀하게 명중·파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차 걸프전은 다국적군이 최소의 희생(1백38명)으로 최단기간 내에 상대인 이라크에게 최대의 손실(사상자 10만명, 포로 10만명 이상, 기갑 전투차량 4천5백대 파손 등)을 입히고 결정적으로 완승한 스마트한 전쟁이었다.
셋째 1차 걸프전은 소프트 킬(soft kill) 전력이 하드 킬(hard kill) 전력 못지 않게 위력적임을 보여준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는 정보·지식 기반의 소프트한 전력으로 무장한 다국적군이 무기·장비 위주의 하드한 전력으로 무장한 이라크군을 마비·무력화시켰다. 이라크군은 눈과 귀는 없고 몸통만 비대한 상태에서 짧은 팔·다리만 허공에 휘저었음에 반해, 미국군은 천리안을 통해 상대의 급소만을 골라서 정밀 타격수단으로 일순간에 무력화시켰다. 센서체계와 지휘통제체계, 지능화 무기 등 실리콘 전력의 위력이 입증된 것이다.
넷째 걸프전에서는 병렬전(Parallel War)이라는 새로운 전쟁방식이 위력을 발휘했다. 병렬전이란 적의 여러 시스템을 거의 동시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적의 전략·작전·전술적 목표들을 병렬적으로 공격할 경우, 적은 방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격에 의한 피해를 복구할 수도 없다. 이는 신체의 여러 군데에 동시적으로 상처가 생길 경우 사망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걸프전에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우주자산과 항공능력, 정밀 타격능력을 이용해 이라크의 전략적 표적을 거의 병렬적으로 공격했다.
요컨대 1차 걸프전은 정보 문명시대의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을 보여준 최초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산업문명시대의 전쟁 수행 개념과 방식 및 수단은 정보문명시대에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입증했다. 다국적군은 도달거리가 긴 정밀유도무기와 멀리 볼 수 있는 센서체계, 넓은 지역을 통제할 수 있는 지휘통제 네트워크체계로 이라크군을 궤멸시켰다. 전력의 양적 규모는 의미가 없고 소프트 전력의 우위가 전쟁 승패의 관건이 됐다. 이러한 점에서 1차 걸프전은 항공우주, 인공위성, 정보체계, 정밀유도무기, 수직좌표 등이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의 핵심어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었다.
전장이 된 사이버공간
1999년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코소보전에서는 걸프전에서보다 한단계 더 발전된 첨단 무기체계가 활용됐다. 아울러 미래전의 한 형태로서 사이버전 양상이 출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차 걸프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코소보전에서도 센서체계와 지휘통제 네트워크체계를 기반으로 해 정밀 유도무기와 스마트 폭탄이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면 전함과 전폭기, 잠수함에 탑재된 전천우형 토마호크미사일이 인공위성으로부터 중요 지형과 비행경로, 표적에 대한 데이터를 전송받아 유고의 주요 군사목표들을 정확하게 타격·파괴했다.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위성항법장치(GPS)가 유도하는 미사일 16기를 동시에 발사시켜 16개의 목표물들을 한번에 공격할 수 있는 B-2 폭격기가 처음으로 운용됐다. 그런가 하면 흑연가루를 상공에 뿌려 전선 등에 접착케 함으로써 송전의 마비를 가져오는 흑연폭탄을 유고의 베오그라드와 세르비아에 투하해 이 지역을 암흑으로 만들었다.
이 전쟁에서 특기할 것은 인명 희생과 물리적 파괴가 이뤄지는 현실 전장에 추가해 시공을 초월한 비물리적 사고 영역인 사이버 공간이 전장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전장이 지·해·공·우주를 초월해 제5의 공간인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예를 들어 코소보전에서 세르비아는 전쟁에 대한 미국내 여론을 악화시키는 등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전자우편물을 일거에 대량으로 보내는 정보테러를 시도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유고연방 대통령의 해외은행 개인구좌 컴퓨터망 비밀번호를 해독해 자금줄의 차단을 시도했다. 한편 중국인들은 나토(NATO)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인해전술식 해커전을 수행해 미국의 행정 웹사이트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CNN으로 ‘생중계’된 걸프전은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간접 참전한 일본 그리고 러시아,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일·러 3국은 모두 걸프전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미래 군사발전의 준거를 새롭게 준비했다. 러시아의 ‘신군사독트린’, 일본의 ‘신방위계획대강’, 그리고 중국의 ‘군사현대화계획’이 그것이다. 또 이 두 전쟁의 양상에 비추어볼 때 향후 첨단 센서체계와 지휘 및 통제체계, 네트워크 체계, 정밀유도무기가 결합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정보전이 확산될 것으로 분석됐다.
사뭇 다른 양상 불러올 수도
이번 2차 걸프전은 표면상으로는 지난 걸프전과 유사한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양상은 사뭇 다를 것이다. 우선 2차 걸프전은 각종 스마트 폭탄의 시험장이 될 전망이다. 스마트 폭탄은 컴퓨터와 GPS를 장착해 정확도를 높이고 악천후에서도 성능에 변화가 없는 인공지능형 폭탄이다. 미군은 1차 걸프전 때 10% 미만이었던 스마트 폭탄의 사용률을 90% 이상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가장 많이 쓰이게 될 스마트 폭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시험을 거친 합동직격탄(JDAMS). 목표물에 평균 30m 이내의 오차로 명중할 정도로 정확도가 높고 고공 원거리 발사가 가능해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건물에 투하된 뒤 몇층에서 폭발할지를 알아서 계산하는 ‘BLU_31’과 건물 내부나 지하 공간으로 뚫고 들어가 터지면서 강력한 열과 압력을 방출, 생화학 무기를 자동 해체하는 폭탄도 있다.
공중 폭발하면서 초강력 자기 에너지파를 내보내 인근지역의 컴퓨터 통신전기시스템을 완전 마비시키면서도 인체에는 무해한 극초단파 폭탄(e-bomb)은 이번 2차 걸프전에서 처음으로 사용된다. 미군은 이 외에도 미군과 민간인 오인 사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병들에게 개인용 GPS 수신기를 지급하고 프레데터 등 무인 첩보·공격기(UAV)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2차 걸프전이 ‘최소 파괴무기’의 경연장이 될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애국주의적 보도’와는 달리 이런 신병기는 일찍이 인간이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예측불허의 살상력과 후유증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2차 걸프전은 미군의 진군과 전쟁 속도도 1차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태세다. 게다가 이라크가 지난번 1차 걸프전처럼 앉아서만 당하지는 않겠다며 미국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피해를 안겨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따라서 생화학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끔찍스런 반격도 예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차 걸프전이 공격 효과는 극대화하면서도 인명 및 재산 피해는 최소화하는 경제적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언론의 낙관적 예측과는 달리 이번 전쟁 또한 파괴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맹신과 자만이 불러올 비극적 파국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