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니까, 모습을 보이면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룡이 활개 치는 ‘쥬라기 월드’의 정중앙에는 거대한 수조가 위치해 있다. 이 수조 속에 몸을 숨긴 동물은 두 쌍의 지느러미와 악어의 주둥이를 가졌다. 하지만 이 동물은 악어도, 공룡도, 상상속의 네시도 아니다. 7000만 년 전 따뜻한 바다를 누볐던 거대한 수중 파충류, 모사사우루스다!
현상금은 최고급 포도주 600병!
모사사우루스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것은 18세기 중반, 유럽에서였다. 1764년, 다양한 해양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던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지역의 한 백악(白堊) 채석장에서 거대한 머리뼈 화석이 발견됐다. 이 화석을 연구한 과학자 마르티누스 판 마룸은 이 거대한 머리뼈가 ‘숨을 쉬는 거대한 물고기’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고래라는 뜻이었는데, 당시 마룸은 고래가 포유류라는 사실을 몰랐다.
놀라운 머리뼈 화석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소문은 네덜란드로 북진하던 프랑스 혁명군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당시 혁명군의 정치지도원이었던 어거스틴 프레신은 이 화석을 프랑스로 가져가기 위해 머리뼈 하나당 최고급 포도주 600병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2개나 되는 머리뼈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화석은 모두 프랑스의 파리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물관에는 화석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없었고, 머리뼈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머리뼈 화석을 모두 프랑스로 빼앗겨버린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이전에 발표된 논문만을 참고해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아드리안 캄퍼는 고생물학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발표한 논문들을 토대로 이 머리뼈의 주인이 거대한 파충류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글과 그림만으로는 연구를 자세히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연구는 1820년대가 돼서야 이뤄질 수가 있었다. 운 좋게 이 거대한 화석을 직접 관찰할 기회를 가졌던 영국의 지질학자 윌리엄 코니베어는 최초의 화석이 네덜란드의 뫼즈 강가 근처에서 발견됐다 해 ‘뫼즈 강의 도마뱀’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모사사우루스란 학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최초로 발견된 이후 58년 만의 일이었다.
머리보다 더 큰 먹이도 한입에 꿀꺽!
모사사우루스는 길쭉한 주둥이와 고깔 모양의 이빨을 가졌다. 때문에 외형이 악어 같기도 하다. 또 지느러미로 변한 네 다리 때문에 수장룡이나 어룡을 닮기도 했다. 거대한 몸집 때문에 간혹 공룡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사사우루스는 도마뱀이다. 방협골이라 불리는 뺨에 해당하는 뼈가 없기 때문인데, 뺨 뼈가 없는 것은 파충류중에서 도마뱀이 유일하다. 뺨에 뼈가 없기 때문에 머리뼈가 유연하며, 입을 보다 크게 벌릴 수가 있다. 다른 파충류들이 한입에 삼키기 힘든 먹잇감을 쉽게 삼킬 수가 있는 것이다.
모사사우루스가 다른 도마뱀처럼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켰다는 증거는 화석기록으로도 발견된다. 2014년 캐나다 로열티렐고생물학박물관의 타쿠야 코니시 박사는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발견된 작고 어린 모사사우루스의 위 속 내용물을 보고했다. 그 안에서는 몸길이가 약 1m나 되는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 어린 모사사우루스의 머리 길이는 약 50cm로 삼킨 물고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물속에서 발버둥치는 먹이를 쉽게 삼키기 위해 특수한 입 구조도 발달시켰다. 이빨이 줄지어 나있는 입천장과, 뒤로 접을 수 있는 특수한 턱관절이다. 이빨이 아래턱과 위턱에 1열씩 솟아있는 인간과 달리, 모사사우루스는 목구멍이 시작하는 지점 바로 앞에 갈고리 같은 이빨이 2열로 발달해 있다. 이런 구조는 모사사우루스가 삼키고 있는 먹잇감이 몸을 빼 도망치지 못하게끔 막아줬다. 뒤로 접히는 턱관절은 모사사우루스가 먹이를 식도로 밀어 넣을 수 있게끔 도와줬다. 결국 모사사우루스의 입속에 한번 갇힌 피식자는 이 포식 도마뱀의 위장 속 외에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고래의 탈을 쓴 도마뱀
지느러미 달린 악어의 외모를 가진 모사사우루스가 도마뱀의 한 종류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이들의 몸 구조를 자세히 보면 사라진 뺨 뼈 외에도 도마뱀과 공통점이 많다. 2010년, 스웨덴 룬드대 요한 린드그렌 박사팀은 보존상태가 뛰어난 모사사우루스류인 플라테카르푸스의 화석을 보고했다(아래 2). 이 화석에는 모사사우루스류의 피부를 덮고 있는 비늘의 흔적이 보존돼 있었는데, 서로 겹쳐진 다이아몬드 모양과 구조가 오늘날의 도마뱀의 것과 많이 유사하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자연사박물관의 아네 스컬럽 박사팀은 모사사우루스의 입천장 구조를 자세히 연구한 결과 이들에게 야콥슨 기관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야콥슨 기관은 파충류의 입천장에 있는 한 쌍의 페로몬 수용기관이다. 뱀을 포함한 일부 도마뱀은 끝이 갈라진 혀를 이용해 공기 중의 화학 물질을 묻혀 야콥슨 기관으로 전달한다. 뼈 화석을 통해 스컬럽 박사가 복원한 모사사우루스의 야콥슨 기관은 뱀의 야콥슨 기관과 유사했는데, 이를 통해 이곳으로 화학물질을 전달하는 혀 또한 뱀처럼 끝이 두 갈래로 갈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도마뱀들과 달리 모사사우루스는 평생을 물속에서 살아가는 수중 생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헤엄을 치기에 적합한 유선형의 몸 구조를 진화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몸 구조는 오늘날의 해양포유류인 고래와 상당히 유사하다. 먼저 물속에서 방향전환을 하는 데 적합하도록 보다 탄탄한 지느러미를 발달시켰는데, 이를 위해 고래처럼 손가락뼈가 많아지는 다지골증(hyperphalangy) 현상을 보였다. 목이 짧아지기도 했다. 짧은 목은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칠 때 목이 꺾이는 것을 막아준다. 최근에는 모사사우루스가 초승달 모양의 꼬리를 가졌음이 밝혀져 점점 더 고래를 닮아가고 있다.
산란을 위해 뭍으로 오르기가 어려워지자 모사사우루스는 몸속에 알을 낳아 새끼를 낳는 난태생으로 진화했다. 수중분만 중에 새끼가 익사하지 않도록 꼬리부터 낳았는데, 이 역시 오늘날의 고래와 같은 방식이다.
백악기의 한니발 렉터
약 70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까지 생존한 모사사우루스는 오늘날의 고래처럼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살았다. 이들은 당시 가장 큰 해양포식자로, 화석기록를 보면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거의 모든 동물을 잡아먹었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모사사우루스의 뱃속 내용물로는 물고기, 바다거북, 그리고 다양한 해양파충류들의 잔해가 있다. 함께 발견되는 암모나이트의 화석에서는 모사사우루스의 이빨자국들이 많이 발견돼, 이들이 무척추동물도 즐겨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동족을 먹기도 했다. 2013년 앙골라에서 발견된 모사사우루스의 뱃속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모사사우루스 화석이 발견돼 서로가 서로를 즐겨 먹었음이 드러났다.
동족까지도 잡아먹는 무자비한 포식자 모사사우루스는 백악기 후기의 바다를 호령하며 왕처럼 살았다. 하지만 횡포는 6600만 년 전, 공룡시대의 종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제 아무리 무시무시한 이빨과 턱을 가진 모사사우루스라도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의 위력을 견딜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