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로보트가 움직이는 미래의 병원은 공포없는 편안하고 친숙한 장소가 될 것이다.
에어로빅 댄스 강습이 이제 막 끝나려고 한다. 30분 뒤에는 이 방이 강의실로 쓰일 것이다. 2019년 7월 20일 저녁의 강의는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에 관한 것이다. 2층에서는 새로 입원한 2쌍의 늙은 부부가 신선한 상어 고기에 파와 쌀밥을 곁들인 저녁밥을 함께 먹고 있다. 모퉁이 부근의 휴게실에는 나이 지긋한 남녀들이 '서울 1987년 여름' 이라는 흘러간 영화를 보고 있다.
고객유치에 신경쓰는 기업체로
휴양지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사실 병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머니의 배에서 밖으로 나온다. 병원에서는 사람들의 출생 증명서에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정보를 기록한다. 그러나 병원은 또한 사람들이 신체를 단련하며 기력을 회복하고 생명을 관리하며, 심지어는 기분을 전환시키기도 하는 장소가 되었다. 게다가, 병원은 이제 빈부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에 이바지하기 위한 사회 단체가 아니다. 그것은 상업적 점포,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사, 고객 유치를 위해 다른 의료기관들과 경쟁해야 하는 기업체인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동시에, 병원의 입원 환자수와 기간이 줄어들 것이고 외래환자 진료소가 많은 환자들의 수술을 떠맡을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함으로써, 의사들은 환자를 입원시킬 필요없이 외래 진료실에서 사마귀나 혹, 점, 그리고 피부종양까지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으며, 까다로운 눈 수술도 시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학상의 진보로 인하여, 이제는 환자의 빈부가 아니라 병원자체의 재정난이 문제거리로 등장한다. 따라서 병원 운영자들은 수입이 감소해가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고객들'을 끌어 올 새로운 방안을 찾고 있다. 그들은 실내 장식과와 협의하여 병원의 환경이 더 쾌적하게 되도록 힘쓰며, 건물 자체가 미학적으로 유쾌한 곳이 되도록 만든다. 2019년의 병원은 여전히 뇌 수술과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시행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주변환경이나 상황은 크게 변할 것이다.
병원에서 건강한 주말을
2019년 경에는, 환자들이 병원의 겉모습, 치료 외적인 특별 프로그램, 치료 비용과 같은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병원을 선택할 것이며, 이에 따라 병원은 일종의 의료 가게가 될 것이다.
예컨대, 전라도와 충정도 지방에서는 여러 병원들이 연합하여 환자용 가격안내서를 출판했는데, 거기에는 허리수술과 관상동맥 보조관을 비롯한 다양한 처치와 물품의 비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국에 걸쳐, 병원들에서는 '고객 관계' 대리인들을 고용하여 환자들에게 특이한 음식물에서 싱싱한 꽃에 이르는 다양한 봉사 품목을 제공하고 있으며, 몇몇 의료기관에서는 될수록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이미 커다란 텔리비전,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 '수행원'과 같은 여러가지 품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인 모두가 점차로 자신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스스로 암이나 심장 질환과 같은 치명적인 병을 예방하려고 노력함에 따라, 병원에서는 상품 목록에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첨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2019년의 병원은 단순히 아픈 사람들의 피난처가 아니라 건강 유지에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병원 운영자들은 남아 도는 병상 및 시설을 채우고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의료 용역을 팔기 위해 서울의 광고업계를 찾아다녔다. 오늘날, 신문뿐만 아니라 텔리비전과 잡지 및 영화에도 조산소에서 '호스피텔' (병원과 호텔의 합성어)에 이르는 다양한 의료기관들을 선전하는 광고가 실리고 있다.
21세기의 부부는 '병원에서의 건강한 주말'을 선전하는 심야 텔리비전 광고방송을 시청할 것이다. 고객들은 병원에서 며칠씩 묵으면서 고통이 따르지 않는 종합 검사, 영양사와의 식이요법 상담, 특별히 준비되는 세끼식사, 고객의 특수한 필요에 상응하는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 그리고 물리치료를 포함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들은 에어로빅 댄스를 연습하고 콜레스테롤이 적은 음식물을 섭취하며 평소보다 더 많은 알파파(波)를 발산하면서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병원의 완전한 컴퓨터화
쉽게 눈에 뜨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더 폭넓은 변화는 병원의 완전한 컴퓨터화이다. 병원의 관리부서, 간호원실, 의학 실험실, 그리고 환자의 머리맡에 설치된 컴퓨터가 모든 주요 정보의 작성, 감시, 기록, 회수를 담당하며, 병원 전체의 '인식 집합체'가 된다. 21세기에는 수백군데의 병원이 수천억원에 상당하는 컴퓨터 체계를 기반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컴퓨터의 역할을 관리부서에 한정시켜 왔다. 그러나 의사, 간호원, 사무원, 그리고 기타직원들은 컴퓨터가 환자 진료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내의 몇몇 병원에서 시험된 한 컴퓨터 진료방법에서는 컴퓨터가 환자의 임상 진료표를 대신한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개발한 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간호원이 환자 곁의 단말기에 특수하게 약호화된 카드를 넣은 뒤 컴퓨터가 진료표에 기록될 정보와 다음에 취해져야 할 진료의 내용을 제시하는 순서로 작동된다. 컴퓨터는 또한 진료표를 이용할 경우 모으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정보들, 예컨대 병원의 도처에 흩어져 있는 실험실의 검사 결과, X선 사진, 여타의 처치들을 한 곳에 보관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문서처리 업무가 간소화됨으로써, 간호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환자를 돌보는 데 쓸 수 있다.
기계 외과의사의 손재주
컴퓨터가 병원의 두뇌가 된다면, 로보트는 병원의 손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병원에는 어느 곳에나, 유능하고 지칠 줄 모르는 로보트들이 갖추어져 있다. 그것들은 환자용 변기를 치우는 일로부터 뇌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어떤 로보트는 자동차 산업에서 이용되는 산업용 팔과 유사한 단순기구에 지나지 않겠지만, 또 어떤 것은 보다 더 복잡하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심지어는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핵의학에서 사용하는 방사능 물질과 질병이 로보트를 공격할 수 없으므로, 로보트의 활용은 더욱 유용하다. 예컨대, 바퀴가 달린 로보트는 납으로 둘러싸인 방사능 발생기로부터 의사에게로 방사능 동위 원소를 전달한다. 발생기 안에 빈 용기를 갖다 놓고 적당량의 방사능 물질을 모아서 의사에게 가져다 줌으로써, 로보트는 인간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는 정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계 '팔' 은 질병에 걸릴 염려 없이 전염성 세균과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다. 또한 로보트 조수는 수포 진균을 실험실의 배양기로 그리고 결핵균이 득실대는 가래를 환자에게서 현미경 슬라이드 위로 안전하게 옮길 수 있다.
2019년에 이르면, 기계 '외과의사' 가 수술실의 없어서는 안될 중추부가 될 것이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방사능 알맹이를 종양 부위에 정확하게 조사하고 수술에 필요한 고정 또는 압박 용구를 설치하는 작업을 맡을 것이다.
의사들은 로보트를 조수로 삼을 수도 있다. 로보트 조수는 의사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의사가 피곤할 때 절개부위를 꿰매는 일과 같은 단순작업을 맡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정밀한 손재주가 요구될 때, 로보트 조수가 진가를 발휘한다. 외과의사가 로보트의 두뇌 속에 그의 기술이나 심지어는 개성까지도 프로그램화하여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로보트가 하는 일은 마치 의사 자신이 한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2019년의 외과의사는 로보트를 조수로 삼을 뿐만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진단설비에 힘입어 수술하기 훨씬 전에 환자의 상태와 있음직한 수술 결과를 상세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동적 공간 재현기(DSR)를 이용하여 환자의 몸을 절개하지 않고도 중요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가슴을 절개하는 수술이나 심장이식수술의 경우에, 맨먼저 DSR이 활용될 것이다. 이 기계장치는 가톨릭 의과대학에서 개발된 것으로 환자의 몸에 칼을 대지 않고 '예비 수술'을 실시하게 한다. 그것은 수술 전에 한기관의 모든 단면이 검사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사진들을 마련해 준다.
커지는 환자의 발언권
2019년의 환자는 자신의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意思決定)에 참여하고자 할 것이다. 이것은 몇몇 외과적 처치에 대한 2차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가장 좋은 가격의 병원을 선택하는 것 이상이다. 식물인간의 된 김 두태 씨와 출생시의 결함으로 고통받는 아기 연민이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고, 삶의 길이보다 질이 더 문제라는 의식을 일깨웠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삶을 연장시키는 조치가 취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인의 '삶에 대한 결의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들은 또한 암이나 그밖의 치명적인 질환에 걸려 치료를 받을 때, 그들 자신의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익힌다. 환자의 태도가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유에 도움이 되는 태도를 지닌 환자일수록 약의 효과가 커질것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자기의 병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환자가 치료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환자보다 더 빨리 회복된다고 주장한다.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은 의사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 기인한다. 의사는 더 이상 전능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보다 더 박식한 2019년들의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게 될것이다.
21세기에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의사의 공급 과잉은 의료 관리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환자들은 여러 의사들 중에서 자기에세 맞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의사들은 몇 명 안되는 환자만을 맡게되므로 각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다. 의사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진료 집단에 속하는 봉급 생활자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특정한 수준의 우수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늘어나는 남자 간호원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영양학이 포함되면서, 의과대학생들은 로보트학과 컴퓨터뿐만 아니라 영양학에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여러 의료업종에 종사하는 될 것이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여성들의 수치를 토대로 산출한 여성 의사의 비율은 2000년까지 전체 의사의 20%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병행하여, 더 많은 남성이 간호학을 공부할 것이다. 전문 기술을 지닌 간호원들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간호원이 치유 과정에 더 깊이 관여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21세기에는 간호원들이 단체를 구성하면서 진료 사업에 대한 참여의 폭을 넓혀 나갈 것이다. 이러한 단체들 중의 하나인 전라북도 전주의 '건강 관리 센터'는 완전히 간호원들로만 운영된다. 이곳의 간호원들은 주로 전자 뇌검사 기구(EEG)와 유사한 이른바 '정신 거울' 장치를 이용함으로써 뇌의 리듬을 기록하고 감시하는 일을 한다.
환자의 머리에 부착된 전극이 뇌의 활동 상황을 화면으로 내보내며, 화면에는 발생되고 있는 뇌파의 종류가 나타난다. 베타 파(波)는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를 표시하고, 알파 파는 백일몽, 세타 파는 잠재의식, 델타파는 깊은 수면을 나타낸다. 이 센타의 간호원들은 이 장치를 이용하여 환자들로 하여금 깊은 명상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환자들은 이 명상의 상태에서 자신들의 병이 치유될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편도선 절제, 안면 정형 등과 같이 중요하지 않거나 때로는 안해도 되는 수술을 원하는 환자들만 치료하는 진료소도 있다. 피 한 방울도 흘리게 하지 않고 시행되는 레이저 수술이 더욱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외래 환자 진료소가 대부분의 가벼운 수술을 떠맡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술받은 환자들은 회복실에서 두세시간 휴식한 뒤 곧장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소규모 진료소를 비판하는 사람들 조차 하루만에 이루어지는 수술에 상당한 심리적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도 수술을 병에 대한 치료라기보다는 '수선 작업' 으로 간주해 버린다.
지나가다 들리는 진료소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병원 응급실은 유료 환자들을 그러한 진료소에 빼앗김으로써, 무료 환자인 빈민층 치료에 허덕이며, 병원에서의 수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때문에 전국의 많은 병원들이 병동의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했다.
새 명물 혜화동 의료가
이러한 진료소들이 더 널리 퍼짐에 따라, 그것들은 마침내 지역의 병원체계와 어울리게 될 것이다. 몇몇 주요 병원 법인들은 보건관리의 다양한 부문을 한 곳으로 모을 것이다. 그리하여 의사들의 진료실, 외래 환자 수술실, 진단 센터, 약국, 건강 센터, 그리고 병원 지구가 식당 및 휴식 지역 주위에 건설될 것이며, 이것들이 통합된 산책길형 구조가 생겨날 것이다.
1996년에 문을 연 서울 혜화동의 '동숭 의료가(醫療街)'는 단지 1백여개의 병상만을 마련해 놓았을 뿐이지만, 여분의 공간은 무척 넓다. 이 의료가 계획의 제안자들에 따르면, 나머지 공간에는, 더 많은 외래환자들을 받기 위해, 물리치료 및 호흡요법 등을 다루는 분야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가에는 또한 다양한 전문 건강 관리소가 들어설 것이다. 영양사, X선 의사, 물리치료사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일과를 수행할 것이며, 여기에 체류하는 사람들은 비만 진료실에서 몸무게를 줄이고 식사 유형을 바꿀 것이다. 또 알콜 센터에서 몸의 알콜기를 빼고, '습관 교정실'이라는 곳에서 담배를 끊는 방법을 배우며, '공포를 이기자'라고 명명된 진료실에서 각종 공포증을 치유할 것이다.
이전에는 오직 병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설비들이 축소되어 가정에서도 사용될 것이다. 호주머니용 심장감시기가 심장의 피 유입량을 측정하고 위험한 불규칙적 박동을 환자에게 알려 줄 것이며, 휴대용 전기 모의장치가 세포의 복원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부서진 뼈를 빠르고 완전하게 접합시키고 척추가 휜 어린이를 집에서 치료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기술적 성과들, 예컨대 정밀한 수술을 수행하는 로보트 손과 간파하기 어려운 증후를 곧장 분석해내는 컴퓨터에 의해, 인간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면에서 크게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2019년에 이르면 기술발전의 주인인 우리 인간들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 단층 촬영기'(CAT)와 '정신거울'을 통해 우리의 몸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인간 신체의 기적에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병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궁극적 진리 곧 건강이란 몸과 마음의 조화이며 몸과 마음에 적합한 환경에서 가장 잘 이룩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구현할 것이고 또 널리 퍼뜨릴 것이다. 30년 뒤에는 병원이 공포나 불안을 주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으로 변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