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처럼 불 수 있는 묘기백출의 합금은 까다로운 항공기와 우주선의 재료로도 유용하다.
유리나 플라스틱은 가열하여 서서히 잡아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원래의 길이보다 수배 혹은 수십배까지 쉽게 늘어난다. 또 놓아도 원위치로 돌아가지 않고 늘어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이를 소성, 즉 플라스틱이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속중에서도 이런 성질을 가진 것이 있다. 1986년 기네스북에 의하면 48배까지 늘어나는 금속도 있다고 한다. 일련의 특별한 처리과정을 거치면, 가열된 유리처럼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질은 금속으로는 대단히 특수하기 때문에 '슈퍼플라스틱 금속'이라고 부른다.
금속재료의 이런 현상은 아주 특이한 것이다. 금속합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강인하면서도 소성을 가진 점이지만, 보통의 금속재료는 플라스틱이나 유리처럼 많이 늘어나기 훨씬 이전에 끊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연금술사의 꿈을 이어가
인류의 문화사(史) 과정에서 금속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시작 이후에 금속재료는 인류의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생물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정도이다. 실제로 금속재료가 없는 생활을 상상해보거나 필요성을 의심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땀이 배어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중세의 연금술사들의 꿈을 간직하고, 그 꿈과 소망을 하나씩 묵묵이 실현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금속재료들은 더욱 세련돼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쇠붙이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이 다루는 대장장이의 후예들이기도 하지만, 첨단산업 실현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신소재 혁명의 기수인 재료공학도들이다.
쇠붙이를 다루는 장이(공학도)들의 변하지 않는 꿈은, 어떻게 하면 단단하고 강한 쇠붙이를 쓸모있는 모양으로 쉽고 값싸게 그리고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이후에 이런 꿈을 실현시켜준 것이 바로 금속재료이다. 금속재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망치질과 같은 힘을 가해주면 부서지지 않은 채 찌그러지고, 또 우그러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는 데 있다.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그릇은 스테인리스를 이용해서 만든다. 이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따뜻한 밥을 잘 보관해준다. 또 아름답기까지 한 형태로 만들 수 있으며 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 뿐만 아니라 놓치거나 서로 심하게 부딪쳐도 깨지지 않아서 주부들이 마음 놓고 설거지를 할 수 있게 한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의 이런 특징은 당연시할 수도 있지만, 사기그릇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리는 것과 비교하여 보라. 스테인리스 재료의 우수함과 고마움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속재료가 가지는 이러한 우수한 점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금속합금이 한 없이 늘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보다 견고하고 값싸고 우수한 제품을 찾아나섰다. 이런 줄기찬 재료공학도의 꿈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재료중에 하나가 바로 슈퍼플라스틱 합금이다.
이 금속재료는 원래의 길이보다 수십배까지 늘어날 수 있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복잡한 형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껌과는 다르게, 일단 성형된 후에는 간단한 처리과정을 거치면 보통의 금속합금보다 강하고 단단하게 된다. 또 같거나 유사한 금속합금과 고체상태에서 잘 붙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접착제 역할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슈퍼플라스틱 금속합금에 대하여 이들의 역사적인 유래와 과학적인 이론 및 활용분야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살펴 보자.
소련의 학자들에 의해
금속합금이 가열된 유리처럼 많이 늘어나는 슈퍼플라스틱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12년이다. 이 시기는 현대과학의 태동기이며 시행착오의 축적에만 의존해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던 과거의 방법에서 탈피,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기초과학 지식이 하나씩 발견되던 때이다.
당시 영국의 학자였던 '벵고호'는 "일부 특수황동이 가열된 유리처럼 길게 늘어날 수 있다"라고 실험실에서 관찰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보통의 황동이 원래 길이보다 1.3∼1.5배 정도까지 늘어나는 데 비해 2배까지 늘어나는 황동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벵고호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또 기술적으로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스런 현상'이 다시 한번 세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20여년이 지난 1934년의 일이었다. 영국의 '피어슨'교수가 납과 주석의 합금 그리고 비스무스와 주석의 합금이 원래의 길이보다 10∼20배까지 늘어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은 '이상한 일' 또는 '특이한 일'로 간주되었을 뿐 더이상 연구가 행해지지 않고 잊혀지는 듯 했다.
'금속합금이 유리질처럼 길게 늘어나는 현상'이 '슈퍼플라스틱'(초소성)이라고 불려지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소련의 야금학자들에 의해서였다. 피어슨의 재발견 이후 또다시 20여년이 지난 1945년의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러시아의 야금학자들은 슈퍼플라스틱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슈퍼플라스틱의 연구가 꽃을 피운 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은 또다시 20여년이 지난 후에 있었다. 즉 1962년에 미국의 '언더우드'교수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연구현황을 서방세계에 소개한 이후가 된다.
서구로 되돌아 온 이후에는 그 사이에 이루어진 과학과 물리야금학의 발전에 힘입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일부 금속합금에서 슈퍼플라스틱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 원인 및 필요조건 등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개발과 공업적인 이용가능성에 대한 조사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여년 사이에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기술진보는 주로 영국과 미국을 주축으로 하여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현재는 1백여종 이상의 금속합금에서 슈퍼플라스틱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미 니켈계 알루미늄계 티타늄계의 슈퍼플라스틱 합금이 상품화 되었고, 이를 주제로 한 국제적인 학술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특히 80년대 이후에는 알루미늄과 티타늄계 슈퍼플라스틱 합금은 최신 항공기와 우주왕복선의 구조용 부품으로 그 기술적인 가치와 경제성이 인정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러한 재료에 의해서만 가능한 '새로운' 가공 및 성형기술이 완숙 단계에 도달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1백여개가 넘는 숫자의 항공기와 우주선용 부품이 현장시험을 거쳐서 기존의 부품을 대치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활용영역은 계속 확장될 전망이다.
금속은 농토와 같다
왜 일부의 금속계 합금만 슈퍼플라스틱 현상을 나타내는가를 이해하려면, 금속재료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으며, 과연 어째서 망치로 때려도 깨지지 않고 우그러지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왼쪽 사진은 십자군전쟁때 사라센족이 사용하던 호신용 칼을 잘라서 내부를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관찰한 것이다. 이것은 재료의 내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모든 재료는 현미경으로만 관찰가능한 미세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비누방울이 3차원적으로 서로 엉켜서 빈자리가 없이 뭉친 비누거품처럼, 재료의 내부는 크고 작은 수많은 덩어리들(다면체)이 빽빽하게 엉켜져 있다. 따라서 이런 3차원적인 덩어리를 자른 2차원의 단면은, 길바닥에 잘 정렬된 타일처럼 보인다. 즉 사진에 보이듯이 다각형이 빈자리 없이 채워져 있는 형상이 된다. 이때 다각형(혹은 다면체)을 전문용어로 '결정입자'라 하며, 결정입자들이 인접한 계면을 '결정입계'라 한다. 사진의 노란색 테두리는 결정입계이고 테두리 내부가 결정입자이다.
금속내부의 결정입자의 크기 형상 배열상태 등을 포괄적으로 '미세구조'라 표현하는데, 모든 재료의 성질은 이런 미세구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재료의 성질이란 전기적인 전도성, 역학적인 강인성, 자석의 성질, 빛을 통과 혹은 반사하는 광학적인 성질 등을 의미한다.).
이 점이 바로 아폴로 우주선이 발사되는 과정에서 태동한 현재 재료과학의 바탕이며, 동시에 다른 학문분야와 비교해서 재료과학이 가지는 장점이기도 하다. 즉 재료과학의 가장 큰 관심사항은 재료의 내부조직과 겉으로 나타나는 재료의 성질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인간의 필요에 적합한 성질을 나타내는 내부조직을 인위적으로 제조하느냐에 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초전도체의 연구와 개발과정에서 결정입계의 형상 배열상태 화학조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런 계면이 초전도성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대두되어 있다. 실제로 미세조직과 재료가 외부로 나타내는 성질과의 상관관계를 아는 것은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풀지 못한 숙제였다. 이런 이유때문에 현대의 재료과학이 과거의 야금학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사기그릇을 충격을 가하면 깨져버리는 데에 반하여 금속을 망치질하면 왜 우그러지기만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해 보자. 한개의 결정입자는 원자들이 오와 열을 잘 맞춰서 정렬되어 있고, 인접한 결정입자는 다른 방향으로 오와 열이 잘 맞아 있다(그림 1,㉠).
재료의 내부조직은 구획정리가 되지 않은 시골의 추수가 끝난 농토와 같다고 상상하면 정확하다. 즉 인접한 논에 남아 있는 벼포기는 서로 오와 열이 맞아 있지 않으나, 같은 논에서는 오와 열이 잘 정렬되어 있는 것과 같다. 재료의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그 힘에 의해 원자는 항상 오와 열을 따라서 밀리게 된다. 밀리기 시작한 원자들은 반대쪽의 결정입계까지 밀려가서 쌓이거나 혹은 결정입계를 조금씩 밀어내게 된다(그림 1,㉡).
만약 이 때 원자들이 잘 밀려나가고 인접한 다른 결정입자도 따라서 조금씩 밀려나가면, 처음 힘을 가한 곳은 쑥 들어가고 반대쪽은 불거져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금속재료가 갖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인 '소성변형'의 성질이다(청동기시대 이후 금속재료가 인류문화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커다란 이유중에 하나다.).
그러나 한쪽에서 충격을 받은 원자가 오와 열을 따라서 밀려가지 못하고 반대편의 결정입계나 혹은 결정입자의 방해를 받게 되면 힘을 받은 곳이 우그러지지 않는다. 만약 외부에서 힘을 더욱 가해주면, 반대편 결정입계는 밀려나진 않지만 충격을 견디지 못해서 깨져버린다(그림 1,㉢). 이런 현상이 바로 사기그릇이 잘 깨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이처럼 원자의 움직임과 결정입계의 저항력 등은 원자 사이의 결합력 및 원자결합 특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즉 금속재료의 원자는 소위 '금속결합'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산화물과 같은 세라믹스재료는 원자간에 '공유결합'을 가지고 있다.
비누방울처럼 미끄러져
이제는 슈퍼플라스틱 합금이 어떻게 해서 껌처럼 많이 늘어날 수 있느냐에 대하여 이해하기로 하자.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보통의 금속합금은 미세구조가, 평균 직경이 수백 마이크론(μ) 이상인 커다란 결정입자로, 구성된 데 비하여, 슈퍼플라스틱 합금은 평균 직경이 수 마이크론 이하인 아주 작은 결정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정입자가 아주 큰 경우와 작은 경우를 비교할 때, 마주보는 결정입계와 연결되는 한개의 열에 놓이는 원자수는 결정입자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리고 외부적인 부피가 동일한 두 경우를 비교하면, 결정입자가 작은 경우 전체의 부피중에 결정입계가 차지하는 상대적인 부피가 증대된다.
예를 들어서, 결정입자의 크기가 1백분의 1로 감소하면, 입계가 차지하는 부피는 1백배 증가한다. 결정입자가 작은 합금은 큰 것에 비하여 한개의 오나 열에 정렬된 원자의 수가 적고, 결정입계가 차지하고 있는 부피가 훨씬 크다. 따라서 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 원자들이 밀려가기가 쉽고, 반대편의 결정입계가 견디기가 용이하며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밀려날 수 있다.
만약 결정입계가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우면 밀려온 원자들이 결정입계를 따라서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따라서 결정입계는 깨지지 않고 대신 우그러진다.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미세조직은 결정입자가 아주 작으며, 결정입계가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보통의 금속합금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결정계면이 유연하면, 원자가 오와 열을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도 외부에서 가해주는 힘을 수용해서 우그러질수있다.
(그림 2)에는 결정입자가 회전하거나 미끄러져 인접한 것과 자리바꿈을 해서 전체적으로 모양이 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런 양상은 비누방울이 서로 미끄러져서 쉽게 자리바꿈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슈퍼플라스틱 합금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껌처럼 많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결정입계를 따라서 쉽게 미끄러지면, 내부에 틈이 생기거나 깨지지 않고 많이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입계가 갖는 한가지 중요한 사항은, 결정입계는 온도가 낮으면 결정입자 내부보다 강한데 비하여, 온도가 올라갈수록 점점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상온에서 금속이 녹는 온도의 중간온도 정도에서는 결정입계가 매우 약해진다. 따라서 낮은 온도에서는 결정입자가 작은 합금일수록 결정입자가 큰 합금보다 강하다. 반면 온도가 올라가면 반대의 경향을 나타낸다. 모든 금속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연해지는데, 결정입계의 상대적인 부피가 큰, 즉 작은 결정입자로 구성된 합금일수록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서 연해지는 정도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퍼플라스틱 합금은 중간온도 정도로 가열한 상태에서 껌처럼 길게 늘어난다. 그리고 보통 합금에 비하여 아주 연해진다. 이런 특징은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공업적으로 활용할 때 중요한 장점이 된다. 왜냐하면 많이 늘어나는 온도에서는 지극히 연해지므로 훨씬 작은 힘으로도 복잡한 형상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의 접착제로도
슈퍼클라스틱 합금은 유리나 플라스틱처럼 자유롭게 성형가공을 할 수 있다. 마치 풍선 불듯이 공기의 압력을 가해 공을 만들 수도 있다. 또 유리병을 만들듯이, 아름다운 문양을 음각한 형틀에 밀어 넣어서 문양이 양각된 금속화병을 만들 수도 있다. 그 실례를 들어보자
두께 8mm 아연+22% 알루미늄의 합금을 약 2백50℃로 가열한 후에 아르곤가스로 불어 넣어주면 공이 만들어진다. 이때 공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압력은 약 7㎏/㎠에 불과하다.
또 왼쪽 위 사진은 가스를 불어넣기 좋은 형태(1mm 두께의 탄피모양)로 1차 가공한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유리화병 제조용 형틀에 넣고 약 18㎏/㎠의 가스압력으로 확장시킨 결과이다. 이때 소모된 시간은 90초인데, 그 동안에 형틀에 음각된 모양을 따라서 양각된 아름다운 화병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이러한 가스압력을 활용, 항공기용 부품을 제조하는 광경이다. 대개는 약한 가스압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와 동력의 소모가 적고, 복잡한 형상을 단순한 과정으로 쉽게 만들 수 있으며, 합금이 연하기 때문에 마찰과 충격에 의한 형틀의 마모가 작게 되는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아무튼 알루미늄계 티타늄계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사용하면 전체적으로 두께가 얇고 균일하며 동시에 강인한 부품을 만들 수 있어서, 항공기용 부속품으로 적당하다. 왜냐하면 항공기는 가능한한 가벼우면서 동시에 튼튼해야 연료의 소모가 적기 때문이다.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적당한 온도로 가열하면, 결정입계가 유연해지고 동시에 원자가 쉽게 결정입계를 따라서 움직인다. 이 점은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또 하나의 아주 쓸만한 특징이다. 두개의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이 온도에서 밀착시키면, 두 판재는 쉽게 늘어붙어서 한개로 접착된다. 원자가 쉽고 빠르게 움직여서 서로 다른 조각에 늘어 붙는다고 해서 이런 접합방법을 흔히 '확산접합'이라고 한다.
슈퍼플라스틱의 이런 특징을 앞에서 설명한 가스압력에 의한 성형과 조합시켜 활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가공방법을 'SPF/DB'라고 부르는 데, 이 방법은 슈퍼플라스틱 합금으로만 가능한 최신의 기술로써 미국과 영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이다.
SPF/DB방법을 설명하면 이렇다(그림 3). 두개의 슈퍼플라스틱 합금판재(노란 색)를 서로 포개 놓고, 확산접합으로 서로 붙게 할 부분(흰 선)만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페인트칠을 한다. 이어서 특정한 온도로 가열하고 압력프레스로 힘을 가해 주면, 흰 선부분만 서로 붙게 된다. 다음에 빨간 색으로 표시된 관을 통하여 가스압력을 불어 넣어주면, 서로 붙지 않은 곳은 빵처럼 부풀어지기 시작한다.
만약 이것을 특별한 형태를 가진 형틀에 넣고 가스압력을 가해 주면, 외부모양은 그 형틀에 맞는, 그러나 내부는 벌집모양으로 연결된 아주 강인한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벌집모양의 구조는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가장 튼튼하고 오래 견디는 구조설계이다. 그러므로 벌집모양을 가진 부품은 항공기와 우주선에 쓰인다.
현재는 이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두터운 판재의 불필요한 부분을 직접 기계가공하여 깎아낸다. 또는 여러가지의 크기와 형태로 자른 판재를 서로 용접하거나, 구멍을 뚫어서 못으로 연결하여 조립하고 있다.
만약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사용한다면, 비싼 기계가공을 줄이고, 부속의 갯수를 줄이며, 단순공정으로 단번에 제작할 수 있어서 부품의 가격을 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더구나 똑같은 부품의 무게를 30% 정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항공기와 우주선의 부품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전투기의 엔진을 장착하는 프레임과 출입문을 SPF/DB법으로 제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5년 현재로 2백50개 이상의 군용항공기와 우주왕복선의 부품을 SPF/DB로 제조, 실제상황에서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심지어는 전투기의 한쪽 날개를 SPF/DB법을 사용, 한개의 뭉치로 제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1백여개 이상의 부품이 티타늄과 알루미늄계 슈퍼플라스틱 합금으로 제조되어 군용항공기의 기존 부품을 하나씩 대치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할 때, 슈퍼플라스틱 기술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슈퍼플라스틱 합금 사용도 증대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 최근에 설계·제작되었거나 앞으로 생산될 항공기로서 슈퍼플라스틱 합금의 사용이 분명한 최신 항공기를 소개한다.
아마도 대형 최신예폭격기(B-1B), 레이다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스텔드 비행기, 현재의 항공기처럼 뜨고 내리는 미래의 우주왕복선(NASP 또는 X-30) 등과 슈퍼플라스틱합금은 매우 '친할' 것이다.
특히 이 우주왕복선은 액체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도록 설계되고 있는데, 액체수소통의 외부는 (그림 4)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벌집모양의 빈 통로로 수소를 흘려주어서 액체수소가 기화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표 1)에는 최신의 항공기 등에 슈퍼플라스틱 합금을 사용하려 드는 이유가 B-1B급 항공기를 예로 들어서 설명되어 있다. 차세대 항공기에서 알루미늄과 티타늄 합금의 사용량이 35kg 정도인데, 이중에서 15%만을 슈퍼플라스틱 합금으로 대체한다면, 이에 따른 항공기의 무게감소는 약 15%에 달한다. 그리고 SPF/DB와 같은 첨단기술을 사용하면 제조비용을 30% 줄일 수 있다.
항공기의 생산에 소요되는 부품제조경비 중에서 1대당 약 1백73만2천달러(1억2천만원)가 싸지면, 무게감소에 따른 원료의 절약효과는 약 87만1천달러(6천1백만원)에 상당한다. 그리고 개선된 부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감안한 유지보수비의 절약효과를 약 59만4천달러(4천1백만원)로 계산하면, 한대당 절약효과가 약 3백19만7천달러(2억2천2백만원).
슈퍼플라스틱 합금은 이제는 실험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상한' 금속의 범주를 탈피하고 있다. 이미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 경이로운 금속재료의 활용도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슈퍼플라스틱 합금과 SPF/DB기술은 항공 우주 산업분야에서 매우 커다란 경제적인 이득을 유발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분야가 슈퍼플라스틱 기술의 산업화를 주도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항공기의 조립과 부품생산을 시작하는 초기단계인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도 이 분야의 신기술(혹은 미래기술)의 방향과 진보정도를 미리 파악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