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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오늘 밤에도 동대문에 은빛 우주선이 내려온다

기상천외한 건축을 꿈꾸다


Part 1. 오늘 밤에도 동대문에 은빛 우주선이 내려온다

 

알루미늄 호일로 곱게 싼 것 같은 외관은 낮에는 은빛 동산, 밤에는 우주선 같다. 그 앞에 서니 허공에 떠있는 고층부가 나를 굽어보는 것 같다.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다. 건물 외부는 물이 흐르듯 부드러운 면이 이어지며 직선이 없다. 건물 안에도 기둥이 거의 없고 복도나 계단이 둥글게 이어진다.


3월 21일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3월 21일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 디자인에 한국의 조선 기술을 적용하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특별한 매력은 주름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매끈한 알루미늄 외벽이다. 문자 그대로 ‘부드러운 곡면’의 건물은 국내 최초다. 종로나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면 유리의 둥근 고층빌딩도 유리창 한장 한장은 평평하다. 반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작은 알루미늄 패널들이 모두 다른 곡률로 딱 맞게 휘어 있다.


이 곡면을 만들기 위해 철판을 휠 때 사용하는 다점성형기술(MPSF)을 이용했다. 여러 개의 핀이 촘촘하게 꽂힌 두 개의 금형 사이에 알루미늄 패널을 끼우고 찍어내는 것이다. 핀들의 높이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 면을 자유롭게 휠 수 있다. 이 기술은 선박이나 자동차의 몸체를 성형할 때 많이 쓰고 있다. 이 기술이 건축에 도입된 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베이징국가체육장이 처음이다.


국내에는 당연히 건축용 알루미늄 패널을 휘는 기술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각기 다르게 생긴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을 만들어야했다. 만약 전통적인 방식대로 모든 패널의 금형을 일일이 만들어서 제작하려면 예상 비용이 200억이 넘어 무리였다. 다점성형기술은 불과 10%의 예산으로 가능했다.


서울시는 처음에 영국이나 독일 업체에게 제작을 의뢰하려고 했으나 곧 좌절했다. 패널을 일일이 만드려면 20년 넘게 걸린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에 맡기는 대신 국내에서 자체 기술을 ‘빨리빨리’ 개발하기로 했다. 항공기 몸체의 금형을 다점성형기술로 제작하는 업체인 ‘스틸플라워’가 도전했다. 하지만 항공기용 금형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쓸 패널은 크기와 재질이 전혀 달라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김광호 스틸플라워 연구소 차장은 “휜 알루미늄이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인 스프링백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1년 정도의 연구 끝에 스프링백 현상을 제어하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핀들이 알루미늄 패널을 누르는 힘은 300t이었다. 성형이 더 잘 되도록 알루미늄 패널을 250t의 장력으로 팽팽하게 늘리면서 모양을 잡았다. 덤으로 관련 특허를 5건 등록했다.


채광 및 통풍을 위해 패널에 구멍을 뚫는 것도 큰일이었다. 구멍을 먼저 뚫고 휘면 구멍 모양이 타원으로 찌그러진다. 그래서 곡면 패널을 만든 후에 구멍을 뚫었는데, 완벽한 원을 만들기 위해 구멍마다 드릴 축의 방향을 계속 바꿔야했다.


이 모든 공정을 짧은 기간에 할 수 있었던 건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라는 설계 방법 덕분이다(2파트 참조).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수학의 함수식처럼 매개변수만 조절하면서 다양한 건물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경우, 먼저 파라메트릭 디자인으로 외벽의 설계도를 그렸다. 이 설계도를 다점성형기술 장비가 인식하는 데이터로 바꾸자, 장비가 자동으로 패널들을 생산했다. 타공 단계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방향이 다른 모든 구멍의 제작법을 설계도에서 추출했다. 이렇게 최초의 ‘완벽한 곡면’ 건물이 탄생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알루미늄 패널 배치
 
아부다비에 있는 캐피탈게이트타워

 
 
세상에서 가장 기울어진 타워


신기한 건축물 세우기를 즐기는 또 다른 도시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돈이 많은 아부다비다. 아부다비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모양의 건축물을 세워서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아부다비의 캐피탈게이트타워는 세상에서 가장 기울어진 건물이다. 높이는 160m, 기울기는 서쪽으로 18°이다. 이는 피사의 사탑 기울기의 약 3배다. 피사의 사탑이 점점 기울어져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도, 콘셉트 건축가인 닐 반데르 빈은 용감하게 도전했다. 그는 사막의 회오리바람과 높은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진짜 바람이나 파도와 달리,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기울어진 방향의 고층부는 1층 바닥보다 33m나 옆으로 나와있다. 튀어나온 부분의 무게는 기울어진 나무가 뿌리 채 뽑힐 것처럼 무겁다. 나무를 똑바로 세울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것뿐이다. 우선 건물이 기울어진 반대 방향에 지하로 400개의 콘크리트 말뚝을 박았다. 말뚝의 절반은 딱딱한 기반암까지 깊이 박았다.


튀어나온 부분의 하중이 뿌리까지 전달되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이 두 동강 날 수 있다. 그래서 건물의 척추와 같은 코어를 일반적인 건물과는 다르게 지어야 했다. 이 과제를 맡은 구조공학자 모나 바시는 고민 끝에 코어를 처음부터 건물과 반대로 휘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보통은 코어를 수직으로 세우는데 이번 경우는 건물과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기운 코어를 쌓아 올린 것이다.


동쪽으로 기운 코어를 먼저 완성한 후 건물을 일주일에 4m씩 지었는데, 건물이 높아질수록 코어가 서쪽으로 펴졌다. 코어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는 힘과 기울어진 건물이 넘어지려는 힘이 상쇄됐다. 코어가 펴지면서 벽의 모양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외곽 유리창은 20mm 정도 움직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코어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대비책으로 포스트 텐션 공법도 동원했다. 주로 큰 다리처럼 한 쪽 방향만 큰 힘을 받을 때 쓰는 방법으로, 고층 건물에 적용한 건 처음이다. 원리는 고무줄이 헐렁할 때보다 팽팽할 때 모양을 잘 잡아주는 것과 비슷하다. 강하게 당긴 철근을 콘크리트 중앙에 심어서 전체 모양이 쉽게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캐피탈게이트타워에서는 코어를 만들 때 5층 길이의 철근들을 잡아당긴 채로 콘크리트를 부었다. 코어 안에 심은 총 12만 m의 당겨진 철근들의 장력이 건물을 더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다.


캐피탈게이트타워는 국제행사의 중심인 그랜드스탠드와 아랍에미리트의 비지니스 허브인 아부다비 종합 전시장 옆에 세워졌다. 상위 18개 층은 왕족을 대접할 수 있는 최상급 호텔, 나머지는 사무실이다.

 

 
 성당흰개미집 같은 냉난방 시스템


바다에서 솟은 110m 가리비


세계 최초의 원반형 건물인 알다르헤드쿼터스빌딩도 아부다비에 있다.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가 태어난 대형 조개처럼 바닷가에 우뚝 서 있다. 높이는 110m, 외곽이 모두 유리창인데 축구장 4개를 덮을 정도다. 놀랍게도 원래는 바다였던 곳에 30개월 만에 지어졌다. 알다르헤드쿼터스빌딩은 부동산 개발 업체인 알다르가 수상 도시인 ‘알 라하 비치’를 만들 때 랜드마크로 기획한 빌딩이다. 알 라하 비치는 페르시아만 700m 밖, 수심 8m에 200억L의 모래를 부어서 만들었으며 길이 11km, 너비 1km다.


‘세계 최초의 형태’로 랜드마크를 지어야했던 레바논 건축가 마르완 자게이브는 비행기에서 조개 모양 건물의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조개는 아부다비에게 문화적으로 매우 친숙한 소재다. 자게이브는 원을 수직으로 세워놓은 건물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동전을 세우기 힘들 듯 원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막상 지어놓으면 건물이 굴러가거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자게이브는 16세기 철학자 하인리히 아그리파에게서 답을 얻었다. 원 안에 오각형을 그려넣고 한 변을 지표면으로 한 것이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길이 125m의 코어가 2개인데, 이음매가 전혀 없도록 콘크리트를 부으면서 거푸집이 같이 올라가는 ‘슬립 폼’ 방법을 써서 만들었다. 빨리 완성하기 위해 각 코어의 건설 팀을 경쟁시켰다. 올림픽 수영장 9개를 채울 수 있는 콘크리트를 6개월 동안 밤낮없이 부어가며 작업했고, 결국 1m 차이로 한쪽 팀이 이겼다고 한다.


코어를 만드는 동안 건축가들은 외관을 디자인했다. 앞뒤로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불안하지 않도록 하중은 고강도 기둥을 통해 코어까지 전해지도록 했다. 1mm의 오차도 없이 마치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하게 작업했다. 우여곡절 끝에 2만5000장의 삼각형 유리를 다 끼우는 데 성공했다. 30개월 만에 탄생한 세계 최초의 원반형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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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희 기자|도움 김광호 스틸플라워 연구소 차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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