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완성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필두로 각 부품을 공급한 기업 수십여 곳의 노고가 컸다. 엔진, 연료탱크, 회전날개 등 각기 다른 기업이 저마다의 노하우를 누리호 안에 담았다. 그 중 누리호의 심장인 액체엔진 조립을 담당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10월 8일 방문했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액체엔진 조립장에 들어서자 노란빛 작업대 사이에 도열한 은색 액체엔진 세 대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선들이 엔진의 노즐부에 주렁주렁 감겨있었다. 두 명의 엔지니어가 조립이 끝난 액체엔진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내년 말 발사될 누리호의 세 번째 비행모델(FM-3)에 탑재될 엔진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에 탑재된 7t(톤)과 75t 액체엔진을 조립하고 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속품인 터보펌프, 밸브를 제작했다. 또 발사체의 추진공급계와 배관 조립에도 참여했다. 발사체의 자세를 제어하는 TVC 고정기도 이들의 작품이다.
“2012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협력해 한국형 발사체에 활용될 액체엔진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에 항공 엔진을 개발하던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김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생산기술팀 차장은 항공기용 엔진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우주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항공기에 쓰이는 가스터빈 엔진과 우주발사체 액체로켓엔진은 구조와 작동환경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고열에 견디는 소재를 사용해야 하고 회전체 구조를 가진다는 점은 비슷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양한 운영환경에 필요한 적절한 소재를 개발한 상태였고, 1만 3000rpm(분당회전수) 이상 고속회전하면서도 누수가 되지 않는 초정밀 가공 기술, 엔진을 만든 뒤 검증할 수 있는 품질보증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기술들을 액체엔진 개발에 적극 활용했다.
완벽한 설계에도 오차 발생, 수정 또 수정
“국내 발사체 기술은 선진국에 준하는 수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 차장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국내에서도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보통 75t 엔진을 조립하는데 3개월, 7t 엔진은 2개월이 소요된다. 처음에는 7t 엔진을 하나 조립하는 데에도 5~6개월이 걸렸다. 각각의 구성품을 도면대로 규격에 맞춰 제작해 조립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립호환성이 문제였다. 규격에 맞게 부품을 제작했는데도 각각의 편차가 누적되다 보니 조립이 안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엔진 조립을 담당한 임영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술2파트 과장은 “모델링 상에서는 완벽하게 맞는 부품을 만들었지만, 조립하려고 하니 막상 손이나 공구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조립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립이 어렵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발사체 엔진은 한 번 조립하면 끝이 아니라 유지 과정에서 여러 번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최종 발사체에 탑재될 때까지 계속 보수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연소시험 후에는 분해해 깨끗하게 세척하고 건조한 뒤 다시 조립해야 한다.
엔진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매주 항우연 연구팀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검증하며 엔진 형상을 개선했다. 여러 개의 부품을 조립할 순서까지도 고심해야 했다. 3년에 걸친 기나긴 작업이었지만, 덕분에 엔진 형상 설계나 조립 기술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30년 전문가도 5번씩 확인하며 실수 줄여
3D프린팅, 5축 가공 장비 등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최신 장비를 동원하면 대부분의 부품을 쉽게 만들 수 있고, 공정 자체도 자동화돼 있다. 하지만 조립하는 과정은 자동화에 기댈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장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이 분야에서 일한지 30년이 넘었다. 엔진조립에 능숙한 경력자들이 터보펌프는 17년 전부터, 발사체 엔진은 10년 전부터 제작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으로 우주 로켓 전문가가 많은 우크라이나에 가보면 정작 가공 장비는 한국의 1980년대 수준에 머뭅니다. 그런데 그걸로 발사체를 만들어내요. 발사체 기술은 그만큼 숙련된 작업자와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립 절차 또한 까다롭다. 엔지니어가 볼트 하나를 조일 때도 4~5단계를 거친다. 볼트를 조이는 사람, 이를 확인하는 사람, 또 이를 검토하는 사람이 있는 식이다. 작은 O(오)링 하나 때문에 거대한 발사체 프로젝트가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실수를 줄인다.
우주 운송수단 자립을 목표로 삼은 누리호 프로젝트는 1단 발사체부터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로 국가간 핵심기술 이전이 불가능해 어디에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10월 누리호 발사는 1.5t 실용위성을 독자적으로 지구 저궤도에 올리자는 목표에 한발짝 다가선 계기다.
누리호는 우주 운송 자립의 시작
정부의 우주개발 예산은 8500억 원가량이다. 미국(약 57조 원)이나 중국(약 10조 원)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큰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도 지난해 총매출액 가운데 우주발사체 프로젝트가 차지하는 매출액은 2~3% 정도에 불과하다. 김 차장은 “궁극적으로 매출도 중요하겠지만, 현재까지는 매출을 보고 하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3월 방위사업체 한화시스템, 화약류 제조업체 (주)한화, 위성 개발기업 쎄트렉아이와 함께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우주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위성통신 서비스, 우주 광물 채취 등 다양한 사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독자적 발사체 기술의 확보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된다. 김 차장은 “누리호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우주 운송 자립의 시작”이라며 “발사체 기술은 단기 매출을 올리기보다는 전체적인 우주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발사체 기술을 다른 사업과 접목할 여지도 있다. 김 차장은 “액체엔진의 액체산소를 다루기 위해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압축기, 밸브와 같은 부품을 개발했는데, 이 기술은 천연가스 채굴 등 다른 산업에도 접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한미미사일지침이 폐기되며 사거리와 연료 제한 없이 다양한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차원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9월에는 고체 우주발사체 개발 계획을 밝히는 등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차장은 “과거 우주가 일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조명된 분야였다면 누리호 프로젝트로 이제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사명감을 갖고 국내 대표 우주 기업으로 성장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