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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양자론 구축의 대들보 빛과 물질의 이중성

 

양자론 구축의 대들보 빛과 물질의 이중성


물질 세계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한 빛과 물질의 파동-입자 이중성은 양자가설이 이론으로 성립되는 기초를 제공했다.파동은 연속적이고 공간에 퍼지는 특성을 가진다.반면 입자는 불연속적인 단위를 가지고 특정한 지점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특성을 가진다.이렇게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특성을 가진 자연의 실체를 밝힌다.

상대론과 양자론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 빛도 새어나오지 못한다는 블랙홀이 대표적이다.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그러나 현대물리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중 하나다.이와 비슷하게 물질세계에 대해 새로운 상을 제시한 빝과 물질의 '파동-입자 이중성'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특히 양자론의 성장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빛과 물질의 파동-입자 이중성은 피해갈 수 없는 존재다.

파동은 연속적이고 공간에 퍼지는 특성을 가진다. 빛, 전파, 파도, 소리가 모두 파동이다. 파동은 장애물을 만나면 넓은 영역에 걸쳐 에너지를 전달하는데, 전부 흡수되거나 일부 흡수되고 일부 통과하기도 한다. 반면 입자는 불연속적인 단위를 가지고 특정한 지점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특성을 가진다. 벽에 부딪치면 입자의 에너지는 좁은 영역에 집중적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입자는 통과하거나 튕겨 나온다. 파동과 입자의 성질은 이렇게 상반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는 없다.

그런데 양자론의 파동-입자 이중성은 단순하게 말하면 파동인줄 알았던 빛이 입자성, 즉 물질의 특성을 가지고, 입자인줄 알았던 물질이 파동성, 즉 빛의 특성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보는 거시 현상에서는 파동과 입자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가령 물결은 분명히 파동이고 공은 분명히 입자다. 파동-입자 이중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세계의 현상이다.

물리학자들이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추론을 통해 파동-입자 이중성을 생각해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플랑크가 양자가설을 제시했을 때처럼 실험 결과들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20년 이상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당시의 실력있는 물리학자들 대부분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정도다.

빛을 입자로 파악한 아인슈타인


빛을 입자로 파악한 아인슈타인


빛의 본질이 파동이냐 입자냐 하는 논쟁은 데카르트와 뉴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뉴턴의 입자론은 1백년 이상 지속됐지만 19세기 초에 영의 파동론에 자리를 내주었다.19세기를 통해 회절,간섭,편광이 파동성의 강력한 근거로 확립됐고,전자기학의 발전으로 빛 역시 전자기파의 일종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세기 말부터 빛의 파동론을 위협하는 실험 결과들이 연달아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그 중 하나였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다루면서 양자가설을 도입해 빛 입자, 즉 광양자 이론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광전효과는 금속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진동수가 일정값 이상이면 빛이 약해도 전자가 방출되지만 그 이하면 빛이 강한데도 전자가 방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진동수 v인 빛은 hv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빛 입자, 즉 광양자들의 흐름이고 이 광양자들이 금속의 전자와 충돌해 전자를 ‘떼어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광전효과를 훌륭하게 설명했다(그림1). 그러나 빛의 파동성을 보장하는 회절과 간섭 때문에 광양자 이론이 빛의 본성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생각을 한번에 바꾸지는 못했다.


(그림1)광전효과^진공관 속의 금속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방출된다.이것은 전류에게 흐르는 전류로 확인할 수 있다.이 현상을 아인슈타인은 빛이 hv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빛 입자,즉 광양자의 흐름이고 이 광양자들이 금속의 전자와 충돌해 전자를 떼어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파동-입자 이중성이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은 X선 실험이었다. 1895년에 발견된 X선은 물질을 잘 통과하는 것 외에 기체를 이온화시킬 수 있었다. X선의 이온화 특성을 이용한 기체 방전은 영국의 J. J. 톰슨의 1897년 전자 발견과 X선의 물리적 특성 연구에서 중요한 실험 방법이었다. 그 후 톰슨에게 배웠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영국 물리학자들이 1910년대까지 X선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X선의 본질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X선이 빛처럼 연속적인 파동이거나 임펄스같이 단속적인 파동일 가능성과 빠른 속도를 지닌 입자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X선은 물질 투과율이 높았기 때문에 일단 파동일 가능성이 높았다. 전기장이나 자기장에서 진행 경로가 휘지 않았으므로 적어도 전기를 띤 입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X선은 기체를 이온화시킬 수 있었다. 이온화 과정은 기체 원자나 분자같이 아주 작은 영역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므로 X선이 입자일 가능성을 말했다. 또 X선은 얇은 금속막을 통과한 후 일정한 범위의 각 안쪽에서만 검출되었는데, 이 역시 X선이 연속적인 파동보다는 입자일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렇다고 X선을 완전히 물질 입자로 보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1900년대 초에는 X선이 빛처럼 주기적인 파동이 아니라 에너지가 띄엄띄엄 전달되는 비주기적인 임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라우에 반점으로 파동성 획득한 X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연구하던 영국 출신의 W. H. 브래그는 X선이 물질 입자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폈고 곧이어 임펄스 이론의 추종자인 영국의 바클라와 X선의 본질을 둘러싼 열띤 지상 논쟁을 벌였다. 1907-1908년에 걸친 이 논쟁은 누구의 승리랄 것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브래그와 바클라 모두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실험 근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1912년은 X선의 본질에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해다. 독일의 라우에, 크니핑, 프리드리히가 물리학자들이 오랫동안 찾던 X선 회절의 증거를 얻었기 때문이다. 크니핑과 프리드리히는 결정을 이루는 원자간의 좁은 틈을 격자로 이용해 흔히 ‘라우에 반점’이라고 부르는 X선 회절 사진을 얻었다(그림2). 이 사진을 보면 X선의 회절 현상이 분명했기 때문에 라우에의 복잡한 수학적 분석 없이도 누구나 X선이 파동이라는 결론을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이로써 X선은 주기적인 파동이라는 잠정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X선의 입자성을 나타내는 증거들은 당분간 숙제로 남게 됐다.


(그림2)X선의 파동성 입증한 라우에 반점^빠르게 움직이는 전자가 금속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X선을 황산구리 결정격자에 쏜다.이때 X선이 결정격자를 통과하면서 회절과 간섭을 일으켜 사진 건판에는 라우에 반점이라는 여러 반점이 만들어진다.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파동-입자 이중성과 관련해 보어의 원자 이론도 중요했다. 덴마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잠시 연구한 보어는 1913년에 분광학 연구와 양자가설을 결합한 새로운 원자 이론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원자에서 전자는 일정한 에너지 준위에서만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전자가 에너지 준위를 오르락 내리락 할 때 그 차이만큼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고 그 양은 양자가설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보어의 첫 이론은 엉성했지만 물질의 스펙트럼 연구와 양자가설을 결합한 중요한 시도였다. 독일의 좀머펠트는 전쟁 기간 동안 이를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콤프턴 산란으로 증명된 X선 입자성

전쟁 후 파동-입자 이중성 연구는 영국과 독일보다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더 활발했다. 프랑스 명문가 출신의 M. 드브로이는 1920년대 초 X선에서도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가 들어맞고 X선의 에너지 역시 일정한 단위, 즉 에너지 양자로 흡수된다는 것을 보였다. 또한 보어의 원자 모형과 복사 에너지의 흡수, 방출의 관계식을 찾으려고도 했다. 이 과정에서 M. 드브로이는 X선이 파동성을 띠고 때로는 전자가 주기성을 보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M. 드브로이와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는 콤프턴이 X선 산란 문제를 통해 X선의 입자성에 접근했다. 그는 지도교수에게 훌륭한 X선 실험 장비를 물려받은 것이 계기가 돼 X선 산란 연구를 시작했다. 콤프턴은 일찌감치 X선의 산란각과 파장, 산란 과정에서 방출되는 전자의 속도의 관계를 광양자, 에너지 보존법칙, 그리고 운동량 보존법칙을 써서 설명하려고 했다. 여러 가지로 고심한 끝에 콤프턴은 1922년 ‘X선 양자’를 에너지(hv)와 운동량(hv/c)을 가진 입자로 취급하고 X선 산란을 당구공의 충돌처럼 전자와 ‘X선 양자’의 충돌 과정으로 풀었다. 그리고 뒤이어 1923년에는 자기 해석을 뒷받침하는 정밀한 실험값을 발표했다(그림3).


(그림3)X선의 입자성 보인 콤프턴 효과^X선을 물질에 쬐면 X선의 일부는 그 물질을 그대로 통과하고 다른 일부는 전자와 충돌한다.이때 전자는 운동에너지를 얻어 튀어나가고 X선은 입사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산란된다.그리고 산란된 X선의 파장은 입사X선의 파장보다 길어진다.파동이론으로는 X선의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콤프턴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X선을 광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콤프턴의 연구는 X선이 공간에서 입자처럼 진행한다고 해석될 수 있었다. 당시까지 빛과 X선의 입자성 문제는 주로 흡수나 방출 과정에서 제기됐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일단 빛과 X선이 공간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하다가 물질에 흡수, 방출될 때에만 에너지가 집중된 입자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콤프턴의 설명에 따르면 X선은 공간에서도 에너지가 연속적인 파동으로 진행하지 않고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보테와 가이거는 콤프턴 산란이 X선이 일단 흡수됐다가 다시 방출되는 2단계 과정이 아니라 X선의 산란과 그에 따른 되튐전자의 방출이 동시에 일어남을 실험으로 보여 콤프턴 이론을 확증했다. 이로써 1923년경에 왜 그런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빛과 X선이 언제나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띠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한편 M. 드브로이의 동생, L. 드브로이는 파동-입자 이중성의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접근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찬찬히 검토한 그는 1921년부터‘빛 원자’를 물질 입자처럼 상대론적으로 다루는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빛에서 시작한 파동-입자 이중성의 문제를 전자에 적용한다. 이미 그의 형이 전자는 궤도상에서 주기 운동을 하므로 전자도 주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L. 드브로이는 실제로 물질과 입자를 동등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고 그 결과 파장이 궤도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정상파로 전자를 기술하는‘물질파’개념이 등장했다. L. 드브로이는 이 결과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는데, 통과되기도 전에 랑제방과 아인슈타인 같은 대가들의 칭찬을 들었다. 곧 미국의 데이비슨과 저머, 영국의 J. J. 톰슨의 아들, G. P. 톰슨이 각각 독립적으로 전자의 회절 실험에 성공해 물질파의 존재가 확인됐다. 전자현미경은 바로 이 전자의 파동성을 이용한 것이다.

자연의 실체로 드러난 이중성

L. 드브로이의 물질파는 슈뢰딩거가 파동역학을 세울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아이디어를 알기 전에 이미 전자가 공간에 퍼져있는 것 같은 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26년에 그는 아인슈타인을 통해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을 전해 듣고 이를 이용한 파동 방정식으로 수소의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있었다. 또 1927년에는 파동 방정식을 이용해 콤프턴 효과를 계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물질의 파동성에 입각한 양자역학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파동역학이 길을 찾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물질의 입자성을 기초로 또다른 형태의 양자역학이 만들어졌다. 보어, 좀머펠트,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등은 전쟁 직후부터 수소의 스펙트럼이 자기장 속에서 아주 복잡하게 나타나는 제만효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골몰했다. 이들의 연구는 스핀, 궤도 같은 고전역학의 개념이 적당히 섞인 중간 단계를 지나 1925년 말경에는 하이젠베르크가 기초를 세운 행렬역학으로 이어졌다.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은 곧 증명되었고 물리학자들은 같은 현상을 입자로도 파동으로도 기술할 수 있게 됐다.이로써 분광학적 방법을 통해 원자의 구조를 연구하던 한 흐름과 빛,X선 같은 복사 에너지의 입자 특성을 연구하던 또다른 한 흐름이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빛과 물질이 모두 파동-입자 이중성을 띠는 것이 자연의 실체였던 것이다.물리학자들은 파동-입자 이중성의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한때 X선의 입자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W.H.브래그가 1928년이 되어서도 "물리학자들은 월,수,금요일에는 파동식을,화,목,토요일에는 입자식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는 농담을 한 것을 보면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들에게도 파동-입자 이중성은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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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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