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무렵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가 드디어 실현된다. 안정성과 경제성이 검증된 핵융합 발전소는 전세계에 보편화돼 대기, 수질 같은 환경이 좋아지고, 산업적 파급 효과도 커지는데…. 핵융합이 가져온 미래의 신세계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보자.
2068년 4월 18일 새벽 5시, 전화 벨소리가 연신 독신 남자의 곤한 잠을 깨운다. 주인공은 한국전력주식회사 원자력 발전처 핵융합 발전사업본부의 김병철 과장. 김과장은 제15기 핵융합 발전소 준공식 준비로 거의 두달 간 자정까지 일에 매달리다가 어제 준공식이 성공적으로 끝난 터라 긴장을 풀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겨우 벨소리를 듣고 화상 전화기의 스위치를 누르자 디스플레이 화면에 다급한 모습의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주)인도네시아 퓨전파워의 한국측 파견관으로 나가있는 양형렬 과장이었다. 인도네시아 퓨전파워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 핵융합발전소를 건설할 목적으로 한국과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EU)이 합작 투자한 회사다.
새벽 단잠을 깨운 전화 내용은 현지시각으로 오후 4시경에 진도 7.5의 지진이 이 지역을 강타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현재 1.5GW급 제8기 인도네시아 핵융합 발전소 건설현장으로부터 1백50km 떨어진 도로가 붕괴됐고, 건설현장으로 핵융합로 부품들을 수송하던 트럭이 전복됐다고 했다. 진도 9.0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가 돼있는 핵융합로 구조물들은 아무 영향이 없었지만, 핵융합 반응의 기본연료인 삼중수소를 생산하며 핵융합로 중심을 감싸는, 리튬과 납으로 구성된 중성자 차폐막 모듈 중 3개가 수송트럭의 전복으로 손상됐다는 것이다. 손상 정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과장은 우선 대체 모듈 3개를 긴급히 건설 현장으로 수송해 공사기간이 지연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는 부탁으로 전화통화를 마쳤다.
전기 만드는 중성자 에너지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이 결합해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데, 무거운 원자핵이 둘 이상으로 쪼개지는 핵분열과 다르다. 핵분열처럼 핵융합 과정 전후에도 미세한 질량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 질량 차이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E=mc2)에 따라 에너지로 변신한다. 핵융합 에너지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이용되는 핵분열 에너지에 못지 않은 엄청난 양이다.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기본 연료는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이다. 일반 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구성되는데, 중수소는 수소원자 핵에 중성자가 한개 더 붙고 삼중수소는 중성자가 두개 더 붙는다. 중수소는 보통 바닷물에서 채취하면 되지만, 삼중수소는 희귀물질로 리튬을 중성자와 충돌시켜 생성시킨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1억도가 넘는 온도에서 원자핵(이온)과 전자가 떨어진 상태인 플라스마로 핵융합 반응한다. 이때 14.1MeV의 중성자와 3.5MeV의 ‘+’ 전하를 가진 알파입자(헬륨이온)를 방출한다. 중성자나 알파입자 하나는 에너지가 그리 크지 않지만 수없이 많이 모이면 엄청난 에너지가 된다.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는 핵융합로를 감싸는 중성자 차폐막 구성물질인 리튬과 충돌하면 다시 삼중수소가 생성되고 연료창고로 보내진다. 또 중성자 차폐막과 충돌한 중성자의 운동에너지는 열교환기에 의해 열에너지로 변환된다. 이때 생기는 열에너지는 물을 가열해 수증기를 만들고, 이 수증기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데 쓰인다.
알파입자는 ‘+’ 전하를 띠므로 초전도 자석이 만들어내는 강한 자기장을 따라 돌며 플라스마와 충돌해 운동에너지를 플라스마에 전달, 수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지속적으로 가열하는데 사용된다.
김병철 과장이 그 동안 준공에 밤낮을 안 가리고 매달린 국내의 초전도 핵융합 발전소 15기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지역에서 건설되고 있는 초전도 핵융합 발전소는 모두 첨단 핵융합 발전방식으로 점화용 보조가열장치 가동시간을 최소화하고 알파입자에 의한 가열 효율을 극대화시킨 발전 방식이다. 이 방식에 대한 기술 특허권은 현재 한국과 러시아, 일본, 유럽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오존층 회복에도 기여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세계적으로 대두된 경제 개발에 따른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2020년 UN은 세계 환경경제 기구(WEEO, World Environmental Economy Organization)를 창설해 국제 환경과 경제 개발을 감시해오고 있다. 세계 각국은 매년 환경감시위성들이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얻은 환경지표에 맞춰 경제 활동에 따르는 환경오염물 배출을 극소화해야 한다. 최근 WEEO는 세계 복지를 위해 ‘국제 환경·경제 핵융합에너지 발전 조약’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도 참여하는 4개국 핵융합 발전 합작법인은 현재 적정 수준의 이익을 보장받으면서 건설·관리·운영권을 위임받아 인구밀도가 높고 에너지 수요와 경제 인구가 많은 나라들에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임진강변 하류에 위치한, 김병철 과장이 사는 아파트에서 멀리 보이는 강 위에는 전기 동력선이 조용한 물살을 일으키며 푸르른 한강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임진강 하류에서 출발한 전기 동력선은 UNESCO에서 영구 생태 보존지구로 지정된, 과거 DMZ 지역에서의 생태학습관광을 마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중이다. 4월의 서울 쪽 하늘은 초가을 하늘처럼 맑았다. 2050년 경부터 본격적인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가 가동된 이후로 봄마다 한반도를 뒤덮는 중금속으로 오염된 황사는 더이상 존재치 않는다.
이때를 기점으로 WEEO가 주도하는 핵융합 발전소 건설은 몽골과 중국지역까지 이어졌다. 몽골과 내몽고지방까지 들어가는 몽골 울란바토르 핵융합 발전소에서 송전되는 전기 덕분에 강에서 담수를 끌어와 대규모 녹지 사업으로 사막 지역이 녹지가 됐다. 이로써 봄에 발생되는 황사의 양이 1/6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2000년대 초반 중국 공업지대의 공장과 갈탄 화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아황산가스 같은 오염물질도 모두 사라졌다. 새로 건설된 핵융합 발전소에서는 산성비와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는 배출 가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핵융합 발전소를 설치한 도시 상공의 오존층이 거의 1900년대 초의 수준으로 회복됐고, 남극과 북극의 빙하 상태와 남태평양 군도에서 측정한 해수면의 높이도 다시 1900년대 수준으로 복원됐다는 사실이 최근 뉴스를 통해 WEEO에서 발표됐다.
도시에 설치 가능한 이유
핵융합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도시와 공장지대에 지하 초전도 송전망을 통해 대용량으로 공급된다. 지상의 변압기 등의 송전시설물은 모두 지하로 들어갔다. 이 때문에 낙뢰로 인해 전기 공급에 차질을 빚어 생기던 손실, 과거 고전압 송전 배선망에 의한 전기손실 등이 없어져 송전 비용이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값싼 핵융합 연료를 사용하는 덕분에 연료비용과 수송·관리비용이 절감됐다. 당연히 발전 단가는 무척 낮아졌다. 실제로 1g의 중수소·삼중수소로 1시간 동안 2만6천kW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이는 5천가구의 평균 하루 전기 소비량(2001년 현재 서유럽국가 기준)에 해당된다.
또한 인구 밀집지역에 건설된 핵융합 발전소는 도시 환경을 놀라울 정도로 쾌적하게 변화시켰다. 핵융합 발전소의 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안정하므로 발전소를 도시 근교에 설치하는 일이 가능했다. 핵융합 발전소에 오작동이 발생할 경우 1-2분 안에 작동이 자동적으로 멈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초전도 송전 배선망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줄고 핵융합 연료의 가격과 취급비용이 싸기 때문에 전기의 단가도 낮아졌다. 값싼 전기를 이용해 도시의 생활 쓰레기는 초고온 플라스마 소각로에서 100% 재활용된다. 오폐수도 1급수 수준으로 정화돼 이제 주요 도시의 하천은 청정 1급수 수질 지역으로 탈바꿈됐다. 또한 발전소와 공장지역은 온실가스 제로의 청정지역으로 변화됐다.
폐쇄후 50년 지나면 재활용
김병철 과장은 아파트 지하 주차 격납고에 있는 자신의 전기자동차를 아파트 정거장 앞으로 불렀다. 그러자 핵융합 발전로 중심부의 부품을 교체하고 유지·보수하는데 쓰이는 것과 비슷한 로봇팔이 벌집 구조의 격납고에서 김과장의 차가 든 주차 캡슐을 꺼냈다. 캡슐이 지상 정거장으로 전달되고 차가 꺼내지자 김과장은 승차해 동력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연료전지의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그간 초전도 핵융합 발전소 준공 준비로 전기요금을 전자 결재하지 못해 격납고의 자동충전장치가 작동을 안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동네 편의점의 자동차 연료전지 교환소 앞에 차를 세웠다. 김과장은 연료전지 3만원 어치를 교환해달라고 했다. 이 정도면 4주간 출퇴근과 주말 여행에 충분할 것이다. 로봇팔이 연료전지를 교체하는 동안 김과장은 김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김과장은 전기자동차로 초전도 자기부상 레일과 일반 도로를 사용, 임진강 포구 근처 아파트에서 경기도 용인의 사무실까지 20분만에 도착했다. 자기부상 레일에는 핵융합 발전소에 쓰이는 것과 유사한 초전도 자석이 깔려 전기자동차가 떠서 움직일 수 있고 출입로를 통해 주요 간선도로와 연결된다. 김과장은 즉시 창원의 핵융합 발전소 공장의 사정우 대리에게 리튬 차폐막 모듈을 인도네시아 퓨전파워로 발송하도록 지시했다. 또 지역 핵융합발전소 신청서에 대한 기술검토회의를 준비해달라고 본부장 비서인 진정화 양에게 부탁했다.
과거 핵융합 발전소 유치에 냉담하던 지방행정부들은 발전소의 안전성과 경제성이 검증된 이후 경쟁적으로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김과장은 핵융합 발전사업본부로 발령난 후, 연일 유치 신청서에 대한 기술검토회의를 진행하고 1년에 한두번씩 2-3개월에 걸친 핵융합 발전소의 건설을 마무리하는 작업 때문에 가뜩이나 마른 몸에 살붙을 날이 없다. 김과장은 답답한 사무실을 떠나 다시 건설현장으로 가고 싶지만, 이는 그간 해외 건설현장 근무로 결혼을 미뤄온 그의 여자친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바램이다. 대신 핵융합발전 시설물 재활용 기획부로 옮길까 생각중이다. 대부분이 연구·개발에 관련된 조용한 업무라 여자친구로부터 대전의 이 부서로 전근하라는 시달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서에서는 건설 후 현재 15년이 넘은 제1세대 핵융합 발전소들에 대해 앞으로 30-40년 후의 철거와 재활용 계획을 준비한다.
중성자에 쪼인 핵융합 발전소 시설들은 안전을 위해 약 1.5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 안에 설치되고 가동 기간 중에도 보수·유지작업은 모두 로봇에 의해 실시된다. 이들 구조물은 과거 핵발전소 방사능 레벨의 약 1/3백50 정도인 방사능을 띤다. 과거의 핵발전소들은 발전소의 내구연한이 다됐을 때 발전소 지역을 영구적으로 폐기했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소는 이와 달리 대부분의 구조물들을 50년 주기로 재활용할 수 있다. 발전소 폐쇄 후 약 50년이 지나면 내부의 방사능 레벨이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수준보다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발전 속도를 예측해 핵융합발전소 구조물들을 체계적으로 재활용할 계획을 미리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로켓 분사구용 초고온 타일
요사이 김병철 과정은 지난 10여년 동안 한전 핵융합사업부를 나와서 짭짤한 전문기술 기업 사장이 된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새로운 사업을 하자는 유혹도 받고 있다. 핵융합 발전로의 초고온 플라스마 벽면 소재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던 임기학 과장은 10년 전에 일찌감치 회사를 차려 핵융합 발전소 플라스마 벽면 재료를 생산해 납품해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요즈음은 한국 우주항공청에 로켓 분사구용 초고온 벽면 소재를 납품하고 있다. 핵융합 발전소의 초고온에서 견디는 탄소 타일은 로켓 분사구에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융합로의 유지·보수 작업용 로봇팔에 대한 개발과 엔지니어링을 담당했던 허남일 차장은 ‘퓨전 로보틱스’ 회사를 설립했다. 요즈음은 아파트 단지 주차용 로봇팔과 연료전지 교환소의 로봇팔을 설계·제작·설치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초전도 자석과 초전도 자석용 전기접속부품의 개발을 담당했던 오영국 과장은 OK 초전도 자석 회사를 설립해 한전과 같은 발전회사들과 산업용 가속기 제작회사, MRI 같은 의료기 제작회사에 초전도 자석과 초전도 자석용 전기접속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공급하는 초전도 자석은 의료용 중저가 소형에서부터 고가의 대형까지 다양하다.
또한 플라스마 보조 가열 장치 제작을 총괄 담당했던 홍봉근 기술이사는 현재 고효율 청정 플라스마 소각로 제작회사 ‘플라스마텍’을 설립해 전세계 고효율 초고온 플라스마 소각로 시장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핵융합에 사용되던, 1억도까지 가열하는 기술을 소각로에 적용시켜 중금속,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 물질을 태워서 재처리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기술적으로 성공한 것이기도 했지만, 핵융합 발전소 덕분에 전기사용 단가가 낮아지면서 가능했다.
모두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 지사를 설치해 환경보존과 적절한 수준의 기계 문명을 균형있게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핵융합 기술은 이런 환경과 조화되는 인류문명을 지속시키는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